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도지정 무형문화재의 현재와 미래/(4)한산모시·세모시
■ 기획/도지정 무형문화재의 현재와 미래/(4)한산모시·세모시
  • 고종만 기자
  • 승인 2019.09.26 08:08
  • 호수 9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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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모시 도지정, 세모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바로잡아야

모시짜기 숙련여성 고령화…체계적 후진 양성 절실

이 기사는 충남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연중인 국가지정 방연옥 무형문화재
▲시연중인 국가지정 방연옥 무형문화재

어린 시절 추석 무렵이 다가오면 어머니의 베짜는 소리가 하루라도 빨리 끝나기를 학수고대했던 기억이 있다. 모시전이 서는 한산장에 내다 팔고 돌아오시면 추석 때 신고 입을 신발과 옷을 사가지고 오셨기 때문이다. 3형제 중 장남이었던 필자와 막내 동생은 항상 꼬까옷 차지였지만 둘째인 필자 동생은 왜 나는 형이 입던 옷만 입어야 하느냐며 새 옷 사달라고 투정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모시는 필자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인 70년대 초 한산을 포함한 서천지역 마을마다 아낙네들의 대표적인 돈벌이 수단이었다. 아낙네들은 남편을 도와 농사일, 집안일에 여유가 없었음에도 불구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너나 할 것 없이 베짜기에 매달렸다. 때문에 집집마다 베 짜는 소리가 밤늦게까지 들렸다. 40여년이 지난 현재 베짜는 소리는 극히 일부, 가정과 한산모시관 내 기능보유자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1980년대 지금의 한산 소곡주 갤러리 부근에 개설된 한산 모시전 모습
▲1980년대 지금의 한산 소곡주 갤러리 부근에 개설된 한산 모시전 모습

한 장(5일장으로 5일마다 장이 서는 것을 말함) 1필을 장에 내다 팔아 수입이 짭잘했다. 섬유산업 발달과 1980년대 후반부터 값싼 중국산 모시가 국내에 상륙(모시시장 90% 잠식)하면서 수입이 줄어 한산세모시시장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태모시, 굿모시, 필모시 등 모시 1필이 탄생하기까지 전 과정을 능수능란하게 해왔던 아낙들이 고령화로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한산모시 생산량 역시 급감했고, 급기야 모시상태를 검사해 가격을 매겨 사고파는 모시전(현재 한산소곡주 겔러리)2014년께 자취를 감췄다.

▲새벽 모시전에 모시 파는 아낙네들의 숙소로 이용됐던 한산 자전거포
▲새벽 모시전에 모시 파는 아낙네들의 숙소로 이용됐던 한산 자전거포

필자의 어머니를 비롯한 아낙네들은 한필의 모시를 짜고 나면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한산 모시전 일대에 성업 중이던 500원짜리 숙소(최소 5명에서 최대 20명까지 묵을 수 있었다 함)에서 밤을 지낸 뒤 새벽 4시께 대략 30분간 서는 모시전에서 모시를 판매하곤 했었다. 하루저녁 500원이었던 숙소비가 2000원까지 올랐다.

한산세모시 탄생까지 3모시 8공정 거쳐야

1필의 모시가 탄생하기 까지는 태모시, 굿모시, 필모시 등 3모시 8공정을 거쳐야 한다. 8과정은 모시재배-태모시 만들기-모시째기-모시삼기-모시날기-모시매기-모시꾸리기-모시짜기의 여러 공정을 거치며 분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20111128,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6차 무형문화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한산모시짜기가 줄타기, 택견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산모시베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알아본다.

1. 모시 재배

쐐기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 모시풀은 영하 15도 내외에서 뿌리가 얼고 서리에 약해서 서리가 늦게 시작되고 일찍 끝나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자란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한산에 사는 한 노인이 건지산에 약초를 캐러 올라갔다가 모시풀을 발견하고 껍질을 벗겨보니 보드라운 속껍질이 있어 이로써 옷감을 짠 것이 최초라고 한다. 19803.5ha에서 199232.3ha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반전을 보이면서 2004년께 4.2ha로 감소했다. 한산모시산업클러스터 사업에 힘입어 200715.2ha로 증가했다.

