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서 다시 용기를 얻게 하자
고향서 다시 용기를 얻게 하자
  • 뉴스서천
  • 승인 2003.09.05 00:00
  • 호수 1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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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으며…
올해는 우리나라의 여름답지 않게 여름 내내 거의 비가 내리고 구름이 끼었던 듯싶다. 그런가 하면 유럽에서는 연일 40도가 넘는 폭염이 지속돼 사제들이 기우제까지 지내는 흔치 않는 일이 있었다. 정말 이러다가 우려했던 대로 세계의 기후가 변해 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들게 하는 여름이었다.
하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와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느낌이 들며,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뿐만 아니라, 그 빗물 뿌리는 지루한 그늘 속에서도 가을 열매들이 그 모양새를 갖추어 가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다음 주면 추석이다. 서양에도 추석과 흡사한 추수감사제가 있기는 하지만, 땅을 물려준 조상들에 대한 신격화된 감사가 그들과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우리 조상들은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하여라.’라는 아주 자족적(自足的)인 말을 써왔다. 이를 분석해 보면, 물질적으로나 기후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가장 만족할 수 있는 절기가 이 추석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한 때를 택하여 우리의 고향을 찾는 가족 친지들이 있다.
그들은 먼 귀향길의 고달픔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올해도 또다시 고향을 찾을 것이다. 고향이 예전과 같지 않아도, 피폐하고 황폐하여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은 온다. 그것은 왜일까? 외양과 풍속과 인심이 어떻게 달라졌든 고향은 그들에게 상처와 위안과 치유가 함께 있는 원점(原點)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객지에 사는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것은 단지 전통적인 풍속을 넘어, 잃어버린 시간 찾기 내지는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밤늦도록 송편을 빚고 밤을 치고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가족사와 조상들의 얘기를 전설처럼 나누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다음날이면 조상의 묘소를 찾아 성묘를 하며 나란히 한 뿌리 한 핏줄임을 다시금 확인하고, 애틋한 소원들을 빌고 빌어보는 것이리라.
설령 부쩍 늙고 쇠잔해진 부모의 모습 속에서 애잔함을 느낀다 해도,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닮은 형제들의 얼굴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해도, 가족이란 애증(愛憎)의 분별을 넘어 그저 가족이기에 그립고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고향은 그들에게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요, 최후의 보루로써 연민과 정다움과 그리움이 늘 상존하는 원류(原流)이다.
우리 모두 잠시 우리의 시름을 접어 두고 고향을 찾는 그들을 따뜻한 마음과 손길로 맞아 주자. 그렇게 함으로써 날씨처럼 우울한 시기에 그들이 고향에서 얻은 용기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자. 그것이 모심(母心)으로 고향을 지키는 우리들의 예의요 배려일 것이다.
<윤병화/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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