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의 여섯가지 유형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의 여섯가지 유형
  • 송우영
  • 승인 2021.02.07 07:22
  • 호수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자는 15세에 공부에 뜻을 두었으며 17세 되던 해에는 어머니 장례를 치렀다. 19세에 혼례 후 20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노나라 소공昭公이 감축으로 보낸 것이 잉어다. 이를 인연으로 아들의 이름을 잉어를 따서 리라 지었고 생계를 위해 두 개의 직업을 갖는데 하급 관직인 승전乘田이라는 가축 관리와 위리委吏라는 창고관리직이 그것이다.

공자는 이미 20세쯤에는 육예六藝에 정통해 명성이 나자 이때부터 태묘출입이 자유롭게 된다.<논어향당13. 팔일15> 30세 때 집 앞마당에 심은 은행나무가 몇년쯤 지나자 제법 자라 행단강학杏壇講學을 시작하니 이때가 노나라 소공26년 때인 기원전 517년 공자 나이 36세 때의 일이다.

소문을 들은 제나라 22대 군주 경공은<58년의 재임 기간 중 31년째 되는 해> 우유부단한데다가 불민不敏까지 했지만 공자를 초빙하여 묻기를 간청한다. 이때 물은 조항 중 하나가 흠통欠通이라는 말인데 글자만 놓고 풀어 본다면 하품으로 통한다는 뜻이다. 당시의 통할 통자는 통한다는 의미보다는 계속 흘러간다, 즉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의미로 공부하라면 하품만 해댄다는 말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쉽게 말해서 경공의 후손들 중에 공부하라면 공부는 뒷전이고 하품만 해대는 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후학이 이때를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이 논어 공손추장의 영무자甯武子의 우이다.

나라 태자중윤太子中允을 지낸 석수도石水道의 말로 전하기를 공부에는 그 결과에 따라서 다음 여섯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군주를 섬길 만큼 정도의 공부를 했는가<어학御學>, 둘째 나라를 지킬 만큼 정도의 공부를 했는가<수학守國>, 셋째 백성을 잘 살도록 이끌 만큼 정도의 공부를 했는가<선학善學>, 넷째 벼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정도의 공부를 했는가<位學>, 넷째 공부가 짧아 판단력이 흐려서 매사에 실수가 있는 것은 아닌가<둔학鈍學>, 다섯째 체계적인 공부를 못한 탓에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은 아닌가<혼학湣學>, 여섯째 공부는 짧은데 직위가 높아 모두를 망치는 공부는 아닌가<망학亡學>

 

불문삼논학不問三論學이라는게 있다. 공부에 있어 세 가지를 묻고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힘듦에 굴복하지 않으며, 게으름에 고개 숙이지 않으며, 배고픔에 꺾이지 않음이다. 예로부터 공부는 가난한 집안 자녀의 유용한 선택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자녀를 지키고자 하는 아버지들의 숙명이라면 공부를 열심으로 다해준다는 것은 그런 집안의 자녀 된 자로서의 운명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공부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 아니라 점점 익숙해져야하는 일이다. 공부하는 고통보다 더 센 고통은 공부하기 싫은 마음을 이기는 고통이라지만 공부 앞에 굴복으로 답하지 말라. ‘오늘도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해보라. 하루가 달라질 것이다.

삶의 선택에는 그것이 무엇이든 일정량 후회가 남는다. 그러나 공부의 선택에는 결코 후회가 남는 일이 없다. 이점이 공부의 매력이기도 하다. ‘학야學也 우보천리牛步千里라 했다. 이 말은 명대 학자 황돈黃墩의 말인데 심경부주를 가르치면서 제자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공부는 천류불식川流不息 천류부지川流不止라 했다. 쉬지도 않고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