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 산책/비非 난신적자亂臣賊子
■ 송우영의 고전 산책/비非 난신적자亂臣賊子
  • 뉴스서천
  • 승인 2019.09.26 11:44
  • 호수 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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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 등문공장구하藤文公章句下 부자호변장夫子好辯章 제자 공도자公都子가 스승 맹자孟子에게 사람들이 스승님을 일러 논쟁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라고 물으니 맹자는 거침없는 답변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논쟁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땅에 떨어진 그 도를 변호하는 것일 뿐이다. 선대先代의 우임금과 주공周公 공자孔子 등 세 성인聖人을 계승하는 것이 나의 뜻이다. 옛날에 우임금이 치수관리<홍수를 막음> 잘 하니 천하가 태평해졌고<석자우억홍수이천하평昔者禹抑洪水而天下平>, 주공이 오랑캐를 제대로 다스리고 맹수를 몰아내니 백성들이 편안해졌고<주공겸이적구맹수이백성녕周公兼夷狄驅猛獸而百姓寧>, 공자께서는 춘추를 완성하니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들이 두려워하게 되었다<공자성춘추이란신적자구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

여기서 난신적자亂臣賊子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난은 어지러울 란으로 풀이나 나무가 아무렇게나 막 자라나는 모양의 새 을<=>로 엉킨 실타래를 손으로 푼다는 말이고, 신은 신하 신으로 노예를 감시하는 튀어나온 눈으로 백성을 관리 감독하는 자들이며, 적은 도둑 적으로 . . 人 字의 합자인데 무기로 위협해 재물을 강탈하는 도둑을 말한다. 자는 아들 자이면서 동시에 깨달을 자로 쓰이는데 어려서는 포대기에 싸여있지만 장성하면서 두 개의 길을 간다고 하여 현자와 우자의 길이다. 그 분수령이 공부이다. ‘심번의란心煩意亂이라 했다. 의지가 약하면 마음이 안정될 수 없다는 말로 공부에는 많은 의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춘추의 경문 해설서인 춘추곡량전 제10편 소공昭公 십구년十九年도공悼公을 장사 지내다라는 조에 이렇게 기록한다.

자식을 이미 낳았는데<자기생子旣生> 그 자식이 8세 이전에 물과 불을 만나 화를 당한다면<부면호수화不免乎水火> 이는 엄마의 잘못이며<모지죄야母之罪也> 자녀가 10세가 되었음에도<기관성동羈貫成童> 스승을 만나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부취사전不就師傳> 이는 아버지의 잘못이며<부지죄야父之罪也> 스승을 만났음에도 공부를 하지 않는 다면<취사학문무방就師學問無方> 이는 공부에 마음을 두지 못한 본인의 잘못이며<심지부통心志不通> 공부에 마음을 두어 공부를 많이 했음에도<심지기통心志旣通> 천하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면<이명예부문而名譽不聞> 이는 벗의 잘못이며<우지죄야友之罪也> 천하에 이름이 알려졌음에도 관리가 들어 쓰지 않는다면<유사부거有司不擧> 이는 관리의 잘못이며<유사지죄야有司之罪也> 관리가 임금에게 천하에 알려진 그 공부한 이를 천거했음에도<유사거지有司擧之> 임금이 그 공부한 자를 들어 쓰지 않는다면<왕자부용王者不用> 이는 임금의 어리석음이다<왕자지과야王者之過<>>”

이 문장에 일생을 건 인물이 운장 관우와 퇴계 이황의 넷째 형이며 대사헌을 지낸 온계 이해이다. 그는 을사사화로 유배도중 장독으로 사망한 인물이다.< 退溪先生文集卷之十八 書與奇明彦> 훗날 퇴계가 도망치듯 낙향을 하게 된 이유도 넷째 형 온계의 죽음 때문이다.<朴東亮 寄齋雜記>

관우는 조실부모하고 염전 노예로 청춘을 보낸 인물로 얼굴이 붉은 이유는 너무 어릴 때 염전일 하느라 태양에 타서 그런 것이며 일생에 단 한권의 책만 읽었다 전하는데 곧 공자가 쓴 춘추였다. 조조는 관우가 춘추책을 읽던 집을 춘추관이란 당호를 손수 적어주었다. 관우로 인해 춘추관이란 단어는 의에 대명사가 됐다. 우리나라엔 청와대안에 춘추관이 있다.

온계의 말에 따르면 나라를 바로세우고 부모를 올바로 섬기는 충효가 비난신적자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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