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훌륭한 벗은 훌륭한 인물을 만든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훌륭한 벗은 훌륭한 인물을 만든다
  • 송우영
  • 승인 2021.04.08 01:53
  • 호수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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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는 갑인년 1554년에 우계 성혼이 보내온 편지에 답장으로 답성호원答成浩原 제하의 글을 쓴 일이 있다. 호원은 성혼의 자. 당시 율곡의 나이는 19세로 모친상 3년을 마친 직후이고 그보다 한 살 위인 우계 성혼은 20세 봄쯤 무렵됐으니까. 당시의 공부습관으로 미루어봤을 때 나름 자신들의 공부 깊이에 대한 자부심을 내심 갖고 있을 나이들이다.

이 글에서 율곡은 자신의 공부습관에 대해 상당히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면서 편지글을 써내려간 것을 볼 수 있다. 내용의 요지는 간단하다. “나도 우계 성혼 형처럼 하고 있다가 편지글의 의도이다. 그중 한 대목은 나는 성품이 드러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매양 정좌하여 공부하기를 즐겨했다<복성불희출입僕性不喜出入 매호정좌每好靜坐>”라는 대목이다.

공부습관을 남에게 그것도 편지글로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율곡은 그걸 말하고 있는거다. 바로 이 점이 율곡 이이가 우계 성혼의 공부 자세에 대해 얼마나 경모敬慕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좌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을 바르게 하여 고요히 앉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요란 글 외에는 마음을 사물에 두지않는 자생적 고독이다. 공부하는 몸가짐에 대하여 19세에 이른 청년 율곡이 얼마나 치열하게 임했는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옛사람들의 공부비결이라는 것은 평범하지만 출발은 논어 맹자가 주는 학이다. 은 내안서사숙지의內案書私淑之矣로 선비들의 집에서 필사해온 책들을 통해 배움이요, 는 사무왕교역지의師無往敎役之矣로 스승을 찾아가 배움이요 습은 학여교중첩지의學與敎重疊之矣로 찾아가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반복적으로 익힘이다.

이는 명나라 시대에 편찬된 도가의 아동계몽서 고금현문古今賢文에 나오는 말인데 이를 증광문현增廣賢文에서는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살아서 부와 귀를 구하고자 한다면<욕구생부귀欲求生富貴> 모름지기 죽기를 각오하고 공부하라<수하사공부须下死工夫>”고 주문한다.

물론 율곡이이나 우계 성혼이 성리학 계보가 아닌 도가 계보의 책을 봤을리는 만무하다. 그들이 공부하는 목적은 도가의 계보에서 말하는 부와 귀를 구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맞지만 추구하는 것이 달랐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공부 방향이 정통 성리학 계보를 벗어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정암 조광조의 문인이 성수침과 백인걸인데 성수침의 아들이 우계 성혼으로 1539년 중종34년 기묘사화로 시대가 어지러워지자 성수침은 솔가하여 거처가 파주가 된다. 이때 아들 성혼은 자신이 거하는 방에 묵암默庵이란 당호를 백인걸에게 받아왔고 그때 나이가 7세라 전한다. 이것이 인연되어 아버지로부터 기본 소양 공부를 마친후 10대 초반에 이르러 백인걸에게 사사한다. 여기서 만난이가 율곡이이다.

신동으로 알려진 율곡 이이는 사사한 스승은 두지 않았으나 응도문례凝道問禮라 하여 글에 관하여 묻는 스승은 계시며 특히 집에서 정기적으로 오시는 외할아버지로부터 성리학에 대한 격대교육을 태사숙수太師師叔授<큰스승에게 받는 가르침>하듯 배웠고 배운 것을 어머니로부터는 틈틈이 점검받아 익혀가는 소사습속小師習俗 공부를 해왔던 터였다. 쉽게 말해서 큰스승과 작은 스승을 두고 공부를 해왔다는 말이다.

그런 식의 공부는 명종 3154813세 때 진사 초시를 장원으로 합격하여 그의 총명함을 세상에 떨친 것으로 증명한 바 있다. 이쯤이면 초학의 단계를 훨씬 뛰어넘은 학문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 정도의 빼어난 인물이던 율곡 이이가 충격받은 사실 중 하나가 우계 성혼을 안 후에 그의 소소한 일상생활을 보고나서이다. 묵암默庵이라는 당호가 말해주듯이 경전을 읽을 때 외에는 말을 하지 않으며 간혹 말을 한다해도 반드시 성현의 말을 빌어서 할 뿐 함부로 입에서 나온다고 즉흥적으로 말을 내뱉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이르러 책에서나 읽던 먼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그렇게 사는 나와 동년배의 인물이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율곡 이이가 평생에 걸쳐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데 우계성혼이 경책이 됐던 것이다. 훌륭한 벗은 훌륭한 인물을 만든다는 송나라 범조우의 말이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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