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서천군민에 의한, 군민을 위한 라디오 팟캐스트 시즌2/⓶산애재와 구재기 시인
■ 기획특집/서천군민에 의한, 군민을 위한 라디오 팟캐스트 시즌2/⓶산애재와 구재기 시인
  • 고종만 기자
  • 승인 2022.10.20 09:38
  • 호수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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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누구나 다 쓸 수 있어요. 아주 쉬워요”

구재기 시인에게서 듣는 시 이야기

*이 기사는 충남도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팟캐스트 방송중인 구재기 시인, 최명규 원장
▲팟캐스트 방송중인 구재기 시인, 최명규 원장

고종만 : 안녕하세요. 뉴스 서천 대표 고종만입니다. 오늘 방송은 뉴스서천이 충남도 미디어 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지역언론 지원사업 연합사업의 일환으로 시집 '휘어진 가지'로 제3회 신석초 문학상을 수상하신 구재기 시인을 모시고 시인에게 들어보는 시란 무엇이고 우리가 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시비공원으로 조성한 산애재' 대한 얽힌 이야기와 향후 관리 방안 그리고 서천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말씀을 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구재기 시인과의 대담은 최명규 서천문화원장님과 함께 진행합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시란 무엇일까요?

구재기 : 사실 좋은 시라고 하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거든요. 독자들이 시를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어떠한 대상을 보고 자기의 감성 즉 감정, 영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지금 가을이잖습니까. 가을에 한 송이 밤이 벌어진 것을 보고 우리는 밤 그 자체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봄부터 가을까지 밤이 되는 과정을 떠올리거든요. 우리는 가을에 떡 벌어진 밤송이를 보면서 자기 일생을 돌아보고 자신의 성공한 사례를 열매인 밤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바로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대상에 새로운 대상을 대입시켜서 자기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다운 시는 사무사, 진실성이 드러나야 합니다

고종만 : 그렇다면 참다운 시는 무엇일까요?

구재기 : 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입니다. 진실성은 즉 시에 아무런 욕심을 가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표현할 때 드러나는 것이고, 진실성이 드러나는 시야 말로 참다운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공자께서도 사무사思無邪라고 했습니다. 공자께서는 시 300편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생각에 아무런 사악함이 없다고 논어 위정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공자님의 말씀처럼 진실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의 삶이라는 것은 진실을 투영시키기보다는 자기 현재 위치, 자기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꾸며내려고 장식하려고 그러죠. 그런 곳에서 시를 찾기 때문에 진실성이 없고 시의 새로운 맛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시에서 말하는 사무사의 정신, 즉 진실은 사물을 자기 뜻대로 바라보는 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진실성이 담긴 시만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고종만 : 초등교사로 재직 중이시던 1978년도에 현대시학에 전봉건 시인의 추전으로 시인으로 등단하셨던데 언제부터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셨는지요.

구재기 :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께서 교편을 잡으라는 말씀에 공주교대에 들어갔지만 고동학교 다닐 때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300편을 봤습니다. 내가 이런 말 하면 믿는 사람이 없지만 사실입니다. 부모님의 권유로 공주교대에 들어간 뒤에는 연극반에 들어가서 학교에서 주최하는 연극을 많이 하게 됐는데 연극하는 과정에서 느끼고 살면서 느낀 것을 메모한 것이 학보사 기자의 눈에 띄면서 학보에 시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성장이라는 시를 발표하게 됐습니다. 이 시는 지금 봐서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내가 쓴 시가 활자화된 것을 보면서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됐고, 그것이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첫 시를 발표한 뒤 석초문학회에 들어갔고, 교편을 잡은 뒤에는 새여울이라는 동인지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고종만 : 새여울이라는 동인지에서 나태주 시인과 만나셨다면서요.

구재기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태주 시인은 시초초등학교 3년 선배입니다. 나태주 시인과 자주 만나면서 (시와 소설에 관한)이야기를 자주 나누다보니 자연적으로 시를 쓰게 됐습니다. 나태주 시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소설을 써보고 싶어 습작을 많이 했었는데, (나태주 시인을) 만난 이후에는 소설보다는 시에 더 근접하고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시를 써오다 197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게 됐지요.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 더욱더 시와 근접한 삶을 살기 위해 한남대학교 야간부 국어교육과를 졸업, 중등교사로 활동하다 교감으로 명예퇴직하게 됐습니다.

