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결혼 이후
■ 모시장터 / 결혼 이후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22.02.1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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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순 칼럼위원
신웅순 칼럼위원

결혼을 인륜지대사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보다 더 큰 일은 없다는 뜻이다. 인생을 둘로 나눈다면 결혼 전과 이후가 아닐까 싶다. 부모 품에 있는 것과 부모 품을 떠나는 인생이다.

나는 결혼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지금이야 세상이 달라져 둘만의 신혼살림을 차리지만 그 때는 장남이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어머니, 집사람, 나 셋이 살았다. 이 후 애기 둘을 낳았으니 식구가 셋에서 다섯으로 늘었다.

고부 갈등이야 왜 없었겠는가. 눈치가 없는 나는 살면서 호된 성인식을 치렀다. 아리랑 고개가 왜 그리도 힘들었는지. 봄날의 진달래가 왜 그리 눈부셨는지, 뒤늦은 대오각성은 내 인생에서 큰 교훈이 되었다.
언제면 우리 둘이 살 수 있을까. 그런 얘기하면 경을 칠 일이지만 젊었을 적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조차 불효라 생각해 아들인 나로서는 금기사항 같은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지금의 내 나이에 중풍으로 돌아가셨다. 요즘에 와 일찍 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에 울컥 가슴이 메일 때가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이승에서의 인연이 이리도 짧은 것인가. 두 손녀를 보고 나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이승을 떠나고 애들은 시집을 갔으니 이젠 다섯 식구에서 네 식구로, 지금은 부부 둘만 남았다.

언제면 단출하게 부부 둘이서 살까, 그것이 엊그제 일인데 세월은 그렇게 훌쩍 흘러 머리엔 허옇게 서리가 내렸다. 집사람이 어쩌다 손녀를 봐주러 가는 날이면 나 혼자 남는다. 혼밥에 익숙하지 못한 나인지라 하루만 지나도 아내가 기다려진다.

결혼해서 다섯이 살다 지금의 둘이 있기까지 삼십오년이 걸렸다. 지금부터 혼자 남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릴까. 팔십이면 십년이요, 구십이면 이십년이요, 백년이면 삼십년이다. 아무도 모르는 조심조심 심봉사의 초행길이다.

하나도 없을 때까지는 또 몇 년이 더 걸릴까. 고작해야 5년 안팎이 아닐까. 언뜻 언뜻 그런 생각이 스쳐가는 것이다.

요새 내가 쓰고 있는 시조가 있다. ‘묵서재 일기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어머니, 연인, 아내에 대해서 썼다. 지금은 묵서재 일기인 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빚이 많다. 어찌 갚을 수야 있겠냐만 시로서나마 조금이라도 나를 위로해주고 싶어서다.

산이 얼마나 높은지
강이 얼마나 깊은지

넘을 수가 없어서
건널 수가 없어서

한 평생 초승달이 되었고
한 평생 목선이 되었지

- 신웅순의묵서재 일기 20

인생이 얼마나 높고 깊은지는 알 수가 없다. 인생의 산은 높아 넘을 수가 없고 인생의 강은 깊어 건널 수가 없다. 그래서 한 평생 산 위에 뜬 초승달이 되었고 강물 위에 뜬 목선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살아가는 인생이 아닐까.

결혼 전 그 옛날 부모와 함께 살 때는 식구가 여덟, 아버지가 떠나고 형제들이 결혼하고, 어머니가 떠나고 내 아이들이 결혼하니 식구는 여덟에서 다섯으로 줄었고 지금은 둘로 확 줄었다.
아내가 묻는다.

내가 좋아요?”
그럼, 좋지.”
?”
밥 해주니까

그리 말했더니 피식 웃는다내가 밥순이라고 대꾸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 운동하러 갈게요.”

운동이라야 걷는 것하고 가볍게 요가하는 일이 전부이다.
우리 세대는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는데 익숙해져있다. 갈 때는 순서가 없다하지 않는가. 새삼 결혼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늦생각이 절절이 젖어드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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