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성실한 공부로 세상을 채우는 삶
■ 송우영의 고전산책 /성실한 공부로 세상을 채우는 삶
  • 뉴스서천
  • 승인 2021.02.1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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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삼세가 넘었음에도<년과십삼年過十三> 아직도 공부하지 않는다면<이이미학而以未學> 머지않아 가문은 쇠해질 것이고<불원문쇠不遠門衰> 작게는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며<미불루진微不漏盡> 스스로에게는 사람을 피해 다니게 될 것이니<자피행휴自避行休> 종내에는 몽몌집구가 될 것이다.<몽몌집구蒙袂輯屨>

몽몌는 옷 소매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고 집구는 발을 제대로 내딛고 서지 못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굶어서 기운이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공부가 게으르면 집안 쇠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밥 굶기 십상이다. 쯤 되는 말이다. 이 말은 예기禮記 단궁檀弓편의 전거典據에 대한 장하주章下註인 셈인데 북송北宋의 명신名臣 범진范鎭이 손자 범조우范祖禹<1041-1098>를 종학하면서 몽몌집구蒙袂輯屨를 인용하여 유명해졌다는 말이다..

어려서 둔했던 범조우는 공부를 다른 집 자녀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가 공부로 대성할 수 있음은 공부는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룬다는 범진의 종학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범조우는 조부의 부단한 애씀으로 13세라는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서 23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진사 갑과에 장원으로 등과해 십년종학十年終學을 이룬 의지의 사내다.

그가 했다는 10년의 공부법이라는게 별거 아니었다. 첫째<기일其一>침식을 잊었으며<지망침식至忘寢食>, 둘째<기이其二> 말과 판단이 적확했으며<辭辨的確>, 셋째<기삼其三> 공부는 독실했다<독실노학篤實勞學>가 전부다. 후학은 이를 순부삼매淳夫三魅라 했다. 순부淳夫는 범조우의 자인데 여기서 는 도깨비에게 홀렸다는 말로 공부를 하되 공부에 집중하기가 몰입에 이르러 마치 도깨비에게 홀린 것처럼 빠져든다는 말이다.

십년종학의 십년을 그렇게 공부를 한 거다. 훗날 이러한 공부법은 조선사대부가 종학<문중에서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일>에서 더러 지독하게 시작하는 공부법의 한 갈래로 자리잡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이가 청음 김상헌인데 그의 손자 대에 이르러 꽃을 피웠고 이후로 이러한 공부법을 통해 대대로 명문가로 자리매김한다. 그 중심에 지돈녕부사知敦寧府使 중화仲和 김창협金昌協이 있다. 중화는 좌의정을 지낸 청음 김상헌金尙憲이 증조부이며 조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김광찬金光燦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문곡 김수항金壽恒이며 어머니는 안정나씨安定羅氏가문의 해주목사를 지낸 나성두羅星斗의 딸이다. 이에 둘째 아들이 김장협이다.

여기서 중화는 그의 아호가 아닌 자인데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13세부터 17세 사이에 성인식을 통해 자를 받는다. 호는 글을 가르친 스승이 지어줌이 일반적이며 그의 호는 농암農巖이다. 그 시대에는 대부분 이런 식의 10년 공부가 유행처럼 번졌다. 오늘날에 와서 십년종학을 열 길 우물론으로 재해석한 인물이 후광인데 전라도 신안 하의도 덕봉서당에서 공부한 그는 열 길 우물론 공부법으로 뜻을 이룬 사내다. 훗날 그는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 된다. 범조우의 10년 종학은 후광을 만나 열길 우물론으로 진화됐고 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즘엔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 10년의 법칙으로 알려진 공부법이다. ‘은우호탄隱憂浩歎이라는 말이 있다. 숨겨진 근심으로 크게 탄식한다는 말인데 공부 안해서 오는 후회를 말한다. 청음 김상헌의 말이다. 농부는 땅을 다스리는 자이며<농자지야農者之也> 그 근본은 힘에 있고<기요재력其要在力>, 선비는 글을 다스리는 자이며<유자치서儒者治書> 그 근본은 공부에 있으며<기요재학其要在學>, 군자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이며<군자치인君子治人> 그 근본은 백성 사랑에 있다.<기요애민其要愛民> 땅을 다스리든 글을 다스리든 사람을 다스리든 치는 반드시 학에서 시작된다. 농사를 짓든 글을 읽든 뭘하든 기본은 공부라는 말이다. 공부를 하는 것은 본인 개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공부를 하겠다고 덤볐으면 그에 따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공부라는 것은 가장 낮은 자세로 앉아서 가장 높은 꿈을 이루는 행위이다. 세상에 거저 되는 것은 없다. 공부는 기회를 준다. 힘든 공부를 견딘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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