나태주 시인과 전봉건시인과의 인연으로 문단 등단

고종만 : 소설에서 시로 바꾼 것이 나태주 시인을 만나 뵙게 되면서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현대시학에 등단하시게 됐나요?

구재기 : 1971년이었요. 해마다 신문사마다 신춘문예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춘문예는 모든 문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등용문이고 대부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경향 각지에서 공부를 하려는 사람 많이 있을 텐데 저도 1969년 첫 부임지인 마산초에서 근무할 때부터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고 싶은 마음에 시도, 소설도 열심히 썼죠. 71년도에도 등단하고 싶은 욕망에 각 신문사에 소설도 보내고 시도 보내고 수필도 보내고 동시도 보냈지만 당선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19711231일이었어요. 연말에 11일자 발행하는 신문이 나오는데 신문을 구하고 싶어서 서천읍내로 나와 각 신문사 지국을 돌며 신문을 한부씩 구해 신춘문예 당선자와 작품을 살펴봤습니다. 나는 떨어지고 서남초등학교에서 재직 중이던 나태주 선생은 신춘문예에 당선됐습니다. (나태주 선생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을) 신문에서 봤는데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났어요. 나태주 시인하고 동창인 매형이 (제가)신춘문예에 떨어지고 낙심하는 모습을 친구(나태주 시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저희 집에 찾아왔어요. 작달막한 키에 반바지를 입고 중절모를 쓴 분이 밖에서 구선생 구선생고 불러서 누구십니까했더니 나태주입니다라고 하는 거에요. (나태주 시인이 집에 찿아왔을 당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그 뒤로부터 거의 매일이다시피 만났어요. 만날 때마다 시와 소설에 대한 소재 등을 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았거든요. 나태주 시인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곤 했지만 어느 사이 내 마음속에는 소설보다는 시로 기울어 있었던 것 같아요. 급기야 나태주 시인은 나를 1971년도 현대시학주간인 전봉건 선생에게 소개해줬어요.

고종만 : 시인께서 현대시학 전봉건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기 까지 나태주 시인이 중간에서 가교역할 해주셨군요. 인연이라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구재기 : 전봉건 시인을 소개해준 나태주 시인이 (저에게 현대시학에) 작품을 보내라고 말씀하셔서 매주 1~2편씩 보냈는데 1978년 추천 완료되기까지 횟수로 8년 동안 단 한 번도 전봉건 선생님에게 편지 한 장 받은 적 없었어요. 현대시학에 추천된 사실도 시초초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았던 19768월 발행된 현대시학을 받아보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현대시학에 일주일에 두 번씩 작품을 보낸 뒤 6년 만에, 그것도 단 한 번도 뵙지 못한 전봉건 선생님의 으름넝쿨 꽃추천 평을 보고 벌벌 떨었던 기억, 너무 기쁜 나머지 학생들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으름넝쿨 꽃은 우리 집 가정사를 시로 승화시킨 작품입니다. 으름넝쿨 꽃을 보면서 초등학교 부임할 때 제출했던 호적등본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 출가한 누이들의 이름에 빨간 줄이 그어졌던 것이 연상돼 으름넝쿨꽃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족사를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으름넝쿨 꽃으로 현대시학 추천을 받고 2년 뒤인 1978입추(立秋)’, ‘산 너머 바람이 몰려와로 완료추천을 받고 시인으로 등단하게 됐습니다.

고종만 : 초등 교사였던 시인이 중등교감으로 명예 퇴직하셨던데요.

구재기 : 앞에서 잠깐 말씀 드린 것이지만 초등교사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올라간 것은 시인으로서의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중등국어 선생을 하게 되면 시작활동 등 내가 하고 싶은 것 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뒤늦게 한남대학교 야간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게 됐던 것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초등학교에서의 교사 경험이 시를 쓰는 배경 지식이 됐습니다. 어찌됐건 1984년도에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를 하면서 3년 뒤에는 고등학교로 가겠다고 맘먹었는데 계획대로 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계속해오다 정년 2년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교장하기 싫어서 교감으로 명퇴하게 됐습니다.

