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에 관한 한 촌음도 아깝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에 관한 한 촌음도 아깝다
  • 송우영
  • 승인 2020.02.06 05:52
  • 호수 9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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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량棟梁이란 군주의 덕목과 신하의 덕목 모두에 해당되는 말이다. 동량이란 큰 나무로<동량거질棟梁巨晊> 만약에 나무가 작으면<약촌지목若寸之木> 동량으로 쓰기가 불가하니<불가동량不可棟梁> 봄바람에 잘 길러서<자양춘풍滋養春風> 성장된 후 써야 한다.<이대성장以待成長>

동량棟梁이란 마룻대와 들보로 가정이나 국가의 중임을 맡은 사람이라는 말로 해석되는데 그 연원은 월왕 구천으로 소급된다. 젊은 날의 예용曳庸이 구천勾踐을 만나니 그의 외모가 장경오훼長頸烏喙상이다. 긴 목에 까마귀 부리같이 뾰족한 입을 가진 관상이라 하여 고래로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은 인복이 많지 않아 흥하기도 어렵고 남들과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행복은 함께 누리지 못하기에 군주가 되어서는 안 되는 관상으로 여겼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흥할 수가 없는 구천의 불운한 관상을 장차 그의 아내가 될 여인 예용은 부부로 사는 것은 행복하기 위함인데 고통은 함께 할 수 있어도 행복은 함께 할 수 없다면 그게 어찌 부부라 하겠는가. 한번 부부의 연을 맺었거늘 어찌 고통만 함께 하랴. 나는 구천과 더불어 고통도 함께 하고 행복도 함께 누려 같은 날 같은 시에 같은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고 말했다.

구천의 관상을 바꾸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다름 아닌 공부다. 공부를 통해서 동량棟梁의 재목과 공부를 통해서 조아爪牙의 재능을 키웠다는 말이다. 본래 이 말은 백성을 위해 군주의 입장에서 사용된 말이었는데 전한前漢 때 사람 조엽趙曄이 오월춘추吳越春秋를 쓰면서 오월춘추 구천입신외전句踐入臣外傳편에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섬겨 오왕吳王 합려闔閭에 패한 뒤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하게 한 대부 문종文種에 대해 평가를 하면서 해석이 바뀌게 된다.

대부 문종은<大夫文種者> 나라의 동량이요<國之梁棟> 임금의 조아다<君之爪牙>”가 그것이다. 이런 해석이 나온 후로는 신하가 임금과 나라를 위해 사용되는 동량지재棟梁之材’, ‘조아지신爪牙之臣의 말로 해석되지만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 때 형부상서를 지낸 전당錢唐의 말을 들어보면 조금의 간극은 있다.

조아爪牙란 국가 밖 경계의 일로 범의 날카로운 발톱과 어금니처럼 국가를 국경 밖의 적으로부터 백성을 지켜주는 든든한 군주라는 말이고 동량棟梁이란 국가 경계 안의 일로 집의 마룻대와 들보처럼 큰 건물에 중심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군주가 되어 온 나라 안 백성들이 걱정 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직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군주를 말함이다.

구천의 처 예용은 동량梁棟, 조아爪牙만으로도 남편 구천의 공부 독려가 부족했던지 서경의 전례까지 끌어들이기에 이른다. 서경書經에 에 나오는 안으로는 책 읽는 것을 꺼려하고 밖으로는 노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것 중 한 가지만이라도 있으면 망하지 않는 자가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논어 태백편 17문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공부는 목표가 너무 커서 따라가지 못할까 염려하듯 하면서도<학여불급學如不及> 오히려 공부한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유공실지猶恐失之>. 그렇게 공부를 해야 그 공부가 실천을 통해서 최상에 이르는 공부라 할 수 있다<학지어행지이지의學至於行之而止矣>.” 순자荀子가 그의 권학勸學문에서 밝힌 공부자세이다.

그래서 공부라는 것은 참으로 긴 시간에 걸쳐 노력해야 그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진적력구즉입眞積力久則入>. 옛글엔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 했다. 공부에 관한 한 촌음도 아깝다는 말이다. 청춘이 아름답다는 것은 시간이 있다는 말이요 시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남의 시간을 쫒지 말고 자신의 시간을 유익하게 까먹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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