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도지정 무형문화재의 현재와 미래/(9)바디장 복원 가능성
■ 기획/도지정 무형문화재의 현재와 미래/(9)바디장 복원 가능성
  • 고종만 기자
  • 승인 2019.10.31 09:54
  • 호수 9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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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세모시 명맥 이을 바디장 복원 절실

문화재청, “2회 공모결과 ‘실력부족’ 신청자 없었다”

30년 경력 윤기문씨, “실력 검증 기회 달라”

*이 기사는 충남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바디장, 신규무형문화재 지·인정 유보종목 분류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88호 구진갑 바디장의 생전 모습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88호 구진갑 바디장의 생전 모습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바디장 구진갑 선생이 유명을 달리한 지 올해로 13년째이다. 구진갑 선생으로부터 바디장 기능을 전수받아왔던 복수의 이수자들이 있었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는가 하면,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맥 잇기를 거부하면서 보유자 없는 종목으로 분류됐다.

문화재청은 매년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수요조사(보유자 부재종목)를 토대로 다음해 1월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지정 및 인정 조사(이하 지·인정 계획) 계획 수립 및 공모절차를 통해 새로운 기능보유자를 지정해오고 있지만 바디장은 지·인정계획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됐다.

실제 문화재청은 구진갑 선생 사망 이후 2015년과 20182차례에 걸쳐 바디장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공모절차를 진행한 바 있다. 2015년의 경우 구진갑 선생으로부터 바디기능을 이수했던 이수자 A아무개 씨를 대상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시험을 치렀지만 A씨의 실력부족 등을 이유로 탈락시켰다. 이후 문화재청은 2018년 또다시 문화재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모했지만 신청자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공예담당 신미정 주무관은 매년 보유자가 없는 종목에 대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및 인정조사계획을 수립하기에 앞서 전년도에 지자체의 수요조사를 하고 있는데 바디장의 경우 구진갑 선생 사후 2차례 진행했지만 지정 대상자가 없었다면서 바디장을 신규 무형문화재 지·인정 유보 종목으로 분류해놓았다고 말했다.

세모시 바디, 수입 직결되는 베틀 중요부품

한산은 한산세모시의 본고장이다. 모시는 1980년대 후반 값싼 중국모시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만 하더라도 한산을 포함한 서천을 대표하는 산업 중 하나였다. 한산세모시의 본고장답게 집집마다 모시풀을 재배해 태모시로 판매하거나 5일장마다 모시를 팔아 살림살이에 보태왔던 것이 사실이다.

서천으로 시집온 여성은 모시 짜는 일은 필수 중에 필수이다. 모시를 짜는 것을 모른 채 시집갈 경우 시어머니의 구박에 시달려야 했다. 전주 태생인 이순동 서천 침선장 역시 결혼 초기 시어머니의 구박을 감내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순동 서천침선장은 모시는 짜지 못했지만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벌어들인 삯바느질 수입이 모시를 짠 수입보다 많아지면서 시어머니의 구박을 모면했지만 2가지 재주를 타고 나지 못한 여성은 시어머니의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를 감내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산을 대표하는 한산세모시도 베틀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모시를 짜는 직조기인 베틀은 40여종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 어느 부품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입과 직결된 바디이다.

바디는 대오리로 참빗 살처럼 만들어 틈마다 날을 꿰어서 베의 날을 고르고 북의 통로를 만들어 씨를 쳐서 짜는 기구를 말한다. 베의 가늘고 굵음이 결정되는 바디는 베틀에 들어가는 없어서는 안 될 부속 기구로 바디집 바디집 마구리(혹은 바디집 비녀) 바디로 돼 있다. 바디집은 바디틀이라고도 하며, 바디의 테, 즉 홈이 있는 두 짝의 나무로 바디를 끼우고 양편 마구리에 바디집 비녀를 꽂는데 이를 구광()이라 한다. 바디를 제작하는 과정은 바디살 만들기와 기둥살(일명 날대) 만들기, 바디집 마구리 끼우기, 그리고 갓 붙이는 과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바디 살은 대껍질이 단단하고 두꺼운, 34년 된 대나무로 대오리를 만든다.

