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남에게 용서받을 짓을 하지 말라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남에게 용서받을 짓을 하지 말라
  • 송우영
  • 승인 2020.06.10 19:36
  • 호수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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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돈후는 첩을 두었는데 노비 중금이 그다. 중금에게는 안돈후의 첩이 되기 이전부터 이름모를 사내에게서 딸을 하나 두었는데 감정이다. 결과적으로 안돈후는 처녀첩들이가 아닌 딸이 딸린 노비를 첩으로 들인 셈이다.

문제는 감정이라는 여비가 노비의 여식임에도 양반댁 자녀들 글 읽는 데 가서 귀동냥으로 글을 깨우쳤다는 데 있다. 웬만한 선비들도 나가떨어진다는 경서를 읽고 쓰고를 자유롭게 할 경술經術의 경지에 이르니 노비 딸로 태어난 것이 팔자라며 위로할 밖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안돈후는 감정을 글을 아는 송자근쇠宋者斤金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명색이 사내장부가 아녀자보다 글을 몰라서야 말이 되랴 싶어 죽기살기로 공부를 했다 한다. 그렇게 독학으로 공부해서 관상감觀象監 판관判官의 지위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여기서 낳은 아들이 송사련이다. 훗날 조선개국 이래 국운과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버린 역사에 길이 남을 송사의 단초를 제공한 가공할 인물이 태어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감정과 송사련 모자는 훗날 불어닥칠 멸문지화를 상상도 못했으리라. 이것이 저 유명한 순흥 안씨와 여산 송씨 가문간 불가역적불구대천지원수척결사건이되는 노비지위확인소송이다.

역사적 공과는 거두절미하고서라도 여기엔 일정량 이언이 따른다. 경기5악이라는 송악 감악 심악 북악 관악을 바라보는 거북바위 위에서 안당 정승댁 서고모庶姑母의 아들 노총각 송사련은 낮잠을 자다 청룡과 황룡이 품으로 달려드는 꿈을 꾼다. 그날 밤 안당 정승댁에 기고가 있어 일을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와 있는데 비녀 연일 정씨가 제사 음식을 가지고 홀로 있는 그 방으로 들어오자 속내를 참지 못해 일야를 하는데 오비이락일까 아니면 하늘의 뜻일까. 아이를 가진 것이다. 여기서 태어난 자식이 후대 대학자 송익필과 그의 형제들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인들 다르랴마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간단하다. 바를 정곧 일지一止이다. 바르게 살라는 말도 되지만 다른 해석으로는 하나에서 멈추라는 말이다.

이라는 단 한 글자에 불과하지만 이 글자는 1175년 아호사에서 상당히 논쟁이 됐던 모양이다. 주자는 벗 여조겸의 주선으로 강서江西땅 신주信州 지역에 있는 아호사鵝湖寺에서 육상산을 만난 적 있는데 그때 육상산의 형 육구령이 동행을 한다. “덕성德性이란 사람이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본성으로 그 덕성을 밝히는 것이 공부다라는 주자의 말에 형 육구령이 토를 다는데 곧 바를 정이다. 그러자 주자가 바름은 하나에서 그침인데 그것은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래 공부라는 것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하여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탓하지 않으며<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내가 남들의 실력 있음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환부지인야患不知人也>는 게 논어 학이편에서 말하는 공부의 자세이다. 그렇다면 공부의 마침은 뭘까. 자공이 물었다.<자공문왈子貢問曰> 한 마디의 말로 평생토록 실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자왈子曰> 그것은 서일 것이다.<기서호其恕乎> 누군가는 용서를 하고 누군가는 용서를 받고라는 말인데 서라는 양면성 있는 단답에 제자들이 멍하고 있으니까 공자는 이를 풀어 설명한다. ‘라는 것은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말이다.<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논어위령공> 이 문장은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은으로 써서 벽에 붙여놨다 하여 은율銀律이라 칭하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공부한 자만이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할 수 있고 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청나라 거부 호설암은 공부를 이렇게 풀었다. 사람이 돈을 벌려면 재주가 있어야하고 그렇게 번 돈을 지키려면 공부해서 지식을 갖춰야 한다.

그렇다면 일지一止의 뜻을 가진 정의 속뜻은 뭘까. 불서수숙不恕受孰이다. ‘남에게 용서받을 짓을 하지 말라는 말로 아버지 송사련이 아들 송익필에게 해준 말이다. 바꿔 말하면 공부 많이 해서 아버지 같은 인생은 살지 말라는 아버지의 뼈아픈 후회가 담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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