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나는 왜 서천을 사랑하는가
■ 모시장터 / 나는 왜 서천을 사랑하는가
  • 김윤수 칼럼위원
  • 승인 2022.01.28 02:02
  • 호수 10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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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칼럼위원
김윤수 칼럼위원

명퇴하고 서천에 온지 만 3년이 다 되었다. 나는 왜 서둘러 명퇴를 하고 서천에 왔을까. 쉬지 않고 달려도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10여 년을 주말마다 대구에서 서천으로 달려왔다. 서천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고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퇴근하는 금요일만 기다렸고, 일요일엔 서천을 떠나기 싫어 울고만 싶었다. 친구들은 서천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나를 서천 홍보대사라고 놀렸다. 도시의 삶보다 시골의 삶을 더 좋아해서 남편과 전국을 돌아다닌 결과, 서천이 제일 좋다는 결론을 내렸고, 남편이 귀향했다. 서천은 때묻지 않은 풍광들로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외갓집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며, 세월이 지나도 아름다운 자연이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디를 가나 개발로 몸살을 앓는 어수선한 농촌 모습에 싫증이 난 터라, 아름다운 자연을 고스란히 잘 간직하고 있는 서천이 너무나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가족묘가 산을 덮고, 수종변경으로 맨머리가 드러나고 송림이 사라지고 있다. 원시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숲과 나무가 주는 멋진 아우라가 없어지는 것이다. 한 지인이 예전 우리 동네 마을 회관 앞에 있었던 잘 생긴 고목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 마을의 상징이었던 정자 나무가 없어지니 동네가 뭔가 어색하고 달라져보인다고 했었다. 아스팔트 도로를 깔면서 베어진 그 나무를 상상하니 안타깝고 아까워 가슴이 저려왔다. 하수구 없이 쏟아지는 냄새 나는 하수물은 뒷마당으로 쏟아지고, 집 앞 도랑에는 우수와 오수가 섞인 썩은 물로 논농사도 짓는다. 나무가 사라진 산 너머 축사 냄새는 에전보다 더 잘 넘어온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는 지인이 방문했다. 그녀는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면 가족들과 시골살이를 하려고 한다. 옛 것을 좋아하는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시간이 멈춘 마을 판교였다. 영하 8도를 기록하는 날씨에도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면서 참 예쁜 곳이라 감탄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이 없고, 문이 닫힌 가게를 보니 안타깝다고 했다. 그녀를 태우고 송석항으로 향했다. 물이 빠지고 갯벌이 넓게 펼쳐진 바다는 은색 거울에 반사된 일광을 반짝였다. 해안길 곳곳에서 바다가 너무 아름답다며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하는 그녀에게 송석항의 멋진 갯바위들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방파제로 걸어갔다. 방파제 옆으로는 전에 못 보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뚱맞은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바닷가로 내려가려는데, 너무나 좋아했던, 그 멋진 바위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쪼개고 쳐냈는지, 검고 다양한 무늬들을 간직한 기암괴석들은 사라지고 밋밋하고 편편한 모습의 해안이 되었다. 하얀 조개 모래도 없다. 놀람이 충격으로 바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바닷가로 내려가는 초입의 산옆으로 보잘 것 없는 짧은 잔도가 붙어 있었다. 해안으로 내려서야 보이는 멋진 풍광을 이 잔도가 어찌 보여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파도와 바람이 빚은 조각물들은 단숨에 사라지고, 전국 어디에나 있는 잔도와 출렁다리가 여기에도 있었다. 이게 아닌데,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보던 그녀는 여기는 왜 왔냐고, 여기는 볼 것도 없으니 빨리 집에나 가자고 졸랐다. 비통한 마음으로 건너편으로 가보았다. 사라진 갯바위들이 배경이 되지 못하니 비경이 살아날 리도 없고, 풍광은 무미건조하고 평범하게 보인다. 차가운 해풍보다 더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인들에게 봉선지를 비밀의 정원이라고 자랑했듯이 송석항의 갯바위를 변산반도의 채석강 이라고 자랑했던 송석항. 갯바위의 멋진 풍광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으며 감탄하던 지인들을 또올리니 속이 쓰리다 못해 타들어갔다. 전국, 아니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서천의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이다. 더는 송석항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 서천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장인지, 무엇 때문에 아름다운지, 무엇을 지켜나가야 하는지, 그 가치를 알고 있다면, 세수 낭비나 마찬가지인 불필요한 개발 공사에 편승하여 천연의 아름다움을 파괴하지는 못할 것이다. 세계의 아름다운 관광지는 자연과 과거를 온전히 보존한 곳이다. 가치는 차이에서 온다고 했다. 전국이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이 파괴되고, 어딜 가나 같은 생김새로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옛 것과 오래된 것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생태 도시를지향할 때 행복한 명품 도시로 거듭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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