세모시를 짜는 바디는 바디 살이 600개 들어간다. 바디는 모시 짜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가는 모시에서부터 굵은 모시를 짤 수 있는 바디로 구분해 만들어졌다. 바디 살이 가늘면 가늘수록 고도의 숙련을 요구한다.

박미옥 도지정 한산세모시 기능보유자에 따르면 한산 세모시를 짤 경우 거의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한 바디살 하나에 세모시용 가는 모시올 2개가 들어간다고 한다. 굵은 모시에 비해 모시를 짜는 시간이 긴데다 모시 올이 가늘어 잘 끊어지면서 한필 짜는데 걸리는 기간이 숙련도에 따라서 5일에서 10일까지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베틀의 바디는 개량베틀처럼 고정돼 있지 않아 모시를 짜는데 고도의 집중력과 기술을 요한다. 개량베틀의 바디는 베틀에 고정돼 있어 모시 짜는 사람이 바디가 들어 있는 바디집에 힘을 가해 모시를 짤 수 있는 편리함이 있지만 전통베틀의 바디는 고정돼 있지 않아 바디집에 균일한 힘을 가하지 못할 경우 모시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30년 경력 윤기문씨, 구진갑 후계 적임자

▲윤기문씨가 독학으로 고안해 만든 바디 제작 도구
▲윤기문씨가 독학으로 고안해 만든 바디 제작 도구

현재 서천에는 구진갑 선생의 대를 이을 바디장 후계자는 없는 것일까?

필자는 앞서 서천군이나 문화재청이 사실상 바디장 종목을 후대 전승이 불가능한 종목으로 분류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

한산세모시의 본고장인 60~70년대 한산에는 장날마다 구진갑 선생처럼 바디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저산팔읍길쌈놀이 소리 이수자인 최병숙씨는 구진갑 바디장은 규모가 큰 모시장사였던 아버지와 친구로, 어린 시절 한산장날이면 바디를 판매하고, 부인은 모시를 짜 팔았던 것이 기억난다면서 한산모시시장이 성업 중일 당시 구진갑 선생과 같이 바디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서천지역에서 바디를 수리하거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최병숙씨의 남편이자 현 동산리 이장을 맡고 있는 윤기문씨이다.

올해로 66세인 윤기문씨는 30대 중반부터 바디를 수선해주거나 바디를 만들어 왔지만 그의 존재는 극히 일부에게만 알려져 있다. 전통베틀로 모시를 짜는 여성들에게만 알려져 왔던 그는 2014끊긴 바디장의 맥 잇는다는 제목의 뉴스서천 보도를 통해 대외적으로 알려졌다.

윤기문씨는 윤주열 베틀장의 경우처럼 부인의 바디 수선이 계기가 돼 30여년 넘게 바디 수선과 함께 제작요청이 있을 때마다 바디를 만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운기문씨는 맨 처음 아무 지식도 없이 아내의 고장 난 바디를 고쳐준 것이 소문이 나면서 농사일하면서 짬나는 시간에 주변에서 의뢰한 바디를 고쳐주고 직접 제작해온 것이 30여년을 훌쩍 넘겼다면서 현재 대학 등에서 주문한 바디가 있지만 11월초까지는 추수 때문에 만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기문씨가 구진갑 선생으로부터 바디 기술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실력을 인정받아 제작의뢰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제대로 된 바디를 만들겠다는 집념과 노력 때문이다.

윤씨의 부인은 맥이 끊긴 바디의 명맥을 이을 수 있는 사람이 한산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 서천군이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무형문화재를 담당하고 있는 서천군과 문화재청 모두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다.

부인 최씨는 서천군청이 윤기문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201111월 한산세모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서천에서 남편이 유일하게 바디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와 제작과정을 영상 등으로 담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2014년에 열린 한산모시문화제에서는 남편을 불러 바디 제작과정을 시연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부인 최병숙씨는 구진갑 선생의 대를 이을 정도로 바디 제작기술을 가지고 있는 남편인데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사람은 아니다지금 당장 남편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 및 인정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남편의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공모 신청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기문씨는 기회가 주어지면 한산세모시의 전통을 잇는데 없어서는 안 될 바디 제작에 일생을 바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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