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까지도 함께한 영혼의 동반자
죽음까지도 함께한 영혼의 동반자
  • 뉴스서천
  • 승인 2004.01.30 00:00
  • 호수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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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모딜리아니와 그의 연인 잔 에뷔테른-
우리는 학창시절 미술교과서에서 여인의 모습을 기다랗게 그리는 화가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기억하고 있다.
그림 속의 기다란 모습의 인물은 모딜리아니의 연인 잔 에뷔테른이다.
그녀의 표정과 자세에서 어딘가 애상미가 진하게 녹아있는 느낌이 든다.
옆으로 살짝 기울인 그녀의 얼굴은 삶에 던지는 의문부호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비밀스런 특별한 사연이 담겨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모딜리아니는 서양화가 중에서 가장 잘생긴 화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였고, 결핵을 깊이 앓고 있었다.
넉넉하고 품위 있는 가정에서 자란 잔 에뷔테른도 미술을 전공하고 있었다. 외모도 남달랐지만 내적으로 신앙심이 깊은 고결한 여자였다.
잔은 당시 카페를 드나들면서 모딜리아니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공인된 부부가 될 수 없었다. 어느 부모인들 애지중지하며 기른 딸을 술에 취해 이 술집 저 술집 드나들며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열 네 살이나 나이가 많은 가난한 무명 화가에게 딸을 선뜻 내주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하나가 되어 동거에 들어간다. 그들은 참으로 행복했다.
모딜리아니도 이젠 생활을 절제하며 마약도 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들의 사랑은 종교적인 경지까지 승화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모딜리아니는 자기의 죽음을 감지한 탓일까. 그녀와의 짧은 삶 속에서 26점이 넘는 잔의 초상화를 쉴 새 없이 그려 댔다.
그녀와의 결코 헤어지지 않겠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초상화는 모딜리아니의 잔에 대한 애절한 사랑의 속삭임이었다.
모딜리아니는 1920년 많은 여운을 남기고 결핵으로 눈을 감는다. 춥고 배고팠던 위대한 예술가의 생은 이렇듯 36세로 마감하고 만다. 그때가 잔의 나이 22세였다. 모딜리아니가 없는 잔의 삶은 절망과 공허뿐이었다. 파리의 낭만적인 정취도, 이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진정한 사랑은 영원한 하나됨일까. 그녀는 장례식 날, 5층 아파트에서 뱃속에 있는 둘째 아이와 함께 몸을 던진다. 모딜리아니에게 있어서 잔은 영원한 구원의 여성이었다. 잔은 죽음의 고통까지 함께한 영혼의 동반자였다.
우리는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의 초상화를 볼 때, 그들의 슬픈 사랑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그녀의 초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이 천박한 세태에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가장 슬픈 엔소로지(anthology)로 인류의 가슴속에 진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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