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도지정 무형문화재의 현재와 미래/(6)이순동 서천침선장
■ 기획/도지정 무형문화재의 현재와 미래/(6)이순동 서천침선장
  • 고종만 기자
  • 승인 2019.10.09 21:39
  • 호수 9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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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침선장 후대 전승 이상 없다

어머니 솜씨 자녀들 물려받아

이 기사는 충남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바느질, 구한말 이전 여성 필수 덕목

침선장 국가 및 시도지정 무형문화재 지정 관리

한산 바늘이랑 실이랑 공방에 전시중인 이순동 침선장의 오방장 두루마기(사진 왼쪽)와 당의

서양식 의복이 한복을 대신하기 시작한 개화기인 구한말 이전까지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있어 바느질은 필수 덕목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여자 어린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바느질법과 함께 기술을 익힌다. 출가하면 어머니에게 배운 옷 짓는 기술을 토대로 철마다 가족들의 옷을 짓고 깁는 것은 물론 이불이나 상보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

이처럼 바느질은 한복이 서양식 의복으로 대체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삶 그 자체였다. 서양식 의복이 보편화되면서 집안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던 바느질 기술(이하 침선) 역시 단절 위기에 놓이게 됐다.

이 때문에 국가가 나서 전통 침선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능보유자인 침선장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데 이어 시도별로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보전해오고 있다.

현재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는 초대 보유자 고 정정완 선생의 며느리인 구혜자씨가 대를 이어오고 있다. 충남도에서는 이순동 선생을 2010년 도지정 무형문화재 44호로 지정했다. 앞서 충남도는 1994년부터 20035월까지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참가해 4차례 입선한 이순동 선생을 20051214일 충청남도 전통문화가정의 집으로 지정한 바 있다.

친정어머니 솜씨 대물림 이순동 선생

일제강점기 소학교 시절 수·바느질 교내 으뜸

전주 태생인 이순동 서천 침선장은 나이 스물 세 살 되던 해인 1956년 남편의 고향인 서천으로 시집와 60년 이상을 살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지금의 초등학교인 완주 소학교 재학시절 학교에서 수()는 물론 바느질과 옷 잘 짓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의 바느질 솜씨가 탁월했던 것은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를 대물림했기 때문이란다.

이순동 침선장의 바느질 솜씨를 물려받은 딸이자 이수자인 황길남씨에게 작품 지도를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친정어머니 김씨에게 바느질 기술을 전수받은 어머니 고 박성녀 여사는 1910년대부터 생업으로 바느질을 시작했다. 삯바느질로 가계를 꾸려온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며 바느질을 배운 이순동 여사는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에게 직접 지은 옷을 선물했다고 한다. 딸이 지어준 옷을 입어본 어머니는 내 품에 꼭 맞게 잘 지었다며 칭찬한 뒤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누가 이렇게 옷을 잘 지었느냐며 부러워한 지인들의 반응을 전했다고 한다. 이순동 선생의 옷 짓는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결혼과 함께 장항 성주리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순동 선생은 모시를 못 짠다는 이유로 결혼 초기 시어머니로부터 고춧가루보다 매운 시집살이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삯바느질로 생계에 보태야 했던 며느리의 바느질 솜씨가 입소문을 타고 수입이 늘어나면서부터 모시 못 짠다는 말씀을 더 이상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실제 1956년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 동네의 삯바느질을 도맡아 해온 이순동 선생은 한복 입는 사람 수가 뜸해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조각보를 만들어 서울 인사동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조각보 작품은 일본인들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내놓기 무섭게 팔렸을 정도라면서 인사동에서 판매된 조각보 가격은 일본에서는 10배 가량 비싸게 판매될 정도로 일본인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장항 성주리에 살고 있는 아낙네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조각보 바느질 기술 전수와 함께 생산에 전념하면서 조각보를 만들던 아낙네가 50명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삯바느질과 조각보 판매로 생긴 수입으로 자녀 학비 마련과 함께 출가한 자식에게 집을 사주기도 했지만 수입액의 일부는 조각보 만드는 데 사용하는 각종 천을 사 모으는 데 주력해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자택과 한산모시공방(바늘이랑 실이랑)에는 보물이 한가득 있다. 좋다는 천만 보면 돈을 아끼지 않고 사 모았던 이순동 선생은 요즘 시중에 나온 천으로 조각보를 만들면 옛날 천의 질감을 살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인사동 조각보 판매후 인생역전

