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예수의 공부와 공자의 공부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예수의 공부와 공자의 공부
  • 송우영
  • 승인 2022.11.03 11:39
  • 호수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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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 서천서당 훈장
송우영 / 서천서당 훈장

인류에 공부하지 않고 성공한 인물을 꼽는다면 아마도 예수를 비껴가기는 어려우리라. 예수는 꽤 문제적 인물이다. 나사렛 촌에서 마리아라 이름하는 묘령의 처녀의 몸으로 잉태된 상태로 만삭에 이른 시점에서 장장 100킬로가 넘는 거리에 있는 베들레헴까지 걸어서 간 후 그곳 어느 여막의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전하는 인물이다.

태어나기가 무섭게 킹 헤롯으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는 그는 우문일 수도 있으나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성경 4복음서 어디를 읽어봐도 공부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요한복음 715절의 기록은 이를 정면으로 웅변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156쪽 개역한글 큰글자성경전서 아가페출판사> 그 앞전 구절 7:5절은 더 가관이다. “이는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이는 생전의 예수께서 이웃과 가족으로부터 어떤 처우를 받고 살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와 같은 거다.

이런 예수를 향한 군중들의 시각은 더 심각하다. 당시의 군중들이 갖는 예수에 대한 인식은 그저 먹는 것이나 밝히고 술이나 즐기는 술주정뱅이에 가까운 자요, 기껏해야 세리 같은 부류나 하잘것없는 죄인들 따위를, 그나마 친구 정도로 사귈 수 있는 하찮은 인품쯤으로 인식했다.

마태복음11:19절의 기록은 이렇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같은책17> 의사 누가가 기록했다 전하는 누가복음7:34절의 기록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같은책101>

그런데 누가복음 240절에 반전의 문장이 기록된다.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이런 일이 있은 후 46절 기록은 읽는 이로 하여금 눈을 의심케 한다. 46절 기록은 이렇다. 이 일은 예수의 12세 나이 때의 일이라 전한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51절에, 모친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그리고 52절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며 누가복음2장을 끝맺고 있다.

결론으로 말한다면 예수는 공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았다가 정답이다. 공부한 기록은 없는데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을 현대 지성의 시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다만 예수보다 얼추 500년쯤 앞서 난 인물 공자의 말에서 그 답을 어림짐작할 뿐이다.

생전의 공자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시다. 읽기 쉽게 구어체로 풀어쓰면, “세상에는 더러 이런 류의 사람도 있는데 배우지는 않았으나 날 때부터 아는 사람도 있고 배워서 아는 사람도 있으며...” 그러자 문도 중 혹자가 물었다. “그러시다면 공자 선생님께서는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다 아시는 분이시겠군요하니 공자는 완곡하게 말씀하시기를<자왈子曰>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생지지자가 아니라<아비생이지지자我非生而知之者> 배워서 아는 사람으로 옛것을 좋아하여 남보다 더 빨리 가서 배워서 알 뿐이다.<호고민이구지자야好古敏以求之者也<논어술이7-19>”

물론 공자와 예수 사이에는 일정량의 벽이 있다. “인류의 메시야는 예수다라는 성서의 기록과 인류의 사표 성인이라는 공자의 이름에서 오는 간극이다. 예수가 누군가에게 공부를 했느냐 아니했느냐의 접근은 곤란하다. 그의 문도 도마의 질문에서 답했듯이 진리냐 아니냐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 예수는 자신을 진리라 명토박는다.<요한복음14:6> 진리는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증명을 요하는 순간 그것은 진리가 될 수 없는 명제다. 그러나 공자는 진리를 말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서 참진자를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승이 참진자를 쓰지 않으니 그의 제자 증자도 참진자를 쓸 수 없어 진자 대신 진실로 신자를 썼고 얼추 천년 후 사람 주자는 진실로 신자 대신 진실로 근자 를 쓴다. 공자는 오직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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