나 죽었소 살아온 농민들인데…
나 죽었소 살아온 농민들인데…
  • 뉴스서천
  • 승인 2003.08.08 00:00
  • 호수 1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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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있는 이는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정치는 정치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어느 곳 하나 재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총체적 난국이라 말한다.
김정일정권을 도려내려 수순을 밟고 있는 미 부시정권인데도, 설마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랴 감성에 젖어 긴장감 없이 흘러가는 북핵문제, 일관성 없이 추진 되는 교육및 노동정책, 새만금사업과 핵폐기물처리장 문제에서 보여 준 국책사업 표류, IMF 때보다도 더 어렵게 느껴지는 실물경제 등 벌통을 엎어놓고 굿판을 벌리고 있는 듯한 나라 분위기를 잘 말해 주는 세평이라 하겠다.
이런 어수선한 가운데 지난 1일, 빨간불이 켜진 농업계의 관심 끄는 행사가 서울에서 있었다. 대외경제연구원과 산업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행사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된 정책토론회가 바로 그것이다.
요즈음 위기감에 휩싸인 농민단체 회원들이 상경해 시위를 갖고 있고, 농업계 대표들이 단식투쟁을 하는 등 독뱀이 바지사이로 기어 들어온 듯 뛰고 있다. 이런 상황 속 이번 행사는 FTA와 관련된 정책토론회란 점에서 농업계의 목소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리였다.
하지만 토론자로 나서려던 농민단체 관계자가 불참했다. 토론회 성격상 관련 산업별 이해 득실과 이에 따른 문제점.
그리고 그 해결 방안을 놓고서 극히 객관적이고 폭 넓은 토론이 오고가 향후 관련정책수립의 바람직한 방향 제시가 이루어져야 했다. 농업회생 투자계획 등에 대한 토론이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농업 포기를 기정 사실화 한 채 FTA 강행 당위성에 대한 여론몰이 장으로 변질돼 버렸고, 볼멘소리나마 내뱉던 농업계 토론자는 다른 토론자들의 정, 재계에 대한 일방적 옹호에 울분을 터트리며 참석치 않은 것이다.
국책연구원들은 주제 발표에서 FTA는 더 이상 선택과제가 아니라 필수 전략적 통상정책수단이라 했고, 추진하되 중장기적으로는 경제적 실익 위주로 가야한다며 농업 포기를 부르짖었다.
또다른 토론자는, 경쟁열위산업을 비롯한 잠재적 피해자들의 저항이 정책 추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정치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특정산업의 피해 등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했고, FTA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경우 수출 주도형인 우리 경제는 고립될 것이라며, FTA 국회 비준 반대에 대해 엄포까지 늘어놓는 토론자도 있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짜고 치는 고스톱요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춤까지 추는 한심한 작태라 하겠다. 이는 토론이 아니라 각본에 따라 최대 피해자인 농업계를 들러리 세워 놓고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홍보하는 즉 FTA 비준 동의 당위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속 보이는 작업인 것이다.
다시 말해 복안 없는 무능과 대안 부제를 감추고 무조건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정부에 그렇듯한 여론을 만들어 면죄부를 주려 계최된 대국민 사기요 기만극인 것이다.
정부의 농업 포기 너무 성급하다. 일이 자꾸만 우습게 흘러가고 있으니 오죽해야 해외 삭발 투혼의 김영진 장관이 새만금 문제를 빌미로 얼씨구나 하고 사표를 썼을까.
칠레협정은 출발선을 이제 막 떠난 마라톤 경기이다. 향후 수많은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남아 있다. 칠레와의 협정은 바로 그 모델이 되므로 조항 하나마다 신중을 다 했어야 옳았다. 따라서 잘못된 만큼 예상되는 피해에 걸맞는 대책을 충분히 고민해 내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이후 “나 죽었소” 침묵해 온 우리 농민들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귀로에서 힘겨운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찾아보면 왜 특단의 대책이 없을까. 정부는 농업인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한 보편타당성 있는 대안책을 마련하고, 결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를 국민 앞에 보여야 한다. 그 때 어쩔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고, 벼랑 끝 400만 농민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구경욱/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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