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소리 없는 변화
■ 모시장터 / 소리 없는 변화
  • 박자양 칼럼위원
  • 승인 2019.06.06 13:28
  • 호수 9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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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흑 같은 어둠이다. 어찌된 일인지 어미와 떨어진 어린 멧돼지 한 마리가 낡은 벽돌들로 겨우 경계만 둘려진 작은 공간 구석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이곳으로 야행성인 성체 표범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온다. 표범은 후각을 앞세운 감각이 이끄는 대로 새끼멧돼지를 바로 찾아내어 코끝으로 슬쩍 건드려본다. 어린 것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튀어 일어나 반대방향으로 두어 걸음 물러나더니 다시 쓰러져 잠이 드는지 움직이질 않는다. 보통의 경우 이 같은 상황에서의 새끼돼지는 성체 표범에겐 그저 한 입 크기의 간식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표범은 무심한 듯 새끼 멧돼지를 두고 슬그머니 그 자리를 뜨고 만다. 또 다른 공간에선 고슴도치들이 한 걸음도 안 되는 거리에서 어슬렁거리며 밤사냥을 나서는 하이에나 무리를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땅바닥을 뒤적거리며 이리 저리 무리지어 다니고, 바로 옆 부서져 기울어진 서까래엔 박쥐 무리가 나지막한 소리로 서로를 확인하며 웅숭거리고 매달려 있다. 누구도 누구를 사냥하지 않는 묘한 기운이 감도는 밤, 오직 시간이 흐를 뿐, 분명 이례적이나 평화로운 듯 밤이 깊어간다. 통상적인 자연법칙이 빗겨가는 삶의 현장이다.

         장대한 나일강의 발원지인 빅토리아호는 지구의 적도를 횡으로 품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담수호로,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3개국이 국경을 맞대고 호수를 공유할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들 국가 가운데 독재자 이디 아민(Idi Amin)의 압제에 수십 만 명이 학살당했던 그리 오래지 않은 끔찍한 과거를 지닌 우간다가 호수의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바다를 연상케 하리 만큼 거대하고 아름다운 빅토리아호의 우간다측 호변에는 독재자의 거처였던 대규모의 초호화 거주공간이 폐허가 된 채 그의 폭압을 증거라도 하듯 지금도 남아있다. 호화 거처의 여러 공간을 갖은 모양으로 나누던 수많은 격벽들만 망가진 골격표본처럼 늘어서 있고,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는 작은 공간들엔 아프리카의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기존의 규칙을 넘어선 각양각색의 형태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한 지역, 특정 공간에서 현재 진행 중인 동물계의 단면을 바라보는 인간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고, 진리라고까지 여겨졌던 약육강식이나 먹이망으로 엮여진 상대적 상호관계에 따른 모든 규칙이 통째로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에 기대어 이 같은 현상을 단발성 사례로 보아 넘길 것인가, 아니면 자연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체계를 근본부터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인가. 쏟아지는 질문의 홍수 속에 사례의 나열 수준에 멈춰 선 학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애써 외면하는 중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본시 사물에 대한 인식이란 사고를 넘어서 찰나에 일어난다. 그러니 인식의 초기형태는 오감을 빌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실재하는 사물에 대한 감지 과정이며, 이는 언어와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감각체계다. 하지만, 주관을 넘어 검증이 가능한 형태의 인식체계는 결국 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니, 규칙성을 선호하는 인간은 반복되는 증거 현상들을 끊임없이 수집하고 이를 근간으로 규칙을 세워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굳이 증명할 필요 없는 진리에 근접한 몇 안 되는 명제 중 하나가 등장하고, 이 변수의 등장으로 규칙은 또 다시 지속적인 수정작업으로 내몰린다.

          활동성이 최고조에 도달한 시점에 간식거리 정도에 지나지 않는 새끼 멧돼지를 그냥 지나치는 표범이나 한 걸음 거리의 고슴도치 가족을 방관하는 배고픈 하이에나 무리의 행동양태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기존의 틀을 깨고 그 사고의 외연을 확장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자명하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모순됨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재단하는 인간의 머릿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경직된 사고(思考)인 것을.

 

          자연이 내어 준 복에 겨운 순리를 거스르며 친환경에너지를 볼모로 잡힌 돈벌이놀음에 서천군 판교면 한 골짜기엔 시름이 깊어간다. 한낱 짐승에 지나지 않는 목숨들이 살아가는 방식에도 기대나 상상을 뛰어넘는 면면이 있건 데는, 인간의 삶 가운데 일상으로 벌어지는 일들 사이는 또 얼마나 복잡다단하겠는가. 하지만, 스스로 인간이길 자신한다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그림자 만큼만의 양보와 그 한 귀퉁이 만큼만의 양심에 기대어 역리를 되돌려 상생을 도모할 수 있도록 모두의 지혜와 성의를 모아볼 때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편안하고자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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