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마을
살구꽃 마을
  • 뉴스서천
  • 승인 2002.04.04 00:00
  • 호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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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신발을 수습하다 언뜻 TV를 보니 동백꽃 어우러진 서천 마량리에서 주꾸미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눈길을 잡았다. 순간 청량제 한 모금을 들이켠 듯 싱그러운 가슴이 열렸다. 엊그제 토방만한 언덕빼기에서 개나리가 노란 혓바닥을 내미는 모습을 본 듯도 하지만 무심코 ‘봄이 구나’ 지나치고 말았건만 방송에서 묻어 온 고향소식에 마음이 뿌듯해지고 옛생각이 신기루같이 펼쳐지기 시작했지. 오라리 한산중학교까지 시오리길을 통학하다 보면 건지산 끝자락 넓은 곳엔 표백하여 햇볕에 말리는 세모시가 봄바람에 하얗게 너풀너풀 춤을 추웠고 돼지고개 산줄기, 진달래가 지천으로 흐드러졌었지. 골짜기마다 휘저으며 떨떠름한 진달래 꽃잎 따서 한 움큼씩 씹는 것이 그렇게도 재미있었지. 상급학년 형들에게 6.25때 비명에 죽은 사람들을 산골짜기에 매장했다는 말을 듣고 부터는 그래서 진달래 꽃이 유난히도 붉게, 핏빛으로 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았지. 시인 T.S.엘리어트는 1922년 발표한 ‘황무지(The Waste Land)’ 제1부 ‘죽은 자의 매장’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이락을 키워내고(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b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라고 하여, 메마른 땅속의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워서 라이락을 키워내 듯, 돼지고개의 원혼들이 진달래로 피울 것을 예고나 한 것은 아닌지. 필자가 자란 다고마을(화양면 옥포3리)의 봄은 유난히도 정겨웁고 잊을 수가 없지. 저만치 금강의 잔잔한 물살이 찰랑찰랑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시릴 때 쯤이면 뒷동산 양지바른 묘지에 할미꽃이 피어나고 뒤미쳐 오랑캐꽃이 보라색으로, 하얀색으로 단장을 하지. 외지에서 갓 시집 온 새색시 물지게 사뿐히 내려놓는 우물가. 안씨네 텃밭 돌담장에 구기자꽃, 앵두꽃 새색시를 시샘하지. 윗 뜰 권씨네 복숭아나무 망울망울 연녹색 치마로 살포시 감싼 연분홍 볼을 내밀 때면 옹기종기 40여가구 고즈넉한 마을이 온통 살구꽃으로 뒤덮이지. 집집마다 한두그루씩 살구나무를 키우는 까닭에 마을 앞 가로지르는 신작로에서 보면 마치 꽃동산을 이루고 있었지. 어쩌다 창경원 벚꽃 나들이를 할 때면 꼭 다고마을 살구꽃을 떠 올리곤 했었지. 감꽃으로 목걸이·팔찌를 할 때 쯤이면 올망졸망 살구열매 매달리고 성급하게 익지도 않은 시퍼런 것을 따서 씹으면 어찌나 신지 얼굴이 온통 싱긋했지. 사람이 기분이 좋다고나 사랑스런 마음이 생기게 되면 입안에서 저절로 침이 고인다더니 출근길 전동차에서 곱씹는 이 생각 저 생각에 침이 가득 고였네. 유시화는 “내안에 있는 이여/ 내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고 읊었지. 이토록 그리움의 멍자욱이 선연하건만 그동안 무덤덤이 지냈던가. 이는 아마도 그리움을 더 깊게 고이 간직하기 위해서 였겠지. 무표정하게 눈길 마주하는 앞좌석 앉은 이도, 내내 졸기만하는 옆자리 앉은 이도, 모두가 정겨운 이웃같고 한번은 만나야 할 이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지. 차창밖도 더 이상 캄캄한 공간이 아닌 살구꽃으로 가득한 마을로 변해 버렸지. 어느덧 광화문에 왔다는 안내방송이 새삼 용기와 희망의 소리로 울려왔지. 이 봄, 불신·조바심·욕심 다 버리고 마음 깊은 곳에 고향을 한번쯤 그려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누군가 그리운 것이 아니겠는가. 문득 출근길 주꾸미방송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워 미소를 짓게 하였다. “주꾸미가 날 웃겨”
<김지용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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