침선장 지정 이후 국내외 전시 통해 솜씨 입증

이순동 침선장이 지난 2007년 인사동 한 전시공간에서 전시한 명주(가로세로 76cm) 작품
이순동 침선장이 지난 2007년 인사동 한 전시공간에서 전시한 명주(가로세로 76cm) 작품

침선장으로 지정된 이후 이순동 선생은 후계자 양성은 물론 전국 주요도시는 물론 해외에서 전시회를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우선 국내에서는 200212월 서울 한국자수박물관 전시를 시작으로 200310월 공주 민속극박물관에서, 2015년에는 국회의원 회관 여성사박물관 포럼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해외에서는 20032월에는 프랑스 파리 시립미술관에서, 200148월에는 이탈리아 밀라노 국제전시회를 가졌다. 조각보 제작 기능보유자로서의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서천침선장 이수자인 딸 황길남씨와 함께 조각보 제작 시연과 강의에 나서고 있다.

실제 이순동 선생은 이수자 황길남씨와 함께 지난 927일 오후 130분부터 서천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2019 문화연음(文化延音: 한 음이 길게 조음대어 두 개의 음으로 되는 일을 뜻함 시티문화재단의 주최와 충남문화재단이 주관한 행사로, 충남무형문화재연합보존회와 한국 메세나협회가 협력 및 후원함)강좌의 일환으로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바느질 법 등을 시연했다.

각종 체험이 가능한 바늘이랑 실이랑 이순동 침선장 공방. 

그런가 하면 올해부터는 한산모시관 건너편에 서천군이 조성한 공예체험 공간에 실이랑 바늘이랑공방에 입주한 뒤 한산모시관을 찾는 체험객을 대상으로 조각보 만들기 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공방이 쉬는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체험할 수 있다. 바늘이랑 실이랑이 마련한 체험프로그램으로는 팔찌 5000호박 브로찌 5000바늘방석 1만원 나뭇잎모양 모시차받침 1만원 12가지 매듭 브로찌 만들기 2만원 등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체험(문의 010-8869-3121)도 가능하다는 것이 이순동 선생을 도와 평일에 공방을 운영하는 이수자 황길남씨의 설명이다. 주말에는 황길남씨의 여동생 황현진씨(현재 한산소재 유치원 교사)가 어머니를 도와 공방 운영을 돕는다. 공방에는 이순동 선생의 작품 외에도 이수자인 딸 작품도 함께 걸려 있다.

서천침선장 이순동 선생 두딸

전수조교 놓고 선의경쟁 펼칠 듯

 

이순동 황길남 모녀

도지정 서천지역내 다른 무형문화재의 경우 대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전승단절위기에 놓였지만 서천침선장은 한산 소곡주와 함께 이순동 선생의 딸인 황길남·현진씨가 침선장 이수를 마친 상태로, 대를 잇기 위한 전수조교 지정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취재과정에서 이순동 선생과 함께 한 황길남씨는 침선장 대를 잇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나도 커서 어머니처럼 바느질 잘하는 사람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그는 2010년부터 침선장 이수 과정에 입문, 20131115일 서천침선장 이수과정을 마쳤다. 이어 그는 20172월 한국복식과학재단의 규방공예지도사 1급자격을 취득한 뒤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89호 구예자 침선장으로부터 3년 교육과정을 수료했고, 20163월부터 20182월까지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1호인 박광훈 침선장으로부터 2년 교육과정을 마쳤다.

이순동 선생은 딸 황길남씨를 나보다 더 꼼꼼하고 잘한다고 평가한다. 어머니의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은 황씨는 2015년 제40, 41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제43회 대한민국공예품대전 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올해 한서대 국제디자인대학원에서 문화재보존전공 석사학위를 취득한 황길남씨는 2017년부터 한서대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침선장 기초바느질 법 등에 대해 특강 및 출강해오면서 중간 중간 들어온 특강요청에 응하고 있는 상태이다.

내 돈 들여가며 (침선장) 전수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황길남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서천침선장 전수조교 시험을 무난히 통과해 어머니의 대를 잇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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