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한 해 농사를 앗아간 비의 이름은 기후위기
■ 모시장터 / 한 해 농사를 앗아간 비의 이름은 기후위기
  • 최용혁 칼럼위원
  • 승인 2020.10.15 08:41
  • 호수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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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칼럼위원
최용혁 칼럼위원

이른 봄의 고온과 연이은 냉해 피해로 과일 농가는 일찍 한 해를 접었고, 50여일의 최장 장마와 3개의 초강력 태풍은 처음 겪는 계절을 가져다주었다. 미래를 예견하는 수많은 징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기후위기라는 이름으로 인식해 가고 있다.

철없이 일찍 핀 배꽃은 4월 된서리를 맞고 일찌감치 2020년을 지웠다. 50일 넘는 역대 최장이라는 장마 이후 채소 값은 사상 최고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누구나 잘 알다시피 고가의 채소를 파는 농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해 내내 몸살을 겪어 온 가을 들판에서는 벼 수확량이 평년 대비 20% 이상 감소한다는 곡소리가 들린다. 근래 최악의 흉년이다.

한 해 농사 망하면 적어도 삼년은 간다지만, ‘내년엔 나아지겠지하는 소박한 희망으로 툴툴 털고 일어설 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늘 있었던 한 해 한 해의 희비와 관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수많은 과학자들의 예측이다. 한 배를 탄 우리는 어떤 급류에 함께 휩쓸려 이미 먼 길을 오고 말았다. 그리고 낭떠러지가 아주 멀리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갑자기 가지게 되었다.

2019년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에서 농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9% 정도이다. 이는 관리된 토지이용 등 인간의 행위와 관련된 측면만 반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치며 농업과 식품이 기업 중심 체제로 급격히 변화하였고 이러한 변화는 확실히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세계화된 먹거리 체제와 기업이 지배하는 농식품 체제에서는 단순히 푸드 마일의 증가 뿐 아니라 생산방식과 소비 방식의 변화를 야기한다. , 농민이 어떤 작물을 어떻게 재배할지 결정하는 문제와 소비자가 선택할 먹거리가 매장에 진열되는 문제에서 기업의 이윤과 관련한 선택이 개인의 선택을 제안하고 있다. 농업과 먹거리에서 인간의 자연 지배를 당연시하고 경제 성장과 기업의 이윤을 우선하는 일들을 멈춤 없이 계속해나갈 것인지, 그리고 계속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마지막 질문을 해야만 한다.

이 위기에 모두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말은 진실된 것처럼 보인다. 어떤 민중들은 채식을 고민하면서, 또 어떤 농민들은 화학비료와 트렉터에 들어가는 화석연료를 걱정하고 죄스러워하면서 당면한 진실 앞에 실존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 편한 세상을 만들어 놓은 세계 체제의 기득권들은 이 위기를 또 다른 도약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기업과 자본의 이익만을 위한 농산물 수입이 분별없이 계속되어도 되는지, 이러한 식탁의 질서를 만들어 놓은 것은 과연 누구인지, 우리의 질문은 점점 더 본질에 다가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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