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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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위원 정해용 시인
  • 승인 2019.05.07 22:00
  • 호수 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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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 없이 피고 지는 꽃나무들아

요즘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요즘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5월의 광주에 일부러 찾아가서 아직도 아물지 않은 5월의 상처를 후벼 파는 집단이 아직도 20~30%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세상.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나라가 다른 나라의 쿠데타를 부추기고 버젓이 지지를 선언해도 대다수 국가들이 입 다물고 바라만 보는 세상이 과연 정상일까.

평생 동안 세상에서 인의(仁義)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다 돌아간 공자(孔子)도 만년에는 퍽 지쳐버렸던 듯하다. 그가 살던 2500백년 전 춘추시대의 세상도 인심은 언제나 각박했고, 정의는 언제나 시련을 당했다. 아무리 선량한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도 세상은 탐욕의 경쟁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했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노신초사(勞身焦思)하던 끝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가 칩거를 선택하던 70세 무렵이었을 것이다.

시경에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광야를 떠돌고 있다(匪兕匪虎, 率彼曠野)’는 대목이 있다. 문득 궁금하구나. 우리가 곤경에 처한 이유를 너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과연 나의 이상이 잘못된 것인가, 세상이 잘못되어 나의 이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자로와 자공, 안회의 대답이 차례로 이어졌다.

1. (자로)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충분히 지혜롭지 못하니 세상이 우리를 믿지 못하고 괴롭히는 것 아닌가요?

2. (자공) 선생님의 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천하 어느 나라도 받아들이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목표를 그들 눈높이에 맞도록 조금 낮추시면 어떻겠습니까.

3. (안회) 선생님의 뜻이 지극히 크기 때문에 어떤 군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뜻을 꺾지 않고 여전히 큰 뜻을 실현할 길을 찾아 고군분투하고 계십니다. 누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큰 문제입니까. 그럴수록 군자의 면목은 더욱 드러날 뿐입니다. 명확한 정치적 이상이 없다면 우리의 치욕이겠으나, 명확한 이상이 있는데도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자들의 치욕일 뿐입니다.

마지막 안회의 대답에 공자가 비로소 밝게 웃었다.

안자여, 만일 자네가 대부호가 된다면, 나는 자네의 집사가 되고 싶네

뉴스를 돌려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그것을 심판하는 정치권력이나 사법권력의 판단조차도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때가 많다.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권력자들뿐이랴. 이상한 사건의 뉴스를 보면서 거기 달린 댓글을 통해 여론의 반응을 살펴보면, 민심 또한 제정신인가 의심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내 생각에 옳은 일인데 비난 댓글이 폭주하고, 내 생각에 틀린 일인데 칭송의 댓글이 즐비한 경우도 허다하다. 이쯤 되면 내가 미친 것인가, 세상이 미친 것인가의문도 가져볼만하다. 물론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으니, 반드시 입장 바꿔 내 자신을 반성해보는 자세도 필요하겠으나, 지금 세상은 참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말없이 피었다 지는 5월의 꽃들을 본다. 나무들은 저렇듯 신록으로 우거져, 한해를 보내고 다시 겨울의 한산함으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이 알아주거나 알아주지 못 하거나, 세상이 인정해주거나 무시하거나, 그저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 온 데로 돌아가는 초연함. 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자연이라고 부른다. 공자에게서 위대함을 느끼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굳이 위대하려고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자유함이 진실로 그 위대함의 뿌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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