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당찬 주부들
아름답고 당찬 주부들
  • 뉴스서천
  • 승인 2003.12.05 00:00
  • 호수 1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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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기벌포예술제 개막식이 있던 지난 11월 15일, 서천군민회관 소강당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예술제 프로그램 중 단연 돋보였던 ‘문학아카데미’가 그것이다. 서천도서관(관장 양인석) 소속 주부독서회(회장 이정옥)가 주관한 이 행사에 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백점 만점에 대략 80점쯤 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생리적으로 어떤 것에 혹평하는 타성을 지녔다. 각종 문화 행사에 채 50점을 주지 않았던 것을 상기할 때 이례적인 점수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자를 사로잡았을까?. 그것은 정치적 오해가 있는 사항들을 교묘히 비켜가며, 행정기관에서조차 다루기 버거운 주제를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연출해 무심코 행사장에 발을 들여놓았던 많은 관객들의 감동을 자아낸 게 그 이유일 것이다. 또 합심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회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 즉 창단 11년 동안 ‘세모시 10집’을 발간해 ‘서천여성문학’ 탄생의 주춧돌을 차분히 놓고 있는 저력을 꼽을 수 있다.
주부독서회는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서천과 월남 이상재’란 주제를 들고 나왔다. 새로운 볼거리 만을 즐겨 쫓는 현대인에게는 식상해 할 소지가 다분했다. 따라서 행사 준비 초기, “왜 우리가 이런 행사를 또다시 해야 하느냐.”, “우리들이 다루기엔 너무 힘이 든다.” 등 내부적 갈등이 외부에 비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천상 어머니였다. 자식을 위해 삼천(三遷)했던 맹모(孟母)와 율곡 선생을 길러 낸 사임당같이 의연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였다. 열달 동안 배를 앓아 생산한 자신의 아이들이, 비폭력 무저항주의자로 잘 알려진 우리 고장 출신 민족 지도자 월남 선생을 닮기 원하고, 자랑스런 서천인의 올곧은 기상으로 성장해 우리 민족 새 역사에 커다란 족적 남기길 바라는 데 마음을 모으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월남 선생은 더 이상 역사 속에서 만나는 추억의 인물이 아니라, 서천의 기운을 먹고 자란 아이들을 통해 미래에 다시 되살아나기를 소망하는 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그들의 저력은 어디에서 파생된 것일까. 주부독서회 역시 성격이 다른 회원들로 구성됐으므로, 자칫 파행으로 흘러가기 일쑤인 여느 동호회와 다를 바 없다. 허나 조금만 관조하면 그들만이 지닌 특별한 것이 발견된다. 모임에 대한 회원들의 애착이 별종에 가깝다는 것이다. 행사 준비 기간 중 필자에게 포착된 에피소드가 있다. 모든 행사는 자금력이 성패를 좌우한다. 대략 4∼5백만원 정도의 자금이 소요된 이 행사에, 사실 주최측으로부터 보조받는 50만원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회원들은 호주머니를 털어 낼 수밖에 없었는데 삽시간에 백만원 가까이 모였다. 여기서 타 단체들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독립자금이 전달되듯 일, 이십 만원이 든 봉투 여러 개가 무명 처리 당부와 함께 회장단에 건네졌다는 것이다. 콩나물 값을 깎아 모은 돈이 행사 진행비로 각출되어야 하는 만큼 자발적 참여를 통해 서로의 이질감과 부담감을 덜어 주려는 아름다운 배려들이다. 또한, 행사를 어떻게 진행할까 수시로 집결해 고민하고, 노래연습장에 모여 시낭송을 준비해 격려하는 등 그 열의가 가상했다. 이런 드러나지 않은 열정과 노력들이 타 단체가 갖지 못한 저력으로 발휘돼 문학 동인지 수준의 ‘세모시 10집’을 발간케 했고,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행사를 막강한 조직력을 앞세워 혹자의 가십거리가 될 작은 실수는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게 만들었다.
그들은 행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번 행사를 잔뜩 벼르고 있는 것 같다. 경기도 양주 땅에 있는 선생을 다시 서천으로 천묘하고, 서천오거리에 동상을 세워 그곳을 오가는 이들에게 선생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날까지 이 같은 행사는 계속될 모양이다. 허나 월남 선생 선양사업은 더 이상 주부독서회의 몫도, 그들에게만 지워진 짐도 아니다. 이제는 누가 참석해 축사를 했고, 어떤 인사가 자리를 빛냈는지 따위는 의미 없이 돼버렸다. 나군수 중심의 행정기관과 서천군의회, 지역의 시민문화단체와 모든 지성들이 적극 동조해 나서야 할 차례인 것이다. 그래서 선생의 높은 뜻으로부터 멀어진 민중들의 애국심을 부추기고, 자신들의 이익을 쫓아 사분 오열된 군민들의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
어쨌든 월남 선생의 민족정신 부활과 오늘날의 국운 하강의 난국을 타개할 제2, 제3의 월남 탄생을 여망 하는 한 사람으로서, 서천주부독서회의 아름답고 당찬 모습에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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