휘어진 가지는 인간이 가진 무한한 욕망

고종만 : 시인께서 휘어진 가지라는 시집으로 제3회 신석초 문학상을 수상하셨는데 다시 한 번 수상 축하드립니다제가 휘어진 가지를 낭독해보겠습니다.

휘어진 가지

-구재기

휘어진 가지 열매가 가득 차면 가지는 절로 휘어진다. 열매를 다 쏟아내고서야 휘어진 가지는 비로소 똑바로 돌아간다. 1년 전 하던 짓 그대로이다.

짧은 시인데 휘어진 가지가 주는 메시지는 큰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연상됩니다. 가끔 감나무에 감이 많이 매달린 것을 볼 때마다 바람이 많이 불면 가지가 찢어질 것 같은데 하는 생각만 가져봤는데 시인의 눈에는 달리 보이셨던 모양입니다. 시인께서 휘어진 가지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으셨는지요?

구재기 : 이 작품은 그냥 보이는 그대로를 쓴 것입니다. 이 시에서 시적 기교, 은유, 상징 등을 나타내지 않고 보이는 대로 열매가 많이 달리면 가지는 휘어지는 모습을 쓴거에요. (감이 많이 달린 가지는 휘어지는 것이)당연한 거잖아요. 휘어진 가지는 열매를 다 따낸 뒤에야 휘어졌던 가지는 비로로 제 모습으로 돌아오잖아요.

여기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1년 전 하던 짓 그대로(휘어진 가지)를 매년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의 소재가 된 감나무는 판교에서 문산으로 넘어오는 놋점이 고개를 따라 문산저수지로 오기 전 금복리 길가에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감나무인데요. 순간적으로 시상이 떠올라 쓰게 됐습니다. 휘어진 가지는 인간의 욕심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보면 욕심을 내고 최대한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동물은 자기의 욕망을 채우면 더 이상 욕심 내지 않잖습니까? 감나무가 감을 많이 매달고 있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라면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1년 전 하던 짓 매년 계속해서 욕심을 차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휘어진 가지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욕망을 조소의 눈으로 바라본 것으로, 우리 모두 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종만 : 최명규 원장님께서도 시인으로도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데 구재기 시인의 휘어진 가지를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최명규 : 저도 사실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무척 좋아했는데 시를 숙제로 내주신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에 시를 멀리했던 것 같아요. 몇 학년 때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선생님이 숙제로 내주신 시 두 편을 열심히 써서 제출했습니다. 그 다음 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면서부터 최명규 앞으로 나와이러시는 거에요. 영문도 모르고 교탁 앞으로 나갔더니 선생님께서 이 시 어디서 베껴왔느냐면서 시커먼 출석부 모서리로 목 부위를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끔 계속 때리시는 거예요. 그 당시 선생님에게 맞으면서 한 생각이 시를 쓰면 (남의 것 배껴 쓸 정도로 잘 쓰면) 뒈지게 맞는구나. 실망 많이 했던 아픈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시 대신 그림에 흥미를 갖고 그리기 시작했었습니다. 저도 오늘 구재기 시인의 말씀을 들으면서 시인처럼 남다른 눈과 사고를 갖고 시를 쓰는 데 정진할 생각입니다.

