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늦게 피운 꽃이 더 아름답다
■ 모시장터 / 늦게 피운 꽃이 더 아름답다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19.03.20 14:47
  • 호수 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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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붉은 빛을 보이는 해는 석양(夕陽)이다. 석양이 해거름에 걸쳐있을 때 드러나는 노을은 더더욱 아름답다. 청년 시절에 제주도 서안 지역에서 보았던 장엄한 노을 풍경은 근 40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산골 마을에서 자라면서 서산 넘어가는 노을 풍경은 아기자기하기는 했지만, 작은 화폭에 담긴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뉴스서천> 948(201937일 자) 2면에 실린 성인문해교실에 실린 글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본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소개되어 온 바 있지만, ‘그저 좋은 사업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지나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내용을 읽어보면서 이야! 참 순수하고 아름답구나!’ 하는 감동을 받게 되었다.

봄입니다. 산천초목이 꽃으로 아름다운 봄입니다. 우리들 마음도 아름다운 봄처럼 항상 예뻤으면 좋겠습니다. 산에 들에 진달래꽃 내 마음에 웃음꽃 우리들은 서로서로 즐겁습니다.”-김영월의 <> 중에서

 

윗글은 <한산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실에 다니시는 80세 되신 어르신의 글이다. 윗글 내용만 놓고 본다면 80세의 십분의 일인 8살 난 아이의 글과 다를 바가 어디에 있는가? 아흔아홉의 고개를 충분히 살아오시면서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으셨음에 틀림없건만, 윗글은 그 모든 것을 무경험한 것처럼 깨끗하기만 하다. 오히려 글 몇 자 더 배웠다고 아는 체하고, 멋 부리려고 하는 필자의 글이 부끄럽다.

우리 서천에 성인문해교실을 운영하는 곳이 32개에 달하며, 서천군청 자치행정과 평생교육팀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뉴스서천>은 늦은 나이에 글을 깨우친 분들이 쓴 시나 수필, 편지글 등과 그림 등을 지면에 기꺼이 소개해 주고 있다. 이에 늦게 피어난 글자꽃을 독자들도 석양에 피어난 노을처럼 붉은 감동으로 대하고 있다.

흔히 김영월 님과 같은 세대의 분들을 만나면, “내가 살아온 과거를 소설로 쓰면 수 십 권이 넘을겨.” 하신다. 정말 그럴 만 하다. 그 분들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여 광복 후의 혼란기, 6.25전쟁과 산업화 내지는 새마을 운동 시대를 관통하였다. 아마 대여섯 세대 이상이 겪을만한 일을 당신 한 세대에 다 짊어지신 분들이다. 유독하게 변화도 많은 만큼 상처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새겨진 분들이 아닌가!

윗글에는 그런 상처의 아픔이나 슬픔이 전혀 없다. 또한 그렇게 지난하게 살아온 궤적에 대한 단 한 자의 언급도 없다. 마치 지난 밤 내내 휘몰아치던 비바람을 다 잊고, 이른 새벽에 풀잎마다 맺힌 이슬방울 같다.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오고, 내일로 건너가는 의 정수를 느끼게 해준다. 그저 의미 없는 이 아니라, ‘아름답고 고마운 삶그 자체로서의 향기를 발산한다.

서천군 성인문해교육을 운영하는 서천군청 자치행정과 평생교육팀과 32곳의 성인문해교육 학습장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분들에게 서천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절을 올린다. 뒤늦게나마 글을 배우고 익혀서 시도 써보고, 그림도 그리시는 분들의 그 순수한 자기표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필자는 교만함을 버리고, 이제 글을 배우는 사람처럼 순수함을 되찾도록 반성과 각성의 기회로 삼겠다.

항상 봄이 오면 어떤 꽃이 먼저 필까?’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부터는 철 지나갈 무렵에 피는 꽃을 보며 더 애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그 꽃을 더 아름답게 볼 것 같다. 이제 늦게 피운 꽃이 더 아름답다는 나름대로의 소신을 갖고, 필자도 순수한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노력하고자 결심해본다.

<권기복, 홍주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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