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생일날에
■ 모시장터 / 생일날에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21.07.08 08:54
  • 호수 10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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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순 칼럼위원
신웅순 칼럼위원

아버지 생신 때는 어머니는 바빴다. 어머니는 일찍 일어나 아버지의 생신상을 차려드렸다.

얘야, 이웃집, 저 건너 어르신께도 아침 드시라 말씀 드려라.”

어르신들은 오늘이 신주사 생신인 줄 알고 있었다. 옛날엔 이웃집 사람의 생일쯤은 다들 기억하고 있었다.

알았느니라.”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여러 개의 밥상을 차렸다. 어르신들은 아침 식사를 맛있게 드셨다.

생신 축하합니다.”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아침을 맛있게 드시면 아아 잘 먹었네’, 그것이 생일 축하였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생신이었다.

아이들이 서울로 올라오라고 한다. 큰 아이는 두살박이가 있고 둘째 아이는 곧 출산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간다고 했으나 나 역시 번거로워 가지 않았다.

아빠, 뭐 필요한 게 있어?”

둘째가 묻는다.

없다.”

너희들이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내 생일 선물이다.”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저녁 생일상을 준비해주었다.

피자, 리조또, 파스타, 아이스크림 케익 등이다. 김치는 없었다.

아내와 조촐하게 저녁을 했다. 술은 곁들이지 않았다. 촛불을 켜고 끄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일곱 개의 초가 꽂혀있었다. 지난 세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진 한 장 남겼다.

아이들의 축하 메시지가 왔다. 건강하시라고 오래오래 사시라고. 그리고 용돈도 좀 부쳐왔다.

반세기를 넘는 동안 생일 축하는 이렇게 달라졌다. 전에는 이웃집 사람들과 나누었는데 지금은 혼자서 받는 생일 선물이다.

오늘 따라 아버지가 생각난다.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 것인가. 내 낳고 자랐던 고향집이라서 그런가.

내 고향집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처럼 누군가의 추억의 고향집이 되어있을 것이다. 남쪽에 별자리를 이루고 있던, 마당가 태풍에 찢겨진 만추의 감나무는 지금도 있을까.

 

산은 멀어져서 하현달은 높이 뜨고

들은 멀어져서 철새는 길게도 운다

우주 밖 넘어 별똥별 아득히 고향으로 진다

- 신웅순의 묵서재 일기 4

 

별똥별을 본지도 오래되었다. 고향을 떠나온 뒤로 몇 번 보지 못한 것 같다. 그 때는 별똥별이 저 머나먼 이상향의 나라로 떨어졌는데 지금은 머나먼 고향으로 떨어진다. 하현달은 높이도 뜨고 철새는 길게도 운다.

도시에서 오래 살았어도 어릴 적 잠깐만 못하다. 짧았던 고향의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길어진다. 나이를 먹은 탓일 게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삶의 소중함일까.

행복이란 옛날 아버지 생신처럼 이웃집과의 따뜻한 나눔이 아닐까. 나눔의 실천만큼 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없다. 오늘 내 생일은 비로소 칠순에 깨닫게 해준 나눔, 바로 아버지의 따뜻한 죽비였다.

딱딱해진 내 어깨를 이제와 아프게도 내려치는 것인가.

<석야 신웅순의 서재, 둔산 여여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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