고종만 : 최명규 원장님에게 그런 좋지 못했던 기억이 있으셨는지 몰랐습니다. 구재기 시인께서는 2019년 시와 소금 시인선 111이라는 제목으로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란 시집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8년 아름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아 출간하셨잖아요. 모시를 소재로 72편의 시를 창작을 하실 수 있다는 시인의 안목 놀랍습니다. 모시를 소재로 해서 시를 쓰시겠다고 생각을 하셨던 건지 아니면 틈틈이 써놓으신 모시 관련 시를 나중에 모아서 출간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구재기 : 2000년도 충남문인협회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한산모시문화제 현장을 갔는데 1회성 행사로 치러지는 것을 보고 서천군청에 대한민국에서 시인 가운데 모시라는 소재가 들어 있는 시를 모아서 한 권의 시집을 내겠다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편집해 만든 책이 시집이 새모시 옥색치마였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번 내면서 한 생각이 그동안 단편적으로 써왔던 모시에 대한 시를 한권으로 묶어보자 해서 나온 것이 바로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었습니다. 제가 모시와 관련된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와 다섯 누이와 동네 누이 친구들이 모시방 역할을 하던 우리 집에 와서 모시하는 것을 보고 성장한 데다 저 또한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모시풀 벗기는 것을 보고 배워 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집을 소개하면 1부 모시밭에서는 모시를 재배하면서 이뤄졌던 포기 나누기 검불거두기, 모시밭에 내리는 비 등 단편적인 일을, 2부에서는 모시 째는 재직과정으로 모시가 한필의 옷이 되기까지 과정을 전부 다썼어요. 3부에서는 베틀에서 모시 한 필을 짜기까지의 과정과 베틀의 도구 이름을, 4부에서는 모시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참외서리 등 일화를 썼습니다. 많은 편수의 시를 썼지만 시를 써서 시집을 내기까지는 1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짧았습니다. 편수를 한 권의 시집을 낼 정도로 많이 썼지만 쓰는 기간은 굉장히 짧았어요. 한 번에 시집을 내는 데 1년 정도밖에 안 걸렸어요. 돌이켜 보면 모시에 관련된 시집을 엮어내지 않았으면, 모시문화제가 열리지 않았으면, 내 가슴 속에 들어 있는 모시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저에게는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란 시집을 아르코 창작기금을 받아 출간한 것은 일생 일대 저의 큰 보람을 느낍니다. 기회가 된다면 빠진 시가 많아서 다시 좀 쓰고 싶습니다. 전체 삶의 과정, 어렸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과정이 다 숨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저로서는 '아르코 창작기금'을 받았다는 것에 일생 일대 저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빠진 시가 많아서 다시 좀 쓰고 싶은 생각이 또 있어요.

고종만 : 무척 기대가 됩니다. 조만간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산애재에 대해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고향집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 산애재인데 시인댁을 들어서면 시비와 야생화가 공존하는 시비 공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재기 : 30년 이상 외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퇴직해서 고향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8년부터 부모님이 물려주신 고향집을 구조변경하고 아버님이 모시밭으로 쓰시던 텃밭을 화단으로 꾸미고 그곳에 야생화와 나무를 심어놨습니다. 화단을 조성해놓고 보니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반드시 시인의 자필로 쓴 시비 50개만 세우자는 계획을 세우게 됐는데요, 시비를 세우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현재 (50개 중) 절반가량인 26개의 시비를 세운 상태입니다.

고종만 : 산애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이용악 시인의 시비가 눈에 들어오던데 시인께서 26개 시비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비를 말씀해주세요.

구재기 : 신경림 시인의 눈 오는 날 아침입니다. 신경림 선생이 우연한 기회에 오시게 됐는데 차 한 잔 드리면서 저희 집에 오신 기념으로 눈 오는 날 아침이란 짧은 시를 친필로 써주실 수 없으신가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알겠다면서 며칠 뒤 낙관을 찍은 친필로 쓴 두 장의 시를 보내주셨죠. 아마도 2장을 보내주신 것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시비를 세우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다른 분들은 써주겠다고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아 더 이상 부탁을 드리지 않는데 신경림 시인은 제 부탁을 들어주시고, 그것도 2장의 친필을 정성껏 쓰시고 낙관까지 찍어주셨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고종만 : 시비 중에 전봉건 시인의 시비도 있던데요.

구재기 : 전봉건 선생의 시비에 나와 있는 글씨는 친필이 아닙니다. 은사님이신데 살아생전에 시비를 세우겠다면 직접 써달라고 부탁 말씀을 드렸을 텐데 못하고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고종만 : 그럼 누가 쓰신 겁니까?

구재기 : 전봉건 선생님 시비를 세우고 싶은데 친필을 구할 수가 없었거든요. 생각하던 끝에 홍성에서 알게 된 소리꾼 장사익씨에게 부탁해서 전봉건 선생님의 시비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26개의 시비 중 시인의 친필이 아닌 것은 전봉건 선생님의 시비가 유일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봉건 선생님의 친필이 발견됐는데 나중에 기회 되면 시비를 하나 더 세울 계획입니다.

