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폭력과 학살은 비열한 범죄일 뿐
■ 모시장터 / 폭력과 학살은 비열한 범죄일 뿐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21.06.03 17:37
  • 호수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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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용 칼럼위원
정해용 칼럼위원

지난 2월 돌연히 전해진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상황은 4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버마라고 부르던 나라의 일이다. 그 사이에 민주 체제의 붕괴와 군부의 불법한 쿠데타에 반발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이 이어지며 알려진 숫자만 8백여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군부의 고문과 총탄에 목숨을 잃었으며, 상황은 아직 진행 중이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시민들이 저항은 조직화되고 있으며, 그렇다고 군부가 국제사회의 비난에 굴복하여 하루아침에 와해되지도 않았다.

이 대립상황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버마는 내전처럼 폭력적이고 불안한 상황이 길어질 수도 있다.

시간을 오래 끌수록, 옳고 그름의 문제는 판단이 복잡해진다. 이것은 흔히 부당하게 이익을 취한 자들이 원하는 바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대개 신속히 판단되는 것이 좋고, 부당하게 이권을 얻은 자들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좋아한다. 대개 법이나 여론의 판단이 오래 걸리는 재판 치고 그 판단이 명쾌하고 정의롭게 내려지는 일은 드물다.

기독교 성서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어느 한적한 산길에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은 다 없어지고 옷도 벗겨졌으며 칼에 맞고 주먹과 돌에 맞았는지 얼굴은 멍이 들고 온 몸이 피투성이다.

부자와 학자들, 거룩한 성직자(종교인) 등등이 그곳을 지나다가 죽어가는 사람을 보았지만 모두들 발에 핏자국이라도 묻을까 조심하면서 쓰러진 사람을 피해 갔다. 그런데 거기에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고 무시하는 이방인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오래 머뭇거리지 않았다.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여 나귀에 얹고 가던 길을 계속 가다가 처음 나타난 동네에서 의원을 찾아 그를 맡기고 치료비까지 미리 맡기고 떠나갔다. “비용이 더 들면 다시 돌아올 때 마저 지불해드리겠소부탁까지 하고 떠났다.

예수가 말한 비유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이 사마리아 사람처럼 하라.”

그 순간 상황을 판단하는 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을 것이다.

강도가 출몰할만한 곳이니 나도 당하기 전에 얼른 피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어차피 죽어가는 사람이니 구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것이고, 괜히 오지랖으로 개입했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얽힐까 우려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약속 시간에 늦을까, 자기 시간이 중요하므로 그대로 지나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 모든 핑계의 근원은, 죽어가는 피해자를 돌아보기가 귀찮다는 이기심일 뿐이다. 그 자리에서 종교적 정치적 계산이 왜 필요한가. 정의는 단순한 것이다.

맹자는 어떤 아기가 기어 가다가 우물에 빠지게 생겼을 때 누구나 뛰어가 아기를 구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물었다.

아기를 왜 구하겠느냐. 아이를 구해서 그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고? 칭송받는 영웅이 되고 싶어서? 아니면 아기가 물에 빠져 비명을 지르면 그 소리가 듣기 싫을 것 같아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맹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할 것이고 그것은 바로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동정심(측은지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맹자는 덧붙인다. “측은지심이 없다면 인간도 아니다.”

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군부의 독재를 이해해야 하거나 무자비한 학살을 용인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지나치는 위선자들과 다를 바 없다.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계산 속이나, 외면하려는 이기적인 핑계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오래 머뭇대는 국제사회의 위선은 역겹다. 우리가 그 핑계거리들을 다 양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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