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도지정 무형문화재의 현재와 미래/(5)윤주열 서천 베틀장
■ 기획/도지정 무형문화재의 현재와 미래/(5)윤주열 서천 베틀장
  • 고종만 기자
  • 승인 2019.10.03 09:42
  • 호수 9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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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를 이을 사람 어디 없소”

서천 베틀장 전수자 없어 전승단절 위기 놓여

후계자 없는 종목 후대 전승 위해 글과 영상 남겨야

이 기사는 충남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통베틀 구조와 명칭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은 고단하다. 결혼해서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을 도맡아 하면서 경우에 따라선 남편을 대신해 생계까지 떠맡아야 했다. 특히 지금처럼 화학섬유가 나오기 전만 하더라도 가족들의 의복을 만들어 입히는 것 역시 여성의 몫이었다. 한산 등 서천을 중심으로 세모시를 짜던 이 지역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있을 때까지 모시 길쌈에 매달려야 했다. 때문에 생계수단이자 자녀 교육 수단의 하나였던 모시직조기인 베틀은 집집마다 필수품이 되다 시피 했고, 동네마다 아낙네의 베짜는 소리로 넘쳐났다.

전통베틀과 개량베틀

베틀은 전통베틀과 전통베틀의 단점을 대폭 보완한 개량 베틀 2종류가 있다. 전통베틀은 개량베틀에 비해 구조가 간단해보이지만 직조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대략 40여종의 부속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베틀의 구조는 기본 골격인 기대와 잉아를 들어 올리는 전동도구, 날실에 부속되는 부품, 씨실을 짜는 도구, 그 외 부속품들로 구성되는데 기본 골격은 앞다리, 뒷다리, 누운다리, 가로대로 이뤄진다. 앞다리와 뒷다리는 누운다리에 고정돼 있고, 가운데 가로대가 끼워져 양쪽의 두 다리가 세워진다. 앞다리는 뒷다리보다 길어 기대가 뒤는 올라가고 앞은 내려가 경사져 있다. 이 때문에 전통베틀에서 오랫동안 모시를 짜다보면 허리가 아프고 경우에 따라서는 디스크로 인해 허리 수술을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충남도지정 무형문화재 1호 한산세모시 박미옥 기능보유자의 경우, 수십 년 동안 전통베틀로 모시를 짠 후유증으로 허리디스크를 얻었다고 한다, 허리 수술한 뒤에도 모시 짜기를 멈출 수 없어 모시를 짜다 재발해 2년 동안 허리수술을 두 번 받았다 한다. 일반모시를 짜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방연옥 선생 역시 허리가 아파 전통베틀로 모시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국가 및 도지정무형문화재들은 외부인을 대상으로 한 시연을 제외하고는 모시짜기가 편리한 개량베틀로 모시를 짜고 있는 상황이다. 전통베틀로 모시를 짜고 싶어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바디장 구진갑 선생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모시짜기의 주요 부품인 바디를 구할 수 없는 것도 이들이 개량베틀로 모시를 짤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천지역 내에는 전통베틀에 사용하던 바디 등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기능보유자 당사자를 포함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서둘러 매입해 전통베틀 모시 짜기 맥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전통베틀 바디가 파손될 경우 수선해주던 주민이 서천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국은 멸절된 전통바디 맥잇기 차원에서 수선업자를 찾아 가능성을 타진해봐야 한다.

이렇듯 바디는 전통베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 부품 중 하나이다.

계속해서 잉아를 들어 올리는 용두머리는 앞다리 위에 올려진다. 용두머리 앞에는 양쪽에 눈썹대가 끼워져 있고 눈썹대에는 눈썹끈이 달려 잉아와 연결돼 있다. 용두머리 뒤쪽으로는 중간에 신나무가 끼워져 있고 신나무 아래쪽에는 쇠꼬리로 연결되어 끝에 끌신이 달려 있다.