산애재는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닙니다

고종만 : 향후 산애재는 어떻게 관리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계신가요?

구재기 : 산애재는 필요한 사람에게 줄 겁니다. 자식에게 맡겨놓으면 몇 대 못갑니다. 자식들에게 산애재 꿈도 꾸지 말라고 했는데 다행히 아이들이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있습니다. 산애재가 강남 어딘가에 있었으면 자식들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울 텐데 아이들이 쳐다보지 않더군요. 산애재가 시골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산애재는 제 것이지만 제 것이 아닙니다. 아직 가족들에게 관리 방안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필요한 (공공기관과) 사람 있다면 내놓을 계획입니다. 제 바람은 공공기관에서 맡아 관리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명규 : 저는 구재기 시인의 생가인 산애재와 나태주 시인의 생가 2곳을 서천군의 대표적인 문학기행지로 선정해 운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산애재에 시인께서 집필하신 책과 집필공간을 잘 조성해놓는다면 아주 훌륭한 문학기행지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명규 : 시인께서 운영하시는 페이스북을 보면 산애재에서 풀과의 전쟁을 벌이는 등 소소한 일상을 소개하시던데 시인에게 산애재는 어떤 의미인가요?

구재기 :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산애재에 있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어요. 그런데 저의 편안한 삶을 방해하는 것이 잡초로, 잡초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번번이 잡초에게 집니다.(웃음)입니다. 그런데 잡초 중에 꽃이 화려한 것은 야생화란 이름으로 대접받지만, 잡초는 조상을 잘못 만나 피어나면 인간에게 뽑히거나 밟히고 있죠. 잡초의 운명이 참 안됐어요. 산애재에 살면서 올 연말 안에 들꽃과 잡초 사이에 사람이 산다라는 수필집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최명규 : 서천문화원에서 발간하는 서천산하라는 책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짧게 소개해주시죠.

구재기 : 제가 명예퇴직하고 고향에 내려왔는데 정작 고향인 서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자료를 찾아가지고 서천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요, 이번에 출간하게 될 책은 제가 58회에 걸쳐 서천의 산하를 돌아보면서 현장에서 쓴 시와 기행문을 340페이지 분량으로 묶어내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서천의 명승지, 문화유적지, 보물, 인물 들이 남겨 놓은 자취를 찾아다니며 쓴 책입니다.

최명규 :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시를 쓰고 싶어 하는데 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팁을 말씀해주시죠.

구재기 : 저는 시를 연속극으로 비유합니다. 연속극을 보는 사람들은 연속극의 주인공인양 슬픈 일이 있을 때는 같이 울어주듯이 시 역시 독자들이 감동받을 때 (연속극의 경우처럼) 똑같이 작용합니다. 시를 좋아하고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은 사물에 대한 애정을 가져라. 그리고 나와 연관시켜라 왜 저 나무가 저렇게 생겼을까 나의 과거의 어느 한 구석이 저런 면이 있었을 것이다. 천방산 바위는 저런 모양일까? 천방산도 가슴에 응어리지는 한이 맺혀서 한의 응어리를 바위도 껴안고 있구나. 이렇게만 생각하고 시로 승화시키면 되는 것이거든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시는 누구나 다 쓸 수 있어요. 아주 쉬워요. 애정만 가지고 있다면요.

28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출마

고종만 : 마지막으로 시인께서 제28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선거 출마예정자로 거론되고 있던데요.

구재기 : 얼마 전에 한국문인협회 회원 몇몇의 모임에서 부이사장으로 출마해달라고 요청이 왔을 때 나 같은 시골사람이 왜 필요하냐고 물었거든요. 문인협회에서는 시골에서도 열심히 작품 발표하시는 구재기 시인 같은 분이 필요해서 부탁 말씀 드린다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부이사장 출마를 결심하게 됐지요. 저와 러닝메이트인 김호운 이사장 출마예정자는 저와 장르는 다르지만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활동적이고, 나머지 부이사장 출마예정자들도 굉장히 활동적이어서 저의 운신의 폭이 넓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출마하게 됐습니다.

고종만 : 좋은 결과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장시간 말씀 나눠주신 구재기 시인, 저와 함께 진행을 해주신 최명규 서천문화원장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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