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를 해서 뜻을 이룬 사내 범중엄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를 해서 뜻을 이룬 사내 범중엄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20.03.04 00:13
  • 호수 9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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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중엄의 일생은 명운다천命運多舛이다. 온갖 것이 다 뒤집히는 폭풍같은 삶이라는 말이다. 물론 훗날에는 북송 고굉지신의 명재상으로 기억된 인물이지만 대서예가이자 학자인 황정견은 범중엄의 공부이력을 대련으로 말했는데 문장은 맑고 곧은 청경정서淸勁精書요 생활은 절조 있는 돈상풍절敦尙風節이라 했다.

그는 일생을 청빈한 관리로 재상을 역임했음에도 평생을 폄직의 연속에서 문장만 남기고 재산은 남긴 바 없었으며 백성을 돕는 인생으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가 길러낸 인물이 구양수이고 구양수 문하에서 여공저와 왕안석 그리고 동파 소식이 나왔다. 이들은 훗날 입각해 나라를 다스리는 치자가 됐으며 그 외로 제도권 밖에서도 인물을 길렀는데 춘추春秋의 대가 태산선생 손씨 앙과 오대유종五大儒宗의 한사람인 횡거橫渠 장재張載가 그다.

범중엄 생애에 한번 있었다는 백면서생 시절 손가라는 젊은이가 춘추는 절문<절제된 문장>이라 가르치는 스승이 많지 않아 부득이 천하를 찾아다니며 공부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춘추를 공부할 수 없다하니 범중엄은 그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시 고을 현감 3년치 녹봉에 무우물급無愚勿及이라는 덕담까지 주며 보낸다. 무우물급無愚勿及이란 공부는 많이 하되 벼슬은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드러나는 지위까지는 오르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1년 후 그가 또 찾아와 말하니 또 전과 같이 돈과 덕담을 주어 보낸다. 그렇게 세 번을 하고 나니 더 이상 그가 찾아오지 않았다.

십년 후 태산선생이 춘추를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천하에 퍼져 범중엄이 나라의 일도 자문을 구할 겸 찾아가 뵈니 구름떼 같은 제자들을 가르치다말고 버선발로 뛰어나와 머리를 땅에 찧는 고두지례를 행한다. 그러자 범중엄은 재상의 신분임에도 태산선생의 머리 조아림을 땅바닥에서 황망히 맞절의 예로 답례하고 그를 일으키며 말한다. 스승 된 분이 어찌 재상 따위에게 고두지례를 행함이 가당치 않습니다. 제자들이 범중엄을 뭐라 생각하겠습니까. 그렇게 손앙은 범중엄의 도움으로 공부해 큰 학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횡거橫渠 장재張載이다. 본래 그는 떠벌이다. 스물이 넘도록 제대로 된 공부는 못한 채 누군가에게 주워들은 귀동냥은 많은지라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제대로 아는 것도 없었다. 어느 날 범중엄이 고을 밖으로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는 면담을 요청한다. 범중엄은 젊은이의 요청을 물리지 않고 그와 대면하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더니 이 책을 깨우치면 인류의 스승이 되거나 귀신이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되어있을 걸세... 그렇게 말하고는 준 책이 중용中庸 한 권이다. 그의 나이 어림잡아 스물 너 댓 살쯤 됐다. 그날로 식음을 전폐하고 공부를 했다 전한다.

횡거선생의 공부에 관한 전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 모두가 범중엄의 가르침이다. 범중엄이란 사내는 오롯이 공부만으로 일생의 명운을 건 사내다. 눈뜨면 공부했고 눈감으면 공부한 것을 잊지 않으려 외웠고 주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남의 집에 가서 일품이라도 팔아 와야 밥을 지어먹고 공부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며 말을 해도 밥 굶기를 남들 밥 먹듯 해 가면서 공부를 했다. 오로지 한 날, 과거시험 보는 그날만을 위해서 모든 걸 참고 공부를 했던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물론 시작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일관되게 공부를 밀어부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공부는 마지막까지 버티는 자가 이긴다고 말하는 거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어 새로 출가한 어머니를 따라 산동성으로 가서 주설이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우연히 자신의 과거를 알고는 잃어버린 옛 이름을 되찾기 위해 공부에 몰두한 사내가 범중엄이다. 이본에 의하면 7세 때 엄마가 또 다른 재가하느라 자식을 버렸다 전한다. 그야말로 인생 바닥이다. 삐뚤어 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그런 자가 비뚤어지는 그런 길로 가지 아니 하고 환경과 처지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공부만으로 등과를 했고 등과 후에는 가문을 일으켰고 그 후에는 진명사해 함으로써 범중엄이라는 이름 석 자를 천하에 각인 시켜놓은 인물이다.

<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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