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남아입지필구학男兒立志必九學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남아입지필구학男兒立志必九學
  • 송우영
  • 승인 2020.07.16 11:17
  • 호수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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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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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려면 재주가 있어야 하고 번 돈을 지키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젊은 날 일본으로 공부하러 갈 때 우연히 배 안에서 만난 7년 연배의 동네 형이 해준 말이라 전하는데 그 형이 다름 아닌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 현 교육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박사라 전한다.(당시 호암의 나이 19)

본래 이 말은 청나라 거부 호설암의 말로 왈리지독曰利至讀이 원전인데 득리수학得利修學등등의 여러 개의 판본으로 전해진다. 왈리지독이란 한자어 자체로의 해석은 문맥이 틀린 글이다. 그럼에도 듣는 이가 알아듣는 이유는 맹자에서 그 출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혜왕이(본래는 위나라 혜왕인데 위나라가 전쟁에 패해서 점점 줄어들어 급기야는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지경까지 이르러 결국 수도를 대량大梁이라는 곳으로 옮기니 위나라는 수도 외에는 다른 군소지방도시가 없다시피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부르기를 위나라 혜왕이 아니라 위나라수도 대량大梁의 양혜왕이라는 조롱섞인 투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것이 맹자 초두에 나오는 양혜왕이다.) 나라가 점점 소멸위기에 처하자 70후반의 노인 맹자를 초빙해서 어떻게 하면 나라를 부자이면서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하고 묻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 하필왈리何必曰利이다. 하필왈리라는 내용을 백성들이 알고 있기에 왈리지독曰利至讀이란 문맥이 안맞는 단어일지라도 알아듣는다는 말이다.

이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도 하필왈리라는 말은 가난한 집안의 홀어머니가 자녀를 공부시킬 때 벼랑끝 전술로 곧잘 이용되곤 하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집안이 밥 굶지 않고 잘 살 수있느냐가 그것이다. 그 중심에 석봉 한호가 있는데 친구이자 외종 8촌지간인 조선 중기 시인 최립崔岦의 말을 빌면 반성반패半成半敗의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성균관전적으로 있던 나급羅級의 탄식소리에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붓으로는 천하제일필이 분명하거늘 이왕(왕희지 왕헌지父子)이 살아돌아온들 그를 따르겠으랴마는 문장이 애석하구나. 어쨌거나 붓글씨로는 추사 김정희와 더불어 쌍벽을 이룰 만치 천하의 명성을 얻었으나 공부로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아까운 인재라는게 그의 인물평이다.

그렇다면 석봉한호는 공부가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공부를 등한시했던 것일까. 허균의 표현에 따르면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글씨공부하느라 과거시험인 대과를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전한다. 결국 그는 요즘으로 치면 사법고시 1차 합격이라는 진사시까지만 합격하고 대과는 번번히 낙방을 한다. (참고로 조선 양반 사회에서 진사시까지만 합격해도 양반의 지위를 유지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만 3대에 이르도록 진사시를 합격 못하면 4대에 이르러 양반의 지위를 유지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워낙 글씨가 출중한지라 이런 인재를 들어 쓰지 않는다면 국가의 손해라 여겨 대사헌 초당 허엽이 스승 이황에게 아뢰니 스승 이황은 일찍 출사해있던 제자 서애 유성룡에게 부탁을 해 선조에게 추천했고 선조의 특별배려로 와서별제瓦署別提로 출사하게 하여 사신 왕래서를 기록 정리하는 사자관寫字官이 된다.

쉽게 말해서 한석봉이 천하에 알려지게 된 단초는 초당 허엽이라는 인물에서 비롯됐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초당 허엽은 어떤 인물인가. 강릉 초당 두부의 시초가 되는 인물인데 허봉, 허성, 허난설헌. 허균의 아버지이며 의성 허준에게는 8촌 형이 된다. 초당허엽은 齊口臭나이 때 나식羅湜에게 소학. 근사록 등을 배웠으며 齊敦行나이 때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에게 공부하러갔으나 인연이 안되어 그가 쓴 책 인종에게 권강勸講을 했다는 심경부주心經附註를 구해 사숙했으며 志于學에 이르러 진천鎭川땅 수학과 주역의 1인자 이여李畬를 찾아가 수학과 주역을 배웠고 齊弱冠때 송도에 은거한 화담 서경덕에게 사사했으며 화담 서경덕 사후 경북 안동 땅으로 퇴계 이황을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도 2년 가량 공부를 했다. 그야말로 공부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한 인물이다. 잊지마라 남아입지필구학男兒立志必九學이라 했다. 남자의 일생에 반드시 9명의 스승에게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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