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 (8)삶과 죽음에 관한 진정한 애도
■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 (8)삶과 죽음에 관한 진정한 애도
  • 김환영 시민기자
  • 승인 2017.11.29 17:55
  • 호수 8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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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 안녕》(김동수, 보림2016)

그림책 주인공 할머니는 폐지 줍는 분
저녁에서 이튿날 새벽까지 시공간으로 독자 안내

▲ 표지 ⓒ김동수, 보림)
《잘가, 안녕》(김동수, 보림2016)처럼 그림책 표지가 소박한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표지에 의무처럼 밝히던 출판사 이름조차 덜어냈습니다. 어두운 배경에 흰 오리 한 마리와, 꽃잎이 일곱 장 붙은 작고 하얀 꽃 네 송이와, 납작하게 그려진 리어카와 무언가를 암시하듯 도막도막 잘라진 제목 글자, 이것이 이 책의 표지입니다. 하지만 표지를 넘기자마자 “퍽. 강아지가 트럭에 치여 죽었습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이야기는 강렬하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고되지 않은 죽음이 그렇듯, 그림책 또한 예고 없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지요.

 

 

 

 

▲ ‘본문7 왼쪽면ⓒ김동수, 보림

▲ ‘본문7 오른쪽면’ ⓒ김동수, 보림

 

 

 

 

 

 

 

 

 

 

이 그림책은 그동안 우리가 외면했던 길바닥의 수도 없는 주검들을 그림책 안으로 불러들입니다. 주검을, 그것도 배알이 터지거나 팔다리가 부서진 동물들의 주검을 들여다보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적나라해 마땅한 도상들을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표현함으로서 시각적 부담을 덜어내고 있습니다. 유머 코드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캐릭터

▲ ‘본문9 오른쪽면’ ⓒ김동수, 보림
그림책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폐지를 줍는 분입니다. 하지만 주검들을 다독이는 할머니는 단순한 폐지를 줍는 노인이 아니라 숨 가진 것들을 관장하는 모태신만 같습니다. 산발한 검정 머리카락으로 눈마저 가려져 표정을 잘 알기가 어렵습니다. 코는 검은 막대마냥 일직선이며, 입은 실로 꿰매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할머니의 집은 남루하다기 보다는 구도자의 선방만 같습니다. 그 집 앞에는 소소한 화분들과 자동차 타이어를 분 삼아 자라는 몇 송이 흰 꽃들을 그려놓고 있어요.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물건은 동그란 반짇고리입니다. 뚜껑에 붉은 꽃 두 송이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작가는 할머니를 내세워 절단 난 뱀을 이어 붕대로 감싸주고, 부엉이(실제에서는 소쩍새일 가능성이 높겠지만)의 배를 꿰매고 깃털을 다시 꼽아주며, 납작해진 개구리를 입으로 불어 본디의 상태로 돌려줍니다. 강아지의 쏟아져 나온 배알을 도로 넣어 꿰매고 흐트러진 털도 빗으로 곱게 빗어 줍니다. 옆구리가 다 터져버린 고라니의 상처를 꼼꼼하게 꿰매며 혼잣말을 하시지요. “얼마나 아팠을까….” 먹먹하고 퀭하던 동물들의 눈이 치료를 마치고 이불 속에 눕혔을 때 비로소 감기며 안식을 얻고 있어요.

폐지 줍는 이의 눈길은 높고 화려한 곳이 아닌, 더러운 길바닥입니다. 용도 폐기되거나 버려진 폐지를 주워 밥을 짓는 일이 이 할머니를 통하여 바닥 삶의 숭고함마저 느끼게 해줍니다. 바닥을 보는 삶이기 때문에 트럭에 깔린 도로의 강아지를 볼 수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리어카에 거리낌 없이 실을 수 있는 게 아닌지요. 염과 장례 절차는 온전히 남성의 몫이지만, 김동수의 그림책에서 그것은 여성-할머니로 분하고 있는 점도 각별합니다. 하지만 할머니라고는 해도, 캐릭터가 매우 중성적인 헝겊 인형 같은 느낌입니다. 

