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만이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만이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들
  • 뉴스서천
  • 승인 2020.08.07 09:22
  • 호수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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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소개할 때 친가 외가 5대조까지 들먹이던 시대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등과한 선비들의 일상생활이 그랬다. 각 문중엔 종학宗學이 있었고 종학을 통해서 배움과 벼슬인 학관學官에 이른다. 이름 앞에는 늘 뉘 집 자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에 자녀들은 가문을 빛내는 큰 뜻보다도 당장 제 부모 이름 앞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공부해서 등과해야 했다.

서애 류성룡의 적전嫡傳인 우복 정경세는 정여관鄭汝寬의 아들로 대학자 일두 정여창을 큰아버지로 둔 인물로 영남 남인을 인도하는 영수의 위치에 있는 인물임에도 뼛속까지 서인이었던 영천 군수榮川郡守 송이창宋爾昌의 아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을 사위로 맞은 인물이다.

정경세의 장남은 회재 이언적의 손녀 려강이씨驪江李氏에게 장가들어 무첨無添 정도응鄭道應을 낳았으며 장녀는 영의정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손자 노석명盧碩命에게 시집갔으며 차녀가 동춘당 송준길의 처다. 동춘당의 부 송이창은 율곡의 문도이며 모친이 사계 김장생의 사촌동생<從妹>이다.

우복 정경세는 동춘당을 사위로 얻고는 천하제일 귀재를 사위로 얻었다하여 사흘낮밤을 잔치를 했다 한다. 동춘당 송준길은 우복의 둘째 딸 정씨부인에게서 낳은 딸을 영돈녕부사 민유증(명성황후와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6대조)에게 시집 보냈고 그 딸은 아들 둘과 딸 셋을 두었는데 아들은 민진후와 민진원이고 세 딸 중 둘째 딸이 숙종 계비 인현왕후 민씨이다. 인현왕후 외외종조부가 우복 정경세요. 외종조부가 동춘당 송준길이다. 우복 정경세의 종손(6대손)이 입재入齋 정종로鄭宗魯이다. 학봉 김성일의 학맥을 이은 대산 이상정李象靖의 제자이다. 정종로의 제자가 흥선대원군이 무릎꿇고 모셔왔다는 풍산류씨 강고 류심춘이다. 강고는 서애 류성룡의 셋째아들 수암 류진柳袗(우복 정경세 제자)의 종손으로 좌의정을 지낸 낙파洛波 류후조柳厚祚의 아버지이다.

서애 류성룡으로 우복 정경세로 동춘당 송준길로 강고 류심춘으로 이어지는 학맥 속에는 학인능해學人能解라는 공부 비결이 숨어있다. ‘공부한 사람에게는 능히 열린다는 말인데 공부하면 세상이 쉽다는 말쯤으로 받아들여도 크게 어긋남은 없는 말이다.

우복은 서애의 문인으로 서애가 퇴계 문하에서 공부하고 16세 때 진사시에 합격한 것에 비하면 다소 늦은 나이인 158219세 나이에 생원진사시에 합격했고 1586년 선조1923세에 대과인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생원진사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로 나눠 요즘 표현으로 하면 12차로 두 번에 걸쳐보는 시험인데(성종때는 진사시가 낮고 생원시가 높아서 이를 바로잡아달라며 일두 정여창스승 율정栗亭 이관의李寬義가 경연 때 읍소했으나 관철되지않다가 훗날 생원시가 낮은 등급 1. 진사시가 높은 등급 2차로 바뀜) 생원시에서는 향시鄕試라 하여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대학. 맹자. 논어. 중용. 춘추 등 문. . 철을 보고 책문. 제술. 등 글쓰기 및 문장시험은 진사시에서 본다.

흔히 철모르는 10대 나이라는 그 정도 나이에 진사시까지 통과할 정도면 어려서 얼마나 많은 순간과 찰나에서 오는 객화客火(울화)들을 신독愼獨으로 객화客化해 냈다는 말이 된다. 그만큼 혹독하게 공부했다는 말이다.

기소부도감학호其所不睹堪學乎라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즉 남들 잘 때 남들 놀 때 더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소원은 많은 게 아니다 그저 내 속으로 난 자식이 공부 열심히 해주는 거 그것만이 유일이다. 밤을 낮 삼아 공부하는 자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고 힘든 일을 해도 그게 힘든지를 모른다. 자녀가 열심히 공부해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으면 그럴까마는 그것이 부모 마음이다. 동양고전 역사서 진서晉書에 공부는 흔들림없이 해야 하고(학자부동學者不動) 손님이 와도 일어서지 않으며(객래불기客來不起) 뜻은 크고 굳세어야 하나니(가이홍의可以弘毅) 공부하지 않으면 흔들리는 바람에도 가슴을 졸여야 한다(불연풍요박不然風搖縛)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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