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제12화 - 이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이야기가 될까?②
■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제12화 - 이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이야기가 될까?②
  • 김환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4.04 17:53
  • 호수 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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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맞는 사람이 아니라, 때리는 사람이 되어보라
이를 칭찬하고 잘한 일이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자유의 길》(로드 브라운 그림, 줄리어스 레스터 글, 김중철 옮김/ 낮은산2005)

<상상해 보기3>

상상해 보기3”에서 작가는 이전보다 훨씬 혹독한 주문을 합니다. “매를 맞는 사람이 아니라, 때리는 사람이 되어보라고 말이지요.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를 때까지때린 당신이 그런 짓을 하고도 벌을 받지 않는 상상을 해보라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자리에서 그들이 누리는 부당한 권력을 몸으로 직접 느껴보기를 제안합니다.

누군가를 때렸는데도 둘레에서 이를 칭찬하고 잘한 일이라 한다면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귀신이 사람을 홀리게 하듯 나쁜 짓도 사람을 홀리게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상상하지 않고서는 억울하게 목매달려 죽은 이의 그림자가 우리 집 창문에 어른거릴거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35쪽
▲35쪽

10여 년 전,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저는 이 대목에서 책읽기를 멈추었어요. 처음에는 이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알 수 없었고, 가까스로 어떤 깨우침에 다다랐을 때 다리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지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자리에 선다는 일(또는 자신의 가해를 인정하는 일), 나 또한 끔찍한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는 일도 고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가혹한 주문은 그러나 독자를 들어 올려 인간의 양면성을 간접경험하게 합니다. 우리는 대개 자신이 선량하다고 믿지만, 태어날 때부터 악마가 따로 있는 건 아니겠지요.

▲39쪽
▲39쪽

그리고 나서, “우리가 누구고, 우리는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왔는가.”를 물으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지요. “이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이야기가 될까?”

작가는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라고. “진정으로 누군가를 소중히 여긴다면, 그 사람에게 상처 주기보다는 내가 상처받은 게 나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백인과 노예 사이에 가로놓인 대립의 핵심을 찌릅니다. “노예제도는 장사였다. 사람을 사고 팔았으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고. “도망치는 노예에게 자유로 가는 길지도 따위는 없었으며, “두려움을 이겨 내려면 두려워하는 그 일을 하는 길밖에다른 수는 없다고.

그리고 도망치는 노예를 목숨을 걸고 도와주는 백인들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무슨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독자를 향해 정색하며 묻지요. “너라면 자유를 빼앗길 위험이 있는데도 인종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니?”

▲(47쪽
▲(47쪽

이 그림책을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지만, 자유에 관한 적지 않은 생각거리를 주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주목하는 까닭은, 글이 그림의 배면을 얼마나 풍부하게 보이도록해 주며 그림이 글을 어떤 실감 속에서 읽도록해 주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림책자유의 길은 그림이 먼저 그려졌고 뒤에 글을 붙인 경우인데, 한평생 흑인들의 삶을 써온 줄리어스 레스터는 자신들의 역사를 그린 로드 브라운의 그림을 보러 전시장에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화가의 저 뜨거운 그림들과 맞닥뜨렸겠지요. 작가는 그 그림들에 개입해 서사성을 더욱 강화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을 것입니다. 그림은 실제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서사성보다는 서정이 도드라지는 장르니까요.

그래서 이 책은 그동안 만나던 그림책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문학이 미술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자유의 길은 매우 열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하기의 다른 방식을 넘어 하나의 독특한 태도로 다가옵니다. 화가를 지지하고 존경하는 글작가의 특별한 태도는, 그림책의 진성성과는 또 다른 겹으로 문학이 그림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당대 최고의 수준으로 보여줍니다. 그림을 감싸 안는 격렬하면서도 진지한 글의 사랑이 그림책 전체를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지요.

▲59쪽
▲59쪽

마지막 장면에서 눈에 띠는 부분이 하나 있어요. 모두가 오른쪽으로 행진하는데 유독 한 아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의 피부와 머리칼은 다른 이들에 비겨 누런 편인데, 화가는 왜 이 아이만 반대방향으로 돌아 세웠을까요?

오늘날 그림책은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지만, 온전한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그림책은 내용과 깊이 모두에서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골치는 아프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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