설정된 시공간

작가는 전날 저녁에서 이튿날 새벽까지의 어슴푸레한 시공간으로 독자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 설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시간에 깨어있는 이는 누구일까요? 모두 다 잠이 든 그 시간에 깨어 일하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요? 그 시간은 가난한 소수자의 것이고, 도로를 광폭하게 질주하던 시간에서 미세한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적막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그렇게 고요 속으로 한껏 귀를 열게 한 다음, 방안으로 이끌고 들어와 불을 켜고 그동안 당신들이 저지른 일을 눈여겨보라 말하고 있습니다. 치료와 애도가 일어나는 공간은 또한 중심이 아니라 변방-할머니의 집입니다.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어둠과 여명의 미묘한 표정들을 장면마다 그려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 미묘한 어둠의 변주를 실패했더라면 이 그림책은 온전한 숨소리를 얻지 못했을 거예요. 그림이 소박해 얼핏 어린아이 그림 같지만, 작가는 숙련된 화가인 것이지요. 밤의 고요와 조용한 움직임들을 작가는 내밀한 서정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림 곳곳에 박혀있는 유머와 할머니가 내뱉는 짧은 말들조차 없었다면 이 그림책은 사뭇 처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도의 방식

▲ ‘본문14 왼쪽면 ⓒ김동수, 보림

▲ ‘본문14 오른쪽면’ ⓒ김동수, 보림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캐릭터디자인은 삶보다는 죽음과 훨씬 친연성이 있어 보입니다. 옆  모습이 특히 그렇게 보입니다. 헝겊인형만 같아 허깨비가 허깨비들을 꿰매며 위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으킵니다. 
방울이 달린 귀여운 목도리로 잘려나간 족제비의 꼬리를 달아주며 할머니는 말합니다.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할머니의 말씀은 명백히 차에 치인 동물들의 억울하고 서러운 내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에게는 표정이 없지만, 독자들은 작가가 매우 따듯하고 유머러스하다고 느끼며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염을 모두 마친 할머니는 “휴우!” 한숨을 내쉬며 비로소 이부자리에 들지요. 어머니가 아가를 바라보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체크무늬 이불을 할머니도 동물들도 똑같이 덮었습니다. 애도는 위에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지요.

긴 여운

이 그림책에는 그 어떤 주류적 요소도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가 설정한 공간은 도시의 소음들이 잦아든 변방의 할머니 집입니다. 이러한 설정이 고요한 청각의 세계를 주체험하게 만들어 줍니다. 말없이 켜 있는 가로등 불빛은 독자를 심연으로 이끌어줍니다. 작가가 설정한 최소한의 무대는 거꾸로 최대한의 애도처럼도 느껴집니다. 대형마트와 대형교회들이 즐비한 중심지역이 아니라 고요한 변방에서 비로소 치유와 애도는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나는 변방의 체질들이 안겨주는 이러한 서정성을 참 좋아합니다.
이튿날 새벽, 밖에는 실비가 내리고 있고, 작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살빛이 도는 연꽃들을 강물 위에 띄움으로서 억울하고 서러운 죽음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습니다. 치유를 마친 동물들을 조각배에 가지런히 눕힌 다음, 흰 오리들(《감기 걸린 날》(보림 2002)의 그 오리들)이 입으로 물어 다정하게 다음 세상으로 안내하고 있어요.

▲ ‘본문18 왼쪽면 ⓒ김동수, 보림

▲ 본문18 ⓒ김동수, 보림

 

 

 

 

 

 

 

 

 

 

‘도로’는 ‘길’과는 쓰임새가 다르고 정서도 다릅니다. 골목길, 돌다리길, 뒤안길, 황톳길, 모랫길, 산길, 숲길, 언덕길, 샛길, 오솔길, 자갈길, 벼랑길…들과는 다르게 도로는 오직 차량들을 위한 도로이며, 단 하나의 목적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최단거리로 최대한 빠르게 모든 지역을 밟고 지나지만, 동시에 모든 걸 분절시키고 동일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합니다. 죽거나 다친 동물들을 길만 나서면 만납니다. 차에 치인 고라니들에게 가장 슬프게 다가온 것은 터진 상처보다도 뒤로 젖혀진 부드럽고 기다란 목이었습니다.  
김동수의 그림책에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내성의 눈으로만 발견 가능한 맑고 소박한 힘 같은 게 깃들어 있어요. 나는 그림책 《잘가, 안녕》이 참 예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한편의 서정시를 읽고 난 느낌이었어요. 단순하되 온 감각으로 조율된 화면의 결들을 통해 애도의 진심이 가슴 깊이 전해져옵니다. 그 진심 때문에 24바닥이나 되는 그림책인데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아침놀 위에 올려놓은 뒷면지 마지막 문장, “오늘도 어제처럼 날이 맑았습니다.”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첫 책이 나온 날이 2016년 10월입니다. 세월호의 진실이 여전히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던 시점이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김환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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