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변학도가 공부했다는 남아십년출사학男兒十年出仕學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변학도가 공부했다는 남아십년출사학男兒十年出仕學
  • 송우영
  • 승인 2020.05.01 11:19
  • 호수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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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지배층이 될 수 있는 길은 공부다. 공부라는 인고의 과정은 그야말로 꽃길을 보장하는 가장 정확하고 분명한 길이다. 그 어떤 길도 공부를 비껴갈 순 없다. 양반으로 태어나서 양반으로 죽어갈 수는 있어도 양반 모두가 다 지배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부라는 뼈를 깎는 인고의 과정을 거친 후 과거시험이라는 공개검증을 통과해야 비로소 지배층이 된다.

과거시험은 평민도 응시는 가능하다. 이를 악물고 죽기살기로 덤빈다면 못이룰 것도 아니지만 평민이 과거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은 차라리 수퇘지가 새끼 낳는 게 더 빠르다고 말할 정도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에 가까울 뿐이지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극명지의克命志意라 했다. 의지는 운명을 이긴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유대 랍비에서는 지금도 공부는 달콤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갓난아기가 첫 공부 할 때 되면 글자에 꿀을 발라서 입으로 핥아먹으면서 익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시편 119편에서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고 고백했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말씀이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했다<잠언24:13>

유대 랍비의 공부법은 구약성서 모세5경을 제1권으로 하고 시편을 제2권으로 하고 솔로몬의 잠언을 제3권으로 모두 7세 이전에 마쳐야 하는 공부이다. 이는 유대인 에서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어떻게 공부시키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가정에서 부모의 훈육으로 7세 이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사서 중에서 삼권인 대학 맹자 논어이다. 중용은 대략 11세쯤 이르면 읽는 책이다. 훈육이 끝나면 훈련이 시작되는데 빠르면 8세부터 늦으면 9세 혹은 11세면 집을 떠나 스승을 찾아가서 공부 훈련을 받는다<춘추좌씨전 애공 11년조> 그래서 공부란 비훈위련非訓爲練이라 하여 훈육이 아닌 훈련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삼국지 제갈공명이 어려서 부모를 잃고 8세 때 융중으로 사마휘 수경 선생을 찾아가서 공부하기를 훈육이 아닌 훈련을 받았다. 한다<귀곡자집. 삼국지사마휘수경전> 훈육은 지배층으로 가기 위한 첫 관문이다. 혹독한 공부 과정을 견뎌내는냐. 못 견뎌내느냐가 관건인데 견딤은 곧 쓰임을 낳는다. 이를 공개적으로 검증받는 것이 과거시험이다.

과거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다. 아전 급으로 갈 것이냐 관료급으로 갈 것이냐. 무엇이 됐던 과거 합격은 집안의 경사이면서 가문의 영광이면서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까지 갑중지갑甲中之甲이라는 을들의 세상에서 군계일학처럼 떵떵거리며 산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대가를 요구한다. 짧게는 10. 길게는 20년의 공부다.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공부법은 유대인가의 공부법처럼 달콤한 것도 기쁜 것도 아니다. 공부는 재미없는 것이고 힘든 것이고 어려운 것이고 하기 싫은 것이다. 그럼에도 꼭 해야만 하는 것이 공부다.

이렇게 공부한 인물이 판소리 춘향전에 등장하는 남원부사 사또 변학도다. 몰락한 양반가의 후손으로 평민도 아니고 양반도 아닌 어중간한 그저 목숨만 연명하는 그런 부모를 둔 덕에 가난을 달고 살았던 사내. 그가 선택한 길은 십년내공 十年耐功이라는 남아십년출사학男兒十年出仕學이다. 이른바 10년 공부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아니고 남자가 뜻을 세워 공부를 10년을 하면 강산도 감동하여 변해준다는 말이다.<남아십년학男兒十年學 산천내감변山川乃感變> 변학도의 꿈은 명문대 출신, 전국 12등하는 수재들하고 경쟁하는 그런 으리으리한 게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이웃들보다 좀더 나은 삶 1020등 하는 그들과 경쟁하는 게 그가 정해놓은 자신의 희망목표다. 그래서 그는 과거시험도 향시로 출발하는 아전급이라는 종9품 참봉에서 시작된다. 그런 그가 무슨 연유에선지 공부를 다시해서 요즘으로 말하면 행정고시급인 남원부사가 된 것이다.

이렇게 공부한 인물이 역사에는 몇 있는데 그중 한 분이 우암 송시열이다. 9품 참봉 묘지기에서 시작된 벼슬살이가 훗날 재상의 반열에까지 이르렀으니 역사의 공과를 떠나서 공부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온 몸으로 실천해서 증명해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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