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부모자식 간에 도의를 논하는 즐거움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부모자식 간에 도의를 논하는 즐거움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9.08.08 07:17
  • 호수 9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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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83년 노나라 애공哀公 11<丁巳> 노와 오나라가 회합할 때 오나라 군주는 태재太宰 를 대사로 보내 업무를 처리하는데 노나라에서는 공자의 제자 자공이 영접을 담당하게 됐다. 공자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은 오나라 태재 백비는 자공에게 묻는다<태재문어자공왈大宰問於子貢曰>.

공자께서는 성인이십니까?<부자성자여夫子聖者與> 어찌 그렇게도 모든 일에 능하십니까<하기다능야何其多能也>?”

자공 답<자공왈子貢曰>, “날 때부터 하늘이 그분을 성인으로 삼고자 하셨으니<고천종지장성固天縱之將聖> 그래서 그럴 겁니다<우다능야又多能也>”

그러고는 돌아와서 오나라 대부 태재 백비와 했던 말을 공자에게 보고하니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말한다<자문지왈子聞之曰>. “태재 따위가 뭘 알겠는가<태재지아호大宰知我乎>. 나는 어려서<오소야천吾少也> 천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한 것이다<고다능비사故多能鄙事>. 그렇다고 군자가 뭐든 다 잘해야 하는가<군자다호재君子多乎哉>. 다는 아니다<부다야不多也>”<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글 중 부다야不多也란 대목이다. 횡거 장재는 성인의 마음이라는 성심聖心 제하의 시를 통해 풀어낸다.

성심난용천공구聖心難用淺功求 성인 마음은 얕게<조금> 공부해서는 구하기 어렵고/ 성학수전예법수聖學須專禮法脩 성인의 학문은 예와 법<공부습관>으로 닦아야 하며/ 천오백년무공맹千五百年無孔孟 천오백년 동안 공자 맹자 같은 분이 없었으니/ 수종활수견원두誰從活水見源頭 누가 흐르는 물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보랴

그러면서 제자에게 부언 설명한 말이 학채하시일여리學債何時日與利라 하여 구한말 까지는 학채여리學債與利로 통용된 말이다. 공부에 빚진 자 언젠가는 그 빚이 네게 이자를 요구한다. 더 쉽게 풀어서 지금 공부 할 때 공부하지 않으면<금시학불학今時學不學> 그 공부 안 함으로 인해서 눈에서 눈물 흘릴 때가 온다는 말이다<기인필체이其因必涕洟>. 이 시기에 논어를 공부했던 제자가 17세 소년 정호<> 동생<정이> 형제라 한다. 그가 논어를 다 마치고 했다는 말은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경책 중의 하나다.

정자 말한다<정자왈程子曰>. “나는 17, 18세부터 논어를 읽었는데<이자십칠팔독논어頤自十七八讀論語> 그때는 이미 글 뜻 알았다<당시이효문의當時已曉文義>. 오래도록 읽을수록<독지유구讀之愈久> 다만 깨달음의 맛이 깊고 길었다<단각의미심장但覺意味深長>. 요새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모른다<금인불회독서今人不會讀書>. 만약에 논어를 읽어서<여독논어如讀論語> 읽지 않았을 때에 이러이러한 사람이<미독시시차등인未讀時是此等人>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면<독료후우지시차등인讀了後又只是此等人> 그 사람은 논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다<변시불증독便是不曾讀>”

훗날 정호 정이 형제는 매번 책을 한권씩 끝낼 때마다<세책례洗冊禮> 이 말을 반복해서 했다. 그만큼 자신이 공부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고强固했다는 말이다. 개인의 삶에서 공부를 하냐 마냐의 서사는 늘 갈등과 대척점을 이룬다. “오늘 하루쯤 공부 하지 않아도 돼라는 나태함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놀자라는 행동과 결합될 때 공부의 이야기를 둘러싸고 우리는 양보없는 싸움에 빠져들 수 있다.

조선 중기 육창六昌 중에 시로서 강호를 흔들었던 김창흡은 조카의 죽음에 만시輓詩를 쓰면서 행복론을 썼는데 인간사 부모자식간의 행복은<인간부자락人間父子樂> 나무 그늘 있는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림하林下> 도의<공부>를 논함이 제일이다<도의진道義眞>”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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