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빗방울·오동꽃 생각
■ 모시장터 /빗방울·오동꽃 생각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20.06.18 10:08
  • 호수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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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했던 시절이 있었다. 반세기나 지났건만 짝사랑했던 여인의 뒷모습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산모롱 돌아갈 때까지 한번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가슴이 미어졌던 그 때의 심정을 어떤 낱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그 빗방울 밖엔 그 어떤 단어도 찾아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모습은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다.

 

편지 쓰는 것은
모습 지우며 가는 것

일기 쓰는 것은
빈칸 지우며 가는 것

먼 하늘 쳐다보는 것은
빗방울 두고 가는 것

- 신웅순의 아내 20

 

 

 

 

 

 

 

 

 

이제는 아쉬움도 아니요 그리움도 아니다. 그냥 시가 되었다. 누구나 다 사람들은 기뻐했던 슬퍼했던 자기만의 소중한 추억의 낱말 하나씩은 갖고 있다.

아침에 연구실로 출근하면 금세 점심이 오고 점심이 되면 또 금세 저녁이 찾아온다. 나 혼자 있는 연구실인데도 왜 이리 바쁜 것인가.

문을 열면 저쪽으로 누가 지나간다. 계절이다. 새소리도 지나가고, 바람소리도 지나가고, 빗소리도 지나간다. 계절은 소리가 있어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계절은 여인의 뒷모습처럼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이 가슴 아픈듯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세월은 내게 주고 간 그녀의 빗방울처럼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놓고 간다. 세월은 그렇게 무정한 것만은 아니다.

내 고향 빨래터엔 오동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모내기 전후해 개천은 언제나 물이 넘쳐 흘렀다. 거기에서 어머니는 빨래를 했다. 방망이를 두드릴 때마다 오동꽃이 떨어졌다. 빨래소리를 싣고 개울 따라 들녘으로 사라지던 보랏빛 오동꽃. 굽이진 곳에서 빙빙 몇 번을 돌다 돛배 되어 사라지던 보랏빛 오동꽃. 개울가의 젖은 토끼풀은 돛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갈 데 없는 마른 바람은 갈대밭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신흠은 야언에서 이런 시를 썼다.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항상 자기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자기 향기를 팔지 않는다

이황도 평생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시이다.
천년이 지나도 내 곡조를 간직하고 춥게 살아도 일생 내 향기를 팔지 않는 시 한편이라도 나는 남을 수 있을까.
오동꽃은 내게는 추억 속의 또 하나의 소중한 어머니의 낱말이다. 오동꽃을 보면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엄마, 배고파!”

빨래하던 어머니를 저 고개에서 외치면 어머니는 젖배골았다며 단숨에 달려와 밥을 차려주시곤 했다. 그 때 돛배 되어 둥둥 떠가던 보랏빛 오동꽃이다.

멀리서 오동꽃을 바라보면 어머니 품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포근해진다. 멀리멀리 돛배 되어 떠났던 그 오동꽃. 반세기가 되어 지금 그 오동꽃은 어디쯤에서 멎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일까. 달빛 은은한 어머니 가슴에 있다. 달빛 촉촉한 내 가슴에도 있다. , 참으로 먼 세월을 돌아 빗방울과 함께 이제는 내 아내의 가슴에서 영영 멎었다.

세월 가는 것은 아쉬운 게 아니라 이렇게도 눈물겹게 아름다운 것이다.

<석야 신웅순의 매월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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