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연금 수혜로 동생들은 혜택 받았다”
“독립유공자 연금 수혜로 동생들은 혜택 받았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7.08.23 16:25
  • 호수 8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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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는 의병장 문석환 손녀 문순자씨

▲ 의병장 문석환의 손녀 문순자씨(오른쪽). 양금봉(외쪽) 전 군의원은 그의 부친을 재가요양자로 모신 인연이 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9월 5일 미국 뉴햄프셔주의 포츠머스에서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포츠머스 강화조약에서 일본은 ‘한국 보호권 확립의 건’에 대해 국제적 동의를 얻어냈다.

이 조약문에는 ‘한국에서 일본의 정치·군사·경제상의 특별권리를 승인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포츠머스 강화조약 체결에 참석한 일본대표(고무라 주타로)가 귀국한지 불과 11일 후인 1905년 10월 27일 일본 각료회의는 ‘한국 보호권 확립 실행에 관한 각의 결정의 건’을 의결했으며 이로부터 13일 후인 11월 9일 이토오 히로부미가 서울에 도착했다.

그는 고종황제를 만나 일왕의 친서를 전달했으며 ‘보호조약’이라는 미명의 조약을 체결하라고 강요했다.
고종이 이에 응하지 않자 이토오 히로부미는 이완용 등 조선의 대신들을 만나 조약 체결을 요구했고 마침내 11월 16일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 이른바 ‘을사오적(乙巳五賊)’이 찬성했다.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영기는 이에 반대했다.

대한제국은 황제국이므로 고종이 재가하지 않은 조약은 법적인 효력이 없다. 그러나 일제는 을사오적의 찬성을 근거로 11월 18일 새벽 2시에 조약이 체결되었다고 선포했다. 이후 대한제국은 주권이 없는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 국가로 전락했다. 이에 전국 도처에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의병들이 궐기했다.

이 가운데 1882년(고종 19) 문과에 급제해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른 민종식(1861 ~ 1917)은 1895년 을미왜변 이후 벼슬을 버리고 충청남도 정산(定山)으로 우거, 은둔하던 중 을사늑약(乙巳勒約)의 소식을 듣고 정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각처의 의병에 의해 조직된 연합의병의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906년 5월 의병들을 홍산에 집결시켰고, 여기서부터 서천·비인·판교·남포·보령·청양 등 충청남도 서부일대를 점령한 뒤, 서부의 중심지인 홍주를 공략해 점거했다. 이 때 의병장 민종식의 휘하에서 활약한 인물이 서천의 문석환(文奭煥 1869. 10. 16 ~ 1925. 8. 30)이다. 비인면 장포리 출신의 문석환은 고려시대 문익점의 후손으로 면암 최익현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문석환은 민종식 의진에서 종사가 되어 홍주성(지금의 충청남도 홍성)을 점령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뒤 서기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대공세에 밀려 홍주성이 함락되고 문석환은 동지 80여 명과 함께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됐다. 같은 해 6월 상순에 70여 명은 석방되었으나 문석환은 남규진·유준근 등 8명과 함께 끊임없이 일제를 꾸짖고 굴하지 않아 대마도(對馬島)로 유배되었다.

그해 8월 의병장 최익현과 임병찬도 대마도로 유배되었으며 11월 17일 최익현이 순절하자 문석환은 사서(司書)를 맡아 장례를 치렀다. 이후 일제의 위협과 끈질긴 회유에 굴하지 않고 3년간 대마도에서 옥고를 치른 뒤 석방되었으며 귀국 후 고향에서 학문에 정진하다 1925년에 타계했다.

1977년에야 건국포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으며, 1996년 10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묘비번호 595)에 안장됐다.

뉴스서천이 2011년 8월 종천면 도만리에 살고 있던 문석환의 아들 규박을 만나 인터뷰를 한 후 의병장 문석환을 알린 바 있다. 문규박은 2남 5녀를 두었지만 모두 도시에 나가 살고 있어 이후 그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는데 양금봉 전 군의원으로부터 그의 딸 문순자씨를 도만리 옛집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문씨를 만났다. 양 전군의원은 재가요양자로 규박씨를 모셨다고 한다.

문순자씨 위로 언니와 오빠가 있는데 그로부터 부친이 서울에서 살다 작년 1월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호국원에 모셨다 한다.
1957년생인 문순자씨는 자신이 26세까지 살기도 했던 옛집을 말끔히 수리하고 부친이 애지중지하며 같이 살던 강아지를 다시 데리고 내려와 살고 있다.

“어려서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형편이 어려워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그러다 연금이 나와 동생들부터는 상급학교에 진학도 했습니다. 오빠는 인천에 살고 있고 남동생은 대학교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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