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우리고장 출신 애국계몽운동가 송당 김성희①
■ 특집 / 우리고장 출신 애국계몽운동가 송당 김성희①
  • 박수환 국사편찬위 사료위원
  • 승인 2020.05.28 15:41
  • 호수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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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재정 부채상환 못하자 일본 내정간섭 노골화

판교면 출신 김성희, 국채보상운동 집행조직체 조직

일본은 강제로 체결한 한일협정서를 바탕으로 대한제국에 강제적으로 차관을 들인다. 또한 대한제국은 일본이 추천하는 재정, 외교 고문을 맞아야 했다. 이에 따라 일본 고문들은 대한제국의 재정, 금융, 화폐 제도 등을 재편하여 식민 지배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906, 1300만 원이던 대일 국채가 1년 만에 1840만 원으로 늘어나자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때 서천 출신의 송당 김성희(松堂 金成喜)는 국채보상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위원인 박수환 전 한산면장이 서천군 소식지에 실은 글을 더욱 보강하여 뉴스서천에 보내왔다. 이를 2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판교면 현암리 김성희 묘에서 바라본 판교
▲판교면 현암리 김성희 묘에서 바라본 판교

우리 주변에는 나라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목숨을 건 애국지사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일부는 우리주변에서 잊혀져가고 묻혀버린 애국지사들이 많다. 필자는 우리고장에서 애국운동에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잊혀가는 애국계몽운동가 송당 김성희(松堂 金成喜) 애국지사를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1894년은 우리 역사에 큰 의미를 지닌 한 해이다 신분질서에 맞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자, 썩고 무능한 조정은 이를 진압을 위해 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자 일본군은 '텐진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상륙했다.

동학군의 봉기로 청. 일 양국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긴 했으나, 동학군이 조정과 화약(和約)을 맺고 해산하자 더 이상 조선에 주둔할 명분이 없어졌다. 주둔한 양국 군대를 공동 철수하자고 청나라가 주장하자, 일본은 되레 양국이 함께 조선의 내정(內政)을 개혁(改革)하자고 제안했다. 청이 거절하자 그걸 구실로 일본이 청 군대를 공격 일본의 승리한 전쟁이 청일전쟁이다 승리한 일본은 김홍집을 중심한 온건개화파의 친일정부를 수립하여 국정개혁으로 내정간섭에 이르렀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은 조선의 재정을 일본의 재정에 예속시키고 식민지 건설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4차례에 걸쳐 1,300여 만 원이라는 거액을 조선정부에 차관을 제공하였다. 조선정부는 빈약한 재정으로 이를 상환하지 못하자 일본의 내정간섭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당시 국내 지식인들은 빚진 상태에서 일본의 국권 침탈을 막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19072월 대구 광문사(廣文社)의 사장 김광제(金光濟),부사장 서상돈(徐相燉)이 나라의 빚인 국채를 국민이 대신 상환하자는 취지로 단연회(斷煙會-금연회) 설립 동맹으로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고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김성희의 묘
▲김성희의 묘

때를 같이하여 우리고장 판교면 출신 애국계몽운동가 김성희(金成喜)1907222일 서울에서 유문상(劉文相), 오영근(吳榮根) 24명의 인사가 발기해 국채보상운동의 집행조직체인 국채보상기성회(國債補償期成會)를 조직했다. 한편 국채보상기성회는 의연금을 수합하는 7개소 수전소를 지정하고, 각 지방 도, , , 단위로 찬동 지지하는 취지서를 발표하고 3월말까지 27소의 국채보상소를 설립하였다. 충남에는 공주,예산, 한산, 금산군 4개소로, 우리고장 한산호서국채보상 기성의무사(韓山湖西國債補償期成義務社)317일 설립했다.

▲김성희의 친필
▲김성희의 친필

국채보상기성회의 취지서에는 멀리 동래, 대구의 제공으로 더불어 단합하여 한 몸이 되고자 하여 이 회를 조직하고 이름 하여 국채보상기성회라 한다. 이에 우리 동포에게 널리 고하여 우리 국민의 의무를 다하게 하려는 바이다. 아아, 나라가 망하면 인민이 망하는 것이니 힘쓸지어다. 우리국민이여라고 하여 조직의 취지를 밝혔다. 또 기성회 회칙에서 본회는 일본에 대한 국채 1,300만원을 보상함을 목적으로 하며, “보상 방법은 국민의 의금을 모집함. , 금액은 다소를 불구 한다라고 정하였다. <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황성신문>,<만세보> 등 언론들도 각 지방의 모금 상황 및 취지서. 의연금 납부명단 등을 연일 게재하며 운동을 독려했다. 보상운동은 국내를 비롯하여 국외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운동이 시작된 이후 4월 말까지 보상금을 의연한 사람은 4만여 명에 달했고 19073월 이후 19087월까지 의연금 총액은 20만원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일제 통감부는 이 운동을 배일 운동으로 규정하고 운동을 주도했던 언론을 탄압했다. 또 양기탁(梁起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언론인 베덜(Ernest Thomas Bethell) 등 운동 주도인물들을 의연금 누명을 씌워 구속하였으나, 다섯 차례의 재판 결과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지만, 일본의 방해 공작은 계속됐고, 이로 인해 보상운동은 상당 부분 위축됐다. 이에 따라 국채보상운동 지도부는 모금보다는 모금액의 관리와 감독에 치중하였고, 190911월에는 의연금 처리를 위해 유길준(兪吉濬)을 회장으로 국채보상금처리회를 조직했다.