날실에 부속되는 기구에는 직기의 맨 뒤에서부터 날실이 감겨져 있는 도투마리와 뱁댕이, 사침대, 비거미, 눌림대, 잉아, 바디집에 끼워진 바디, 말코로 이어지며 말코는 부테와 부테끈으로 매어져 있다.

모시를 짜면서 폭이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폭을 유지하는 최활이 있고 씨실을 넣는 도구인 북이 있다. 베틀은 이외에도 크고 작은 부속품까지 해서 모두 40여종의 도구와 부품으로 구성된다. 이 중 대부분은 집에서 직접 만들어 썼으나 바디, 바디집만은 전문장인들이 만든 것을 구입해 사용했다.

윤주열 베틀장 조부 솜씨 물려받아

줄잡아 충남 남부, 전북지역에 베틀 2000대 판매

 

▲전통베틀 용두머리 제작 시연중인 윤주열 서천베틀장​
▲전통베틀 용두머리 제작 시연중인 윤주열 서천베틀장​

한산지역에 대략 70년대부터 전통베틀의 단점을 보완한 개량베틀(일본에서 사용하던 베틀의 구조가 그대로 수용됐다는 설이 있음)이 보급되면서 전통베틀에 의한 세모시 짜기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개량베틀이 전통베틀에 비해 장점은 직물을 감는 말코가 베틀에 고정돼 있어 모시 짜는 아낙네가 말코와 연결된 요대를 허리에 감아 날실을 잡아당길 필요가 없어져 모시 짜기 편해졌다는 말이다. 그 다음으로 전통베틀에서는 비거미와 잉아 1개를 설치해 한번은 비거미에 의한 자연개구 다음은 끌신을 잡아당겨 눈썹대가 올라가면서 잉아를 들어 올리는 역개구로 이뤄졌다, 반면 개량베틀은 잉아 틀이 있는 잉아 2개를 설치해 사올과 잉아 올을 번갈아 들어 올려 제작한다. 베 날기를 해 베매기하기 위해 끼우는 바디는 전통베틀이 대나무 바디를 사용하지만 개량베틀은 쇠바디를 사용해 상시 구입이 가능하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어머니도 한산지역에 개량베틀 보급이 본격화된 1980년대 초부터 전통베틀에서 개량베틀로 바꿔 모시 짜기 했다. 전통베틀로 모시 1필 짜는데 열흘 정도 걸렸던 어머니의 경우 개량베틀을 들여놓은 이후 5일장마다 밤잠 줄여가며 1필씩 짜 한산 모시전에 내다 파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머니가 사용했던 전통 및 개량베틀은 수년전 어머니가 불치의 병환으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어느 날 필자의 아버지가 보기 싫다며 불쏘시개로 사용하면서 사라졌다.

어머니가 구입하셨던 전통베틀이나 개량베틀 모두 지난 2016년 충남도지정무형문화재 제52호 로 지정된 윤주열 서천베틀장에게 구입했다.

베틀장 윤주열 선생의 손때 묻은 공구들

화양면 화촌리에서 태어난 베틀장 윤주열 선생은 베틀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해온 할아버지의 솜씨를 물려받았다. “26살 때 처음으로 베틀을 만들어 봤다는 그가 본격적으로 베틀 제작에 매달린 것은 43세 때부터라고 한다. 올해로 31년째인 그가 만든 전통 및 개량베틀은 어림잡아 2000대 정도라고 한다.

처음에 어떻게 해서 손에 넣은 것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낡은 비단베틀을 (부인 임수월에게) 짜보라고 혔지. 짜보고 나서 아내가 불편하다는 점을 귀담아 듣고 개선해서 나만의 개량베틀을 만들게 됐지

부인이 모시를 짜면서 불편하다는 사항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개선해 완벽한 개량베틀을 제작한 윤주열씨의 베틀은 1993년 한산모시관 개관과 함께 전시됐는가 하면 한국 전통문화대학교에 교육용 베틀도 보급했다. 2000년에는 중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에도 윤주열씨의 베틀이 수출된 바 있다. 실제 그가 만든 베틀은 충남 남부지역을 비롯해 전북 임실, 정읍, 순창, 남원 등지에도 날개 돋친 듯이 판매됐다.

