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어려서 하루 놀면 늙어서 일 년이 고되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어려서 하루 놀면 늙어서 일 년이 고되다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9.06.06 13:29
  • 호수 9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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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들 사이에는 공부에 대한 금언이 몇 개 있는데 논어 위정편도 이 중 하나일 것이다.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卽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卽殆

공부를 하기는 하는데 생각 없이 무작정 공부만 하게 된다면 아둔해 질 것이고. 죽치고 앉아서 온갖 생각은 다하는데 정작 공부를 하지 않는 다면 그 생각은 되레 위태롭다는 말이다. 그래서 현자들은 후학들이 더 이상 방향을 잃고 헤매지 말라는 뜻으로 글로 남겨둔다. 옛 선인의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순자는 이를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묻지 않아서다<미혹자불문迷惑者不問>”라는 말로 기록했고, 상산 육구연은 이 말에 문대신 독을 넣어 미혹자부독迷惑者不讀이라며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책을 읽지 않아서다라는 말로 제자들을 다그쳤다 한다.

흔히 공부를 일러 평생공부平生工夫라 하는데 1655년 효종75월 정언 이민서李敏敍가 효종에게 올릴 상소문을 찬한 뒤 별지에 따로 적어놓은 글에서 공부라는 말이 유래됐다. 본디 옛 사람들은 공부工夫라는 말 보다는 이나 수신修身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공부工夫라는 말은 사대부가 아닌 타 계급층에서 신분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기술을 연마한다든지 의술이나 법률을 연마하는 행위를 일컫는, 아웃사이더 용어에서 요즘 말로 하면 제도권으로 들어온 단어가 되는 셈이다. 그 후로 공부라는 말은 지금의 일상어가 되었다 전한다.

사실 공부라는 말은 그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던 말이다. 병조판서 이항복은 영의정을 지낸 권철의 아들 권율의 사위로 제자가 여종의 자식 정충신이다. 훗날 공을 세워 금남군에 봉해지면서 역사의 중심에 선 입지전적의 인물이 된 인물인데 이항복이 15세 된 그를 가르칠 때도 이미 공부라는 말을 썼다 하니 아마도 당시 청소년 나이 또래에서는 학이나 수신修身이라는 말보다는 공부라는 말이 더 일상어가 됐을 것이다. 훗날 둘은 동서지간으로 이항복은 말년이 몹시 불운했는데 그의 마지막 임종을 지킨 이는 정충신이 유일하다고 전한다.

이항복과 짝을 이루는 이름이 이덕형으로 오성과 한음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지만 서로 당색은 달랐다. 이항복은 서인이고 이덕형은 남인이었다. 그는 북인의 영수 이산해의 사위이고 이산해가 토정비결을 지은 토정 이지함의 조카이므로 항렬로 따진다면 이지함의 조카사위가 된다. 그리고 또 남인 중에 인물이 하나있는데 오리 이원익이다. 그의 손녀사위가 훗날 남인의 영수가 되는 미수 허목이다. 그는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의 정적이었다. 또 이원익과 이순신은 사돈관계로 발전하는데 이원익의 서출 아들과 이순신의 서출 녀가 혼인을 맺으면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정충신을 비롯 오성, 한음, 오리, 우암, 미수. 이들의 청소년기는 공부에 관한한 얼마나 길고긴 시간들을 뼈아프게 절차탁마했는가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내들이라는 것이다. 공부의 끝을 보겠다는 직하절문直下切問의 우암, 배움을 이루기 전에는 문밖에 나가지도 않으며 뒤를 돌아보지도 않겠다는 불외불고不外不顧의 정충신, 벼루가 다 닳아 없어지기 전까지 일어서지 않겠다는 갈마불기竭磨不起의 오리 이원익, 남아 청춘에 뜻을 세웠거늘 어찌 뜻을 이루기 전에 물러서랴, 종신불퇴終身不退의 미수 허목. 이런 공부를 후벼 팔알자와 뼈끝박자를 써서 알박지학挖髉之學이라 하는데 연원은 귀곡자鬼谷子에서 비롯된다고 전한다. 공부하는 고통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공부라는 게 하자고 덤비면 또 못할 것도 없는 게 공부 아니겠는가.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청춘을 일러 열두 번 꼬꾸라져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이라고 한다. 도대체 뭐가 못 미더워서 그깟 공부가 뭐 대수라고 목숨 걸고 공부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그리도 공부들을 안 한단 말인가. 어려서 하루 놀면 늙어서 일 년이 고되다고들 겪어본 사람은 다들 말하는데. 월성이 동쪽으로 떠나면서 벽에 썼다는 단심丹心시 초구는 이렇다.

남아입지출향관男兒立志出鄕關 학약무성사불환學若無成死不還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났거늘 배움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으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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