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김장
■ 모시장터 / 김장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9.12.28 05:46
  • 호수 9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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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께서 돌아가신지 사십년, 어머니께서는 이십년이 넘어간다. 그런데도 꿈 속에서의 고향집은 그 옛날 그대로였다. 집은 그대로이나 부모 형제가 북적북적 살았던 옛 모습은 아니었다. 문이 활짝 열려있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 계신, 폐허 같은 텅 빈 퇴락해가는 집이었다. 마루에는 뿌연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고 마당가에서는 마른 가랑잎들이 마당귀에 이리저리 몰려 있었다.

내 집이 왜 이렇게 되었지?”

아무도 살지 않았구나.”

모처럼 고향에 왔건만 이렇게 내 집은 비참하게 변했다. 고향집은 선친께서 내 낳기 전 직접 지으신 집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선친을 새집주인이라고 불렀다. 고향집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꿈속의 그 집을 보면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슬펐다. 꿈속에서 나는 목 놓아 울었다. 효를 하지 못해 이런 벌을 받는 것인가. 세월이 흘러 부모님을 잊을 만도 하련만 불쑥불쑥 꿈속에 나타나 이리도 울컥 그리운 것이다.

언제부턴가 가슴 한 녘 하현달이 지나간다

저녁길도 보내고
새벽길도 떠나 보낸

걸어둔 처마 끝 등불
늘그막
내 고향집

- 아내 2

 

세월이 반세기도 훨씬 넘었다. 그 때 내 선친과 어머니는 지금의 나와 내 아내의 나이보다 젊었다. 어머니가 켜들었던 나를 기다리던 초가 등불은 지금은 아파트 현관 등불이 대신하고 있다.

그 때도 아버지와 어머니도 똑 같이 오늘처럼 김장을 했다. 큰 독 여러 개에 동치미, 김치, 짠지, 짠짠지 등 여러 종류로 분류해 땅에 묻었다. 그러면 겨울 준비는 끝이었다. 그 때마다 눈이 내렸다.

올해도 둘째 내외가 김장하러 왔다. 옛날엔 나도 힘쓰는 일을 도왔는데 지금은 사위가 대신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잔심부름 밖에 달리 없다. 옆에서 얼씬 대지 않는 것이 김장 일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일 다 끝내고 가족들과 함께 김장 배추로 수육과 막걸리로 함께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그것마저 없다면 나라는 존재가 조금은 많이 서러울 것 같다.

운전 조심해라.”

둘째 내외가 바쁘다며 아침 일찍 떠났다. 그 때마다 지엄마는 뭐를 못해줬는지 늘 아쉽고 짠해한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래도 음식을 싸 줄 친정 엄마가 있으니 우리 두 딸 내외는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해마다 김장을 힘들어하니 아내는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 오래오래 할 수 있으면야 얼마나 좋으랴만 가는 세월 막을 장사는 어느 누구도 없다.

한 세대가 지나고 두 세대도 지나고 있다. 저 아이들이 지금의 우리 나이가 되었을 때도 이런 김장을 아이들을 위해 지금의 지엄마처럼 해 줄 수 있을까?

초가집이 아파트로 바뀌었고 김장독이 김치 냉장고로 바뀌었다. 다음 세대는 아파트에서 또 무슨 집으로 바뀌고 김치 냉장고에서 또 무슨 물건으로 바뀔까?

김장을 하고 나니 춥다. 옛날에도 그랬다. 북적북적 살던 옛날집이 그립다. 하늘이 무겁다. 오늘은 함박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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