2. 태모시 만들기

수확한 모시풀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속껍질을 이용해 인피섬유(줄기 형성층의 바깥쪽 조직에 함유되어 있는 섬유)를 만드는 과정이다. 벗겨낸 속껍질을 물에 적셔 불순물을 제거하고 햇볕에 말려 물기를 제거한다. 이 과정을 네다섯 번 반복한다. 완성된 태모시는 중간상품으로 시장에 낸다. 태모시 생산농가는 1994326농가에서 2005265농가로 감소했다고 2007295농가로 소폭 상승했다.

3. 모시째기

치아를 이용해 태모시를 잘게 쪼개 모시 섬유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는 과정이다. 태모시를 하루쯤 물에 담가 말린 후 이를 다시 물에 적셔 실의 올을 하나하나 쪼갠다. 가장 숙련된 기술을 요하며 상저, 중저, 막저로 구분되는 모시의 품질이 이 과정에서 결정된다. 주로 오랜 경력의 시어머니가 담당하며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일은 힘이 좋은 며느리가 담당한다.

4. 모시삼기

쪼갠 모시올을 이어 실을 만드는 과정이다. 모시째기가 끝난 모시올 한 뭉치를 쩐지라는 버팀대에 걸어놓고 한올씩 빼어 양쪽 끝을 무릎 위에 맞이어 손바닥으로 비벼 연결시킨 다음 광주리에 쌓아놓는다. 이 과정에서 실의 균일도가 결정된다. 이처럼 길게 한 가닥으로 이은 덩어리 모시실을 굿모시’, 또는 모시굿이라 하며 조심스레 십자형으로 묶어 시장에 낸다.

5. 모시날기

모시날기는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10개의 모시 굿에서 젓을대의 구멍으로 실끝을 통과시켜 한 묶음으로 한 후 날틀에 걸어 한 필의 길이에 맞추어서 날실의 길이로 날고 세수에 맞추어 날실의 올실을 맞추는 과정이다. 한산모시는 보통 680올이거나 700올을 넘는 것들이 많다. 올 수가 많을수록 그 질이 더 섬세한 모시가 된다.

6. 모시매기

실에 풀을 먹이고 모시짜기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모시날기가 끝난 날실을 세수에 맞는 바디에 끼워 한쪽 끝을 도투마리에 매고 다른 쪽 끝은 끌개에 말아 고정시킨다. 콩가루와 소금을 넣어 만든 풀을 베솔에 묻혀 날실에 골고루 먹여 이음매를 매끄럽게 한 후 왕겻불로 말리면서 도투마리에 감는다. 모시짜기에서 날줄이 된다.

7. 꾸리감기

모시를 나는 작업과 매는 작업은 모시 직조 과정에서 날줄을 매는 작업이지만 꾸리감기는 모시 굿을 씨줄로 사용하는 데 알맞게 모양을 만드는 작업이다.

8.모시짜기

베틀에서 베로 직조되는 과정이다. 날실이 감긴 도투마리를 베틀의 누운 다리 위에 올리고 바디에 끼운 날실을 빼어 2개의 잉아에 끼운다. 다시 바디에 끼워 매듭대에 매고 말코에 감아 날실을 긴장시켜 놓은 다음 베틀의 쇠꼬리채를 발로 잡아당겨서 날실을 벌려 준비된 씨실꾸리가 담긴 북을 좌우로 엮어 짜는 과정이다. 이 같은 과정이 반복으로 탄생한 모시 베를 필모시라 하며 최종 상품으로 시장에 나온다.

