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가난이 주는 용기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가난이 주는 용기
  • 송우영
  • 승인 2020.01.04 21:32
  • 호수 9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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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하··운데 은나라로 불리는 상나라의 제22대 임금인 고종을 가르친 이는 명재상 부열傅說이었다. 그가 어린 고종에게 가르친 공부가 <예기>에 실려 있는데 예기운禮記云으로 시작되는 옥불탁玉不琢이면 불성기不成器요 인유시불학人幼時不學이면 장장혹지도將長惑知道라는 말이다. 물론 예기에는 인유시불학人幼時不學이면 장장혹지도將長惑知道라는 문장이 인불학人不學 부지도不知道로 되어있지만 고본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풀어쓰면 이렇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으며 사람은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 길을 잃는다라는 정도쯤으로 된다. 이 문장은 평범하게 살 수도 있는 그런 어린이를 성군聖君의 반열에 올려놓은 경책이기도하다. 이 말의 조선 판 삼자경三字經 경책警策치일휴稚日休 기일고耆日苦이다. 어려서 하루 놀면 늙어서 1년이 고되다는 구봉 송익필이 사계 김장생을 가르치면서 습관적으로 했다는 말기도 하다.

이러한 부열의 가르침은 아직도 후학들에게 현재진행형으로 전수되고 있는데 비지지간非知之艱 행지유간行之惟艱도 그 중 하나이다. 서경書經으로 더 알려진 중국 경전 상서尙書 부열說命13에서 부열傅說이 고종에게 한 말인데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실로 어렵다. 공부란 모름지기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과 아는 것을 실천하는 데 있는데 어려서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때요 어른이 되어서는 배운 것을 실천하는 때라는 말이다. 공부란 어려서 학이시습을 하면 어른이 되어서는 불역열호가 되는 것이다. 학이시습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의 기존 해석은 배우고 틈틈이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가 자구적 해석이지만 행간의 풀이는 좀 더 구체적이다. “어려서 공부를 제대로 하면 나이 들어 날마다 사는 것이 기쁘다는 말이 올바른 해석이다. 북송北宋때 거유 횡거 장재 선생의 해석은 그렇다는 말이다.

횡거橫渠 선생의 가르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공부에는 억지스러움이 아닌 수유교융水乳交融 · 물과 젖이 잘 섞이는 모습과 같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의 시작은 34세의 공자께서 노자의 아들 종에게 가르침을 줬던 말이라 전한다.

쉽게 말해서 천자문의 천류불식川流不息처럼 흐르는 물은 멈추지 않듯이 공부만 하면 인생은 그냥 살기만 하면 저절로 된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해서 어려움 없이 술술 풀린다는 말이다. 이 말의 반대는 만약에 공부가 부족하다면 그가 당해내야 할 인생의 고통의 짐은 그만큼 무겁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횡거橫渠 장재張載 선생은 다음 말을 잊지 않는다. ‘형가지단荊軻之斷이그것이다.

사실 이 말은 범중엄范仲淹의 말이다. 10대 후반 20대 초반 무렵 장재張載는 건달만도 못한 입만 살아서 나대는 동네 껄렁패였다. 그런 그가 범중엄을 만나고서는 형가지단荊軻之斷 결심을 한다. 주자朱子는 이를 횡거의 용기橫渠之勇라 불렀다. 주자朱子는 심경心經 군자君子 반정反情을 제자들에게 풀면서 말하길 횡거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서 공부에 걸림이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고치는 데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빨랐으며 공부하기 쉬는 죄를 범치 않은 사조師祖<공자> 사부師傅<맹자> 사도師道<순자>를 제외한 그가 유일일 것이다.

심경이란 책은 진덕수가 대학연의의 대척점에서 쓴 책인데 인간의 마음은 늘 흔들리니 그 중심을 바로 잡으라는 말이 심경의 요지이다. 다산이나 퇴계 율곡, 우암 송시열 등등 조선시대 거유들이 인생 마지막 공부를 심경으로 선택한 데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마음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심경 책을 읽은 뒤에야 마음공부를 알았다. 나의 평생의 공부는 마음에서 나온다. 나는 평생에 이 책을 사서삼경 밑에 두지 않으리라퇴계의 말이다. 생전의 예수는 이런 말을 했다 전한다,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여기에는 그 어떤 주석도 필요치 않다 그냥 가난한 마음 그자체이다. 내려놓음이 아닌 비움도 아닌 더 이상 풍요 속의 빈곤에서 오는 굶주림도 아닌 법정은 이를 텅빈 충만이라 했다. 퇴계도 예수도 법정도 아닌 범부는 늘 가난의 대척점에 있는 그 무엇을 얻기 위해 악을 쓰고 공부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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