처리회는 은행이나 학교설립, 식산 진흥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한 끝에 19109월 모금액을 교육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 직후 모금액 전부를 경무총감부에 빼앗기면서 이 같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전국으로 확산된 국채보상운동은 나라의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시민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지난 20171030일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박수환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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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기성회 취지서

대저 빚을 빌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큰 사업, 큰 식산(殖產)이 있어 백성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이 눈앞에 있는데도 자본으로 이용할 것이 없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꾸어서 그 일을 이루는 것이니 이 법은 원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여 한 번 빌리고 두 번 빌려 그칠 줄을 모른다면 나라 형세가 나중에는 어느 지경에 이를 것이리오?

전번 영국과 프랑스가 애급(埃及)에 빚을 대어줄 때에 그 처음 마음이야 어찌 반드시 애급에 화를 미치게 하려 한 것 이리 오마는 빚을 쓴 사람의 관리함이 좋지 못하여 나중에는 속국瀋土이 되고 말았다. 무릇 국민으로서 남는 자산을 내어 위로 국가 수용(需用)에 응하고 아래로 인민의 부강을 이룰 수 있다면 또한 무엇이 좋아서 내게 원래 있는 것을 버리고 남을 향하여 애걸해서 빌어다 쓸 것이리오?

전번에 우리 정부가 진보하는 일에 급하여 빚을 쓴 것이 13백만원에 이르는데 그 마음이야 어찌 이것을 자본으로 삼아 국가의 큰 사업을 일으키라 하지 않았으리오? 그러나 지금 우리 2천만 민중으로서 가령 한 사람이 1원씩을 내면 2천만원이 되고 50원씩을 내면 1천만원이 될 것이니 이것이면 남의 빚을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단위 환을 편의상 원으로 표기했음)

또 연송(捐送)하는 방법은 그 지원의 다소에 따라 일시에 보내 오는 것이 실로 편리 통쾌한 일이니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밖에는 혹 달로 정하고 혹 기한을 나누어 혹 5, 10원씩 일정하지 않는 금액이라도 필경은 우리의 힘으로 내어야 되는 것이니 어찌 묘하고 편리한 일이 아니겠는가?

본인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루지 못한 것이 벌써 오래였는데 지금 다행히도 영남 동래(東萊), 대구 등지 여러 군자(君子)가 담배를 끊고 빚을 갚자는 의논을 제창하여 발기한 지 며칠이 안 되었는데, 의연하는 이가 날마다 나오니 우리 인민의 나라 사랑하기를 집같이 하며 국토를 보전하고 민족을 보전하려는 성대한 생각을 알만 하도다. 만일 담배를 끊는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도 주의하여야 할 것인데, 하물며 수만리나 먼 나라 애급, 여송(呂宋) 등의 값 비싼 담배나 청국 담배 같이 맛이 떨어지는 것이겠는가?

또 의연이라는 것은 사세와 역량이 다르고 빈과 부가 또한 판이한 것이니 말 짐馬駄의 천근과 개미 등의 조알 하나가 또한 이치의 떳떳한 것이다. 전번 보노서(普魯西)와 프랑스의 전쟁에 그 나라 사람들이 수백만 수십만을 출연(出捐)한 자가 있고 또 한 개의 유기 숟갈을 바친 자도 있었는데 숟갈을 수백만금에 비한다면 그 대소 경중이 과연 어떠한 것인가? 그러나 공공부국(共公扶國)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한가지이다. 여기서 본인 등이 멀리 동래·대구의 제공으로 더불어 단합하여 한 몸이 되고자 하여 이 회를 조직하고 이름하여 국채보상기성회라 한다. 이에 우리 동포에게 널리 고하여 우리 국민의 의무를 다하게 하려는 바이다.

아아, 나라가 망하면 인민이 망하는 것이니 힘쓸지어라. 우리 동포여, 또 얼마를 지나 국채가 깨끗이 완결된 후에 세계 제일의 향그러운 담배 수천만 개비를 사다가 온 나라의 남자·여자·젊은이·어른 모두 바람 부는 앞에서 함께 피우면서 밝은 흥을 돋우어 봄이 어떠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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