모시를 짜는 연령대가 고령화되면서 그가 만든 베틀 판매도 시원치 않다. 전통베틀의 경우 학교 등이 교육용으로 구입하는 것 외에는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고, 개량베틀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뒤 이을 사람 두지 못해 안타까워

취재진 요구에 전통베틀 제작 전 과정 시연

​▲부품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방에 사전에 제작해둔 전통 빛 개량베틀 부품들​
​▲부품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방에 사전에 제작해둔 전통 빛 개량베틀 부품들​

필자는 이번 기획취재를 위해 윤주열 선생에게 전통베틀 만드는 과정을 영상에 담고 싶다고 부탁하자 몸이 불편하다면서도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며 영상촬영에 응했다.

윤주열 선생의 집에 들어서면 마당에 베틀을 제작하기 위해 구입해놓은 목재들이 눈에 들어온다

필자는 취재 약속한 지난 30일 오전 10시 영상제작팀과 함께 윤주열 선생 댁을 찾았다. 그는 취재진이 당도하는 시간에 맞춰 마당 한쪽에서 전통베틀의 중요 부품 중 하나인 용두머리를 끌 등으로 깎기 위해 목재에 연필로 선을 긋고 있었다.

5년 동안 밤낮으로 베틀 만들어 팔면서 돈도 벌었지만 허리도 다치고 다리도 2번씩이나 수술할 정도로 불편해. 더구나 요즘에는 한 쪽 눈을 수술해야 할 정도로 시력이 나빠져 당체 작업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올 들어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다는 그는 더 나빠지기 전에 전통 및 개량베틀에 사용되는 주요 부품 등을 미리 제작해두고 주문이 있을 경우 제작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실제 그의 주택 한쪽에 마련된 공구를 넣어둔 작업실과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방에는 미리 제작해 둔 북실을 넣어두는 북과 도투마리 등 주요 부품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그에 따르면 베틀 제작에 사용되는 나무는 소나무이다. 이른 봄부터 재목을 준비해 잘 다듬고 말렸다가 장마가 끝나고 나면 베틀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베틀은 앙상한 뼈대로 구성돼 있어 제작에 정교함과 정확성이 요구된다는 윤주열씨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 사용해온 손때 묻은 기구를 이용해 선을 그은 뒤 끌로 구명을 깎아내고 짜 맞추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그 베틀은 오래가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날 취재진에게 선보인 누운다리, 앞다리 뒷다리, 용두머리 시연 역시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 한 치의 오차 없이 부품을 깎고 맞췄다.

11월 눈 수술을 앞두고 있는 윤주열씨는 10월중 취재진에게 전통베틀 전 과정을 영상으로 담을 수 있도록 협조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충남도가 지정한 무형문화재 가운데 이수자나 전수조교가 없는 종목이 많다. 고령인 기능보유자가 사망할 경우 서천 베틀장도 구진갑 바디장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윤주열 서천베틀장도 이광구 공작선 기능보유자처럼 나이는 한 살 한 살 먹어 가는데 배우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조바심이 난다면서 지금이라도 배우겠다는 사람만 나타나면 건강이 허락되는 한 시간을 투자해 후계자를 길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천 베틀장의 경우는 서천군이 후계자 없이 전승단절을 우려한 나머지 한국전통문화대학 등에 의뢰에 제작 전 과정을 책자(서천군 전통무형유산 전승기록도서)로 제작해 놓은 상태이지만 제작 전 과정을 영상으로 남겨 놓지 않았다.

국가 및 시도지정 무형문화재 가운데 생계유지가 어려운 종목에 대해서는 이수자 및 전수조교 등을 두지 못하고 기능보유자가 사망했을 경우 사후 복원 등을 대비해 책자 및 제작 전 과정을 영상으로 남겨놓는 작업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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