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해 열사 누가 죽였나
이경해 열사 누가 죽였나
  • 뉴스서천
  • 승인 2003.10.24 00:00
  • 호수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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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운동가 이경해 씨가 칸쿤에서 할복 자살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을 때, 한겨레21과 조선닷컴에 접속해 속보를 읽은 적 이 있다. 그때 기사 하단의 독자평을 보고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농업계의 큰 인물 하나를 잃었다는 슬픔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의 죽음이 우리 나라를 국제적으로 망신시킨 과격한 농민 운동가의 이벤트성 죽음정도로 네티즌들에 의해 함부로 오도되고 있었던 일이다. 이는 그릇된 것으로 그를 두 번 죽인 일이다.
반면 몇몇 농민들은, 이 열사의 죽음이 자결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농업 세계화라는 거대한 난기류 앞에 맥없이 쓰러지고 있는 우리 농업 사정 안팎을 살펴보면, 그들의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이 같은 주장을 했을까.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이 열사 가슴을 찌른 칼은, 국내 곡물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식량파워의 주역 카길이라 하겠다. 1965년에 창업한 카길은, ‘벙기’ ‘루이 드레프스’ ‘앙드레’ ‘인터콘티넨탈’ 등 세계 곡물 거래량의 80%를 주무르는 5대 곡물 메이저 중 선두였다. 급기야 1998년 5대 메이저 중 인터콘티넨탈의 곡물 사업 부분을 인수하였고, 지난해에는 580억 달러(우리 돈 60조) 매출에 8억2천3백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려 식량 절대파워의 최강자 위치에 우뚝 섰다. 따라서 세계 곡물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카길이야말로 ‘미국이 독하게 마음 먹고 20년만 식량을 움켜쥐면 세계 인구 2/3가 아사한다’는 말의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위성을 띄워 세계 곡창지대를 하루 세 차례씩 체크하는 가공할 정보력의 카길은, 손바닥만한 땅덩이에 목구멍을 맡긴 한국 농민들에게는 죽음의 사자인 셈이다.
두 번째 이 열사의 가슴에 꽂힌 또 다른 칼은, 다름 아닌 우리 정부당국의 것이라 하겠다. 집권 여당은 농민을 위한 대선 공약으로 ‘선 대책 후 개방’을 내놓았고,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해 현장에서 몸으로 뛰던 이력의 노 후보는 농민들 절대 다수의 지지를 얻으며 극적으로 집권할 수 있었다. 헌데 노 대통령은, 경쟁력 없는 부분은 퇴출 되어야 한다며 농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혹자는 이를 두고 어쩔 수 없는 흐름의 시장개방이라 말한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개방에 앞서 한국 농업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즉 자생력을 갖춘 농업을 구축할 수 있도록 단계적 이행 방안 청사진인 농업 로드맵(roadmap)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여태껏 어떤 대안이나 아무런 전략도 강구해 놓지 않고서 개방을 전제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임했다. 바로 그것이 이 열사의 가슴에 칼이 되어 꽂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는 400만 농민의 생존권이 아니라 식량안보 차원의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지지율 10%대의 경쟁력 없는 무책임한 정권, 실패한 개혁 코드정권 역시 국민들에 의해 워크아웃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이 열사 가슴에 꽂힌 칼은, 농업 개방 최대 피해자인 농민들의 것이라 하겠다.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농민들은 그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추상적 탁상행정에 의해 무리하게 추진되는 국제 경쟁력 지상주의에 이끌리며, ‘이번에도 어떻게 되겠지’ ‘정부가 농업을 포기하랴’ ‘설마 쌀은 아닐 거야.’식으로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농업 포기 정책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농업 세계화 반대는 과격한 농민운동가나 목소리 큰 농민회원들 만의 몫이라는 것이다. 개방대책 촉구를 위한 농민대회가 곳곳에서 있었지만, 참석해 힘을 실어 준 농민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니 이 열사는 한국 농업이 처한 심각한 사정을 결국 죽음으로 세상에 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열사의 죽음은, 미 식량 파워의 카길. 무책임하고 무능하다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부당국. 그리고 아직도 농업 개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다수의 농민들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열사의 죽음이 갖는 한국농업 십자가의 의미는 채 계절이 바뀌기도 전에 우리 농민들 기억속에서 조차 지워져 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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