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박항서 감독의 월급
■ 모시장터 / 박항서 감독의 월급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18.09.12 20:03
  • 호수 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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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복 칼럼위원
권기복 칼럼위원

2018년의 여름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여겨질 만큼 폭염으로 일관했다. 밤낮으로 30를 넘나들었고, 한낮에는 35를 넘어서기가 일쑤였다. 사람들은 무더위에 지쳐 일손을 잡기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식도락이나 운동 등의 즐거움도 잊을 정도였다. 오로지 에어컨이 돌아가는 공간 속에서 우두커니 시간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 8월 한 달 내내, 하루 24시간 꼬박 에어컨을 가동하고 살아야만 했다. 이에 따른 전기요금도 걱정이었지만, 상시 가동으로 에어컨이 고장 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 때 마침,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내내 기승을 부리는 늦더위로부터 숨통을 열어주었다.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에 위치한 양대 도시에서 개최된 만큼 각 종목에 출전한 선수들도 더위와 싸우면서 경기에 임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을지언정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그 어떤 청량제보다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전 세계 대륙의 30%를 차지하는 아시아 대륙에는 세계 인구의 60%가 넘는 42억 명 정도가 살고 있다. 따라서 아시안게임만 하여도 웬만한 세계대회에 비견하여 부족할 것이 없는 규모를 자랑할 수 있다. 51개국 중 45개국 대표로 출전한 1만 여명의 선수들은 818일 개막식과 함께 16일 동안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이를 통해 465개 세부 종목에 걸린 메달을 놓고 겨루는 과정에서 수많은 스포츠 영웅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번 2018 아시안게임에서는 다관왕이 누구냐?”, “누가 금메달을 수여했느냐?”는 등의 선수들보다 베트남을 축구 4강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에게 포커스가 모아졌다.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베트남의 축구 감독인 박항서가 스포츠 영웅임에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물론 베트남 현지에서는 더더욱 박 감독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지난 1월에 치른 23세 이하 아시아 축구대회(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하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4강에 진출함으로써 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 감독은 한국 축구를 월드컵대회 4강으로 도약시켰던 히딩크 감독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한 경력이 있다. 그로 인하여 국내 팬들에게서 베트남 대표 음식인 쌀국수와 거스 히딩크 감독을 합성한 쌀딩크란 별명이 붙게 되었다.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거둔 작은 성적 때문에 히딩크 감독님과 비교하는 데 부담스럽다면서도 선수들과 함께 베트남 축구에 발자취를 남긴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박항서 감독의 선수들을 자식처럼 챙기는 파파 리더십이 화제라고 한다. 선수들은 박 감독을 (Cha)’라고 부르는데, 베트남어로 아빠란 뜻이다. 박 감독이 선수의 발을 직접 마사지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박 감독은 부상자를 확인하러 의무실에 자주 간다. 의무진이 한두 명밖에 없어 손이 모자라다 보니 도운 것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결국 박 감독의 겸손하고 섬세한 리더십이 베트남 대표 축구팀을 환골탈태하게 만든 역량이었다.

베트남 언론들부터 계약 기간이 2020년까지인 박항서 감독에게 적합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박 감독의 월급은 2018 아시안게임의 주최국이었던 인도네시아 감독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박 감독은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면서 웃음으로 대신하였다고 한다. 그의 웃는 얼굴 내면에는 월급 액수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꽉 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연봉 또는 월급 액수로 직업의 가치 척도를 재고자 하고, 주는 만큼만 일한다는 사고방식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박 감독의 처사는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받은 만큼만 일하려 하지 말고, 내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니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최선을 다한 결과가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면, 연봉이든 월급이든 저절로 인상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베트남에서 최고의 한류스타로, 민간외교관으로서 평가받고 있는 박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비록 지금 당장은 박봉의 대우에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순수한 축구 열정은 결국 모든 것을 가득 채워 주리라 믿는다. 자신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한국인의 한 사람인 필자에게도 가장 소중한 롤-모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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