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빛으로 되찾은 삶의 빛
먹빛으로 되찾은 삶의 빛
  • 최현옥
  • 승인 2002.04.11 00:00
  • 호수 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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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통해 노익장 과시하는 노금순·구흥회씨
작년 12월 6일 서천도서관 2층에서 열린 연서회전에서 궁중여인의 단아함과 우아함을 엿보이게 하는 궁체 흘림의 문자중 시구, 한문 해서체로 쓴 소태산 대종사 글이 전시됐다.
이 두 작품은 하얀 화선지 위에 순수한 꽃을 피워내는 현산 노금순(77·기산면 내신산리)할머니와 인산 구흥회(78·판교면 마대리)할아버지 작품이다. 아직 배우는 과정이라 작품 평을 하기에는 어렵지만 누가 봐도 수준 급을 자랑한다.
“늘그막에 시작하려니까 주책 맞다는 소리 들을까봐 걱정되고 좀 챙피혔어”
작년 3월 평생교육원 동기생으로 들어와 만 1년의 돌을 맞는 노씨 할머니와 구씨 할아버지는 출석률 100%를 자랑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한 획 그을 때마다 손 떨림으로 인한 붓 놀림의 속도 조절과 지면과의 각 유지가 어렵지만 꾸준히 공부하는 모습에 회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 오히려 회원들이 두 노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한다.
노씨 할머니는 자식들 외지로 다 떠나 보내고 쓸쓸한 노년생활을 하다가 신문광고를 보고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저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라”는 할머니는 먹과의 만남은 평생의 배필을 만난 그 자체이란다.
구씨 할아버지는 45년전 문맹퇴치운동으로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한문 실력보유자이다. 어렸을 때 서예를 배우긴 했지만 늙어서 마음 수양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회원들과 함께 하면서 젊음을 되찾은 기쁨을 얻었다.
두 노인의 배움에 대한 열의는 집에서도 이어지는데 글씨 연습을 위해 전영하선생님(38·장항읍)에게 초본을 받아 가는 것 뿐만 아니라 마음이 어수선할 때 종종 붓을 든다.
하얀 화선지와 붓과의 만남을 위해 깊은숨과 힘을 고르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은 경건함을 유지하며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처음 강의를 나올 때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이제는 주위 노인들에게 같이 배우기를 권하는 두 노인은 급속한 농촌 사회의 고령화와 그에 따른 문화의 부재로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을 볼 때 문화형성에도 일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늙은 나이에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하다”는 노·구씨는 자손들에게 자신의 작품 하나 유품으로 남기고 싶다며 오늘도 문방사우(文房四友)와 함께 희로애락의 살아 온 날들을 피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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