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는 노나라 14대 군주 은공 BC722부터 27대 군주 애공 BC481까지 14대 왕조에서 2대를 제외한 242년간 12대 군주에 관한, 난세를 바로 잡고 정의로 돌아가자는 발란반정撥亂反正의 역사기록이다.
춘추 책을 공자가 지었다<공자작춘추설孔子作春秋說>고 증언해 준 인물은 공자의 손 자사의 제자 맹자이다. 맹자는 본명이 맹가孟軻이며 추나라 사람으로 자사子思의 문인에게서 학문을 배웠다.<맹가孟軻 추인야騶人也 수업자사지문인受業子思之門人. 史記列傳>
세상은 타락하고 도는 땅에 떨어져<세쇠도미世衰道微> 나쁜 말과 사나운 행동이<사설폭행邪說暴行> 일어나니<유작有作>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는 자가<신시기군자臣弑其君者>있는가 하면<유지有之> 자식으로서 아비를 죽이는 자도<자시기부자子弑其父者> 나타나게 되었다.<유지有之> 공자께서 이런 세태를 우려하여 춘추를 지으셨으니<공자구작춘추孔子懼作春秋> 춘추는<춘추春秋> 천자天子의 일이다.<천자지사야天子之事也>
옛날<석자昔者> 우임금이 홍수를 막으시니<우억홍수禹抑洪水> 천하가 평화로워지고<이천하평而天下平> 주공이 오랑캐들을 다독이고<주공겸이적周公兼夷狄> 맹수를 몰아내니 백성들이 편안해졌으며<구맹수이백성녕驅猛獸而百姓寧> 공자께서 춘추를 완성하시니<공자성춘추孔子成春秋>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하였다.<이난신적자구而亂臣賊子懼. 孟子滕文公章句章句下>
춘추는 공자가 철환주유 중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철환주유 14년 쯤 되는 해 가을에 철환주유를 중도하고 69세에 급히 집으로 돌아와 아들 공리의 장례를 치르고 다음해 애제자 안연이 죽고 그 다음해 수제자 자로의 죽음으로 인한 연이은 상사 끝에 써내려간 편년체編年體 1800여條 16500字로 정명正名과 선악善惡을 판별하는 포폄褒貶에 의한 역사의 기록서다.
모든 책은 제자들과 함께 썼는데 비해 춘추만큼은 단 한 글자도 제자들에 첨삭이 아닌 순수 자신의 손으로 또박 또박 명토박아 써내려간 기록물이다. 그래서 공자는 춘추 쓰기를 마친 후 첫 일성에서 왈, “나를 알아줄 것도 춘추요<지아자유춘추知我者惟春秋> 나를 벌줄 것도 춘추다<죄아자유춘추罪我者惟春秋>”라고 평가했다.
춘추에는 세 권의 해설서가 전하는데 이를 춘추삼전이라 한다. 좌구명左丘明이 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곡량숙穀梁叔이 쓴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공양고公羊高가 쓴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이다.
사마천은 춘추를 읽어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털끝만큼의 차이가<실지호리失之毫釐> 천리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차이천리差以千里> 춘추에는 시해당한 임금이 36명<시군삼십육弑君三十六>이며 망한 나라가 52개국<망국오십이亡國五十二>이며 제후들이 도망치고 사직을 보전하지 못한 나라는 부지기수인데<불득보기사직不得保其社稷> 이는 근본을 잃었기 때문이다.<실본失本> 이것이 춘추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불가이불지춘추不可以不知春秋>
평생 춘추만 읽은 인물은 삼국지의 맹장 관우가 유일이고 일생을 춘추를 좌우서로 삼은 인물은 중국 건국의 아버지 모택동과 한국경제의 초석을 다진 고 중수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 후광 김대중 선생이시다. 일반적으로 춘추책은 말그대로 봄과 가을에 읽는 책인데 계절도 계절이려니와 옛 사람은 봄과 가을을 인생의 봄과 가을로 해석을 했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인생의 가을에 해당되는 할아버지가 인생의 청춘에 해당되는 천자문 정도 뗀 손자를 앉혀놓고 춘추를 함께 읽으면서 공부 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할아버지가 손자를 가르친다는 뜻의 격대隔對교육이라는 말이 나왔다.
남아춘추일생재독男兒春秋一生再讀 결국 모든 남자는 죽기 전까지 춘추를 일생에 두 번 읽는다는 말이다. 논어 맹자 등은 집 밖에서 훈도 혹은 먼저 배운이에게 배울 수 있지만 춘추만큼은 반드시 집안에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전하는 공부다. 이유는 춘추는 나이가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설명이 없는 절문切問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