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시조 몇 점에 대한 수상
■ 모시장터 시조 몇 점에 대한 수상
  • 칼럼위원 신웅순
  • 승인 2018.03.29 17:27
  • 호수 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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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보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부르는 것이다  
      떠나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 대답하는 것이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메아리만 남은 산녘  
                                   - 신웅순의 ‘아내 11’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부르는데 사람들은 왜 쳐다보느냐고 핀잔들을 한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부르고 있는데 사람들은 잘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고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떠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대답하는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떠나야했는가. 대답할 수 없어서 떠나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시인은 노래했다. 대답 없는 뒷모습이 너무나 애잔해 더욱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바라보는 것, 부르는 것, 떠나는 것, 대답하는 것 모두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메아리가 없는 먼 산녘에 있다. 흰구름 몇 점 떠돌다 가는 산녘이 우리들의 인생이 아니던가. 

      진달래 숲 속에선 몇일을 있다갔고 
      찔레꽃 숲 속에선 한나절을 있다가는데 

      오늘은 행간만 적시며
      홀연 떠난 그 봄비
                                 신웅순의 ‘아내 10’

  봄비는 그냥 가지 않는다. 진달래 숲 속에서 며칠을 있다가고 찔레꽃 숲 속에선 한나절을 있다 간다. 지난날은 그런 봄비였다. 오늘 내리는 봄비는 행간만 적시며 훌쩍 떠나버린다. 진달래 숲 속이, 찔레꽃 숲 속이 그토록 그리운지, 오늘은 봄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그 일이 엊그제 같은 데 이미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행간만 적시기도 버겁다. 긴 여정을 걸어오느라 다리는 얼마나 아팠고 무릎은 또한 얼마나 시렸던가.
  봄이 왔다. 꽃이 피어서 좋고 춥지 않아서 좋다. 행간만이라도 따뜻했으면 좋겠다. 이제 나머지는 햇살이 와 찬가슴을 따뜻하게 적셔 줄 것이다.

      굽을 트는 저 강물은
      애초에 아픔이었던 것  
 
      돌아서는 저 산녘은    
      애초에 한이었던 것        
 
      일생을 돌아온 후렴  
      달빛 젖은 이 배따라기
              - 신웅순의 ‘아내 12’

  굽을 트는 저 강물은 애초에 아픔이었다. 우리들은 가난하게 살았다. 가난은 언제나 일상적인 것이었지 아픔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리 삶의 깊은 못자국들이었다.
  돌아서는 저 산녘은 애초에 한이었다. 강물이 굽을 트는 곳에 산녘이 있고 거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이별하지 않았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에 무거운 몸을 싣고 한을 저으며 살아갔을 것인가. 우리는 가을 달빛에 젖고 있는, 일생을 돌아와 부르는 후렴의 배따라기일지 모르겠다.

  나는 ‘아내’를 쓰면서 지난날의 아내들을 생각했고 지금의 내 아내를 생각했다. 어머니 적의 아내나 지금의 아내나 변하거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우리의 아내들이 희생하는 것을 보면 언제나 고맙고 눈물겹다. 그 많은 빚을 어찌 다 갚을 수 있으랴. 지금 갚지 못하면 영원히 갚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당장 내가 할 수 있고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것 밖에는 달리 없다.

  봄이 왔다. 동백도 환한 미소로 세상 밖으로 나와 햇살을 쬐고 있다. 목련은 목도리를 하고 빼꼼히 창 밖을 언제 나갈까 재보고 있다. 조금 있으면 산과 들로 진달래, 개나리들이 우르르 떼로 몰려 나와 온통 꽃길을 만들 것이다.
  올해엔 아내를 많이 쳐다보고 오랫동안 바라보아야겠다. 그래야 사랑스럽다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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