절름발이식 한산모시짜기 교육 개선되어야

앞으로 10~20년이면 한산세모시의 맥도 끊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모시 8과정을 두루 소화하며 모시를 생산할 수 있는 여성들의 고령화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모시 째기, 삼기, 매기, 짜기 과정을 할 수 있는 여성들의 연령대가 60~80대 인 점을 감안할 때 후계자 양성 없이는 한산 모시짜기의 맥은 끊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서천군의 경우 한산모시짜기 맥을 잇기 위해 모시학교를 개설해 학생들을 선발해 양성 중에 있지만 한산모시 전문 인력 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현재 한산모시짜기 교육생은 4명으로 격일마다 한산모시관 작업실에 나와 2대의 베틀로 모시를 짜고 있다.

문제는 학생들이 모시 짜기에만 전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지정무형문화재 박미옥 기능보유자는 한필의 모시가 탄생하기 까지는 3모시 7과정을 능수능란하게 해야 가능하다면서 특히 모시 째기와 모시삼기는 모시째기와 함께 모시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 과정인 만큼 철저한 교육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오랜 시간을 거쳐야 좋은 모시를 생산할 수 있는 만큼 교육생들에게 한산모시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긴 호흡을 가지고 충분한 지원과 함께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계속해서 박미옥 도지정 무형문화재는 불과 십 수 년이면 한산모시의 맥이 끊길 것이 뻔 한데도 지자체 등 관련 기관과 담당공무원들이 개선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 너무 아쉽다며 지속가능한 문화재 행정을 촉구했다.

국가 및 도지정 무형문화재 개량베틀 모시짜기?

위상 걸맞게 전통베틀로 짠 모시 판매해야

▲충남도는 한산세모시 도지정 무형문화재 나상덕 여사가 별세하자 공개선발과정을 통해 나상덕 여사의 딸인 박미옥씨를 도지정무형문화재로 선발해 맥을 잇도록 했다.

한산모시는 일반모시와 세모시 2종류로 국가 및 도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산을 대표하는 것이 세모시인데 세모시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도지정 무형문화재 1호인 한산세모시(기능보유자 박미옥)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4호인 일반모시(기능보유자 방연옥)가 도지정 문화재로 바꿔 지정되어야 마땅하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공무원은 일반모시가 국가지정, 세모시가 도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지정됐는지 모르지만 잘못됐다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한산을 대표하는 세모시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각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세모시 짜기가 모시올이 가늘어 한 필을 짜는데 더 많은 시간과 고난도를 요하기 때문이고 모시섬유 특유의 아름다움의 결정판이기 때문이다.

전통베틀도 모시짜기에 편리한 개량베틀이 보급되면서 전통베틀에 의한 모시짜기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 국가 및 도지정 무형문화재 모두 공개행사 등이 있을 때만 전통베틀로 모시 짜는 것을 시연할 뿐 개량베틀로 모시를 짜고 있는 것이 이번 취재과정에서 확인됐다. 국가지정 및 도지정 무형문화재이기 때문에 전통베틀로 모시를 짤 것으로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개량베틀에 앉아 모시를 짜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방연옥 국가지정무형문화재는 전통베틀로 짜는 것이 너무 허리가 아파서 문화재청 등에 중요행사 때 시연할 때를 제외하고는 개량베틀로 짤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서 이뤄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박미옥 도지정무형문화재의 경우도 전통베틀로 40년 이상 모시를 짜오면서 최근 2년 새 허리 수술을 두 번 했다면서 모시 품질 면에서 개량베틀로 짠 것이 전통베틀보다 우수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전통베틀은 고정되지 않은 바디집에 의해서 모시를 짜는 것이어서 힘이 균일하게 가해지지 않을 경우 올을 풀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두 개의 고정된 바디집에 의해 모시를 짜는 개량베틀은 균일하게 모시를 짤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박미옥 도지정무형문화재는 개량베틀로 짠다고 해서 동일한 품질의 모시가 생산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면서 가늘고 긴 모시올을 구분하지 않고 짜느냐 아니면 가늘고 긴 것을 따로 구분해서 짰느냐에 따라 모시의 품질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인은 국가지정 및 도지정 무형문화재가 일반인과 같은 개량베틀로 모시를 짜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국가지정 및 도지정 무형문화재의 위상에 걸맞게 전통베틀로 짠 모시를 판매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개량 베틀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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