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옥설지교’의 공부법
■ 송우영의 고전산책 ‘옥설지교’의 공부법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20.02.26 14:54
  • 호수 9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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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과 신하가 함께 공부하는 경연에서 선조가 요즘 선비는 어째서 염치가 없는가하니, 수찬 김성일이 아뢴다. “대신이 뇌물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데 작은 벼슬아치들이 무엇을 본받겠습니까?”

선조가 놀라 그게 무슨 말인가?” 하니, 수찬 김성일이 말한다. “우의정 노수신의 담비가죽 뇌물을 두고 한 말입니다곁에 있던 노수신은 식은땀을 흘리며 아뢴다. “수찬 김성일의 말이 옳습니다. 신의 어미가 늙고 병이 많아 겨울만 되면 추위를 참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변방에 장수로 있는 친척에게 담비 가죽으로 만든 장옷을 부탁하여 늙은 어미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박순이 노수신을 옹호하며 말했다. “노수신은 청렴한 사람이니 단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수신의 아우 극신克愼이 저지른 일일 것입니다.”

선조가 중재에 나선다. “과인의 생각도 그러하오. 우의정이 어찌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겠는가.” 그러자 김성일이 또 아뢰었다. “우의정이 어머니를 섬길 때는 마땅히 기쁜 얼굴로 대해야 하지만 어찌 나라의 벼슬을 팔아 어머니를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의정 노수신은 마침내 임금에게 절하고 사죄했다. 선조는 두 사람을 모두 칭찬하며 말했다. “대간이 곧은 말을 하고 대신이 스스로 자백하였으니 모두 체면을 살렸소. 두 사람 모두 가상하도다.” 경연이 끝나고 우의정 노수신은 학봉 김성일을 불러내어 말한다. “학봉 그대를 보니 옛 성인의 도를 다시 보는 것 같네. 이 일 후 우의정 노수신은 학봉 김성일을 마치 돌아가신 아버지 뵙듯 소중히 하였다고 기록한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선조가 신하들에게 물었다. “나는 옛날의 어느 임금에 비할 수 있는가?” 정이주鄭以周가 답하기를 마땅히 요 임금과 순 임금에 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옆에 듣고 있던 수찬 학봉 김성일이 답한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옵니다. 요순 같은 임금이 될 수도 있고 걸주桀紂같은 폭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임금께서는 가끔 스스로 성인인 체하시어 신하들의 바른 말을 거절하시는 병폐가 있습니다. 이러한 병폐로 걸주가 망했음을 잊지 마소서.”

순간 선조의 안색이 노한 빛으로 싹 변하면서 안절부절못하니 신하들이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 때 서애 유성룡이 말한다. “수찬 학봉 김성일의 말은 우리 선조 임금을 더욱더 성군으로 임하려는 충심이옵니다.” 비로소 선조는 노한 빛을 거두고 술을 하사한 뒤 자리를 파하였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한다.

이는 학봉 김성일의 성품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그런 성품 뒤에는 그의 아버지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교육법이 있다. 강호의 도사들이 들려주는 생참판 증판서라는 전설이 있는데 자신이 출세해서 자식을 이끄는 것보다 자식을 공부시켜 가문을 일으키는 게 더 빠르다는 말이다. 김진은 결국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자식교육에 전념한다. 그리고 47세에 이르러 학봉 나이 8세 때 아내와 사별 후 53녀를 홀로 키워 다섯 아들 모두 등과한 오자등과택五子登科宅의 기록을 세운다. 그야말로 기염을 토하는 지독한 교육임에는 분명하다.

교육방식은 영수옥쇄寧須玉碎 불의와전不宜瓦全이다. 차라리 부서지는 옥은 되어도 구차하게 기왓장으로 남지 말라는 말인데 이를 옥설지교玉屑之敎라 한다. 옥을 쪼아 가루를 내듯 하는 공부법으로 토씨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외워 익혀 머릿속에 쪼아서 그 틈을 꽉 꽉 메우는 공부 방법이다. 어려서 이렇게 공부한 인물이 청나라 말기의 대학자 곽말약이고 조선에서는 갈암 이현일이다. 갈암은 팽수彭壽의 아들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의 외손으로 장흥효는 안동장씨로 김성일의 제자이고 학봉 김성일의 아버지 청계김진이나 갈암 이현일의 모친 안동장씨부인이나 공통점은 하나다. 자식교육에 일생의 명운을 걸고 그 명운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실천했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잘 키워야 부모의 명암이 도드라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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