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 산책 / 공부만으로 명성을 떨친 사내들
■ 송우영의 고전 산책 / 공부만으로 명성을 떨친 사내들
  • 송우영
  • 승인 2020.04.02 14:07
  • 호수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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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때 사천성四川省 지방관이던 아버지 구양관歐陽觀의 돌연사로 가세가 몰락한 탓에 수주隨州 추관推官으로 있는 백부 구양엽歐陽曄의 집에 의탁을 하는데 여전히 사는 것은 궁벽을 넘어 지독한 가난의 연속 이었다 전한다.

구양수의 모친 정씨는 강남여인으로 친정이 꽤 거부에 속했는데 행여 아들이 사는 게 넉넉하면 게을러질까 염려하여 가난을 물리치지 않고 이를 핑계로 아들을 공부시켰다 전한다. 책과 필기구를 구입할 여력이 없어 모친은 강가에서 고운 모래를 가져와 상자에 넣어서 화선지처럼 평평하게 다듬어 그 위에 글과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아들을 가르쳤다 전한다.

후대 사람들은 이러한 훈육 법을 화적교자畵荻敎子라 불렀다. 이렇게 글자를 공부하면서 외운 글자들을 세어봤더니 효경은 1903자요 논어는 11750자요 맹자는 3685자요 주역은24107자요 서전은 25700자요 시경은 39234자요 예기는 99010자요 주례는 45806자요 춘추좌전은 196845자가 되더란다. 대략 하루에 300자 남짓 외우니 4년 반 쯤 지나니까 다 외워지더란다.

이런 공부를 삼시삼독법三時三讀法이라 하는데 새벽 세시부터 일어나서 하루 세 번 읽는다는 말인데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학습 진도 나가고 아침 먹고 초독으로 새벽에 배운 것 외우고 점심 먹고 재독으로 새벽에 배운 것 또 외우고 저녁 먹고 삼독으로 새벽에 배운 것 또 외우는 공부법이다.

그렇게 5세부터 시작한 공부를 10세가 되니까 어느 정도 문리가 나게 되어 대문장가 퇴지 한유의 글을 접하면서 일취월장 문장실력이 천고에 이름을 떨치기에 이른다. 지독하게 공부한 탓에 17세가 되어 호북성 수주隨州 지방행정직공무원시험에 자신만만하게 응시했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신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5년 동안 무당산과 적벽을 오가며 재야의 스승에게 공부를 한 후 1028년 봄에 춘계국자감고시春季國子監考試 수석합격을 하고 그해 가을 국학고시國學考試를 또 수석 합격하여 중앙무대로 화려하게 진출 한다.

그의 나이 고작 22세의 때 일이다. 이를 눈여겨본 인물이 있으니 소순이다. 소순은 103728세 때 과거에 낙방을 하고 3년 후 31세 때 아들 소동파를 맡기며 구양수에게 가르침을 청한다. 구양수나이 33세 때 일이다. 이때 왕안석은 이미 먼저 와서 공부하고 있었다. 왕안석은 5세 때 시경을 읽은 천재로 17세 때 본격적으로 공부한 인물이다. 훗날 왕안석과 소동파는 나이차가 있음에도 벗으로 지낼 수 있었던 이유가 이때 인연 때문이다.

물론 소동파 아버지는 아들이 왕안석 같은 인간(?)하고 같이 지내는 것을 몹시 꺼려하여 아들을 구양수 문하에서 빼낸다. 그건 훗날 얘기고 암튼 둘은 구양수 문하에서 혹독한 공부 훈련을 받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족으로 사마광이 구양수 문하에 들어오려고 많이 애를 썼는데 왕안석이 밀쳐냈다고 명나라 초기 명교의 단옥재의 글은 전한다.

왕안석과 사마광은 정치적 정적이면서 문학적으로는 평생지우이다. 이런 와중에도 경전이 아닌 형명학形名學을 공부한 소년이 있었으니 우리에게는 포청천包靑天으로 알려진 인물로 명은 증이고 자는 희인希仁이요 아호雅號가 청천靑天으로 얼굴은 검었으며 이마 가운데 초승달 주름을 달고 태어난 인물이다. 그의 모친이 50되던 해 늦둥이로 임신해서 낳았다하여 갓쉰이라 불렀는데 대대로 학자 집안임에도 유독 포증은 어려서부터 법가法家의 책만 읽고 늘 하는 말이 누군가를 심판하려면 나부터 무흠한 연후에 남을 심판해야한다라고 말했다 한다.

구양수보다 8세 연배인 포증은 구양수가 국학고시수석합격으로 등과하기 직전 1027년 진사과 형명학부에 수석으로 등과 후 검사로 임명되고 후일 105657세 때 개봉부 부윤<지금의 서울시장>으로 임명되면서 세 개의 작두를 청하는데 황족과 왕족의 목을 자르는 용작두’, 관리와 귀족의 목을 자르는 작두’, 평민과 천민들의 목을 자르는 개작두가 그것이다. 포청천은 철면무사鐵面無私로 죄에 대해선 그 누구도 용서가 없었다. 후임으로 구양수가 개봉부 부윤으로 왔는데 비인간적이라 하여 작두를 다 없앴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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