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책을 써서 공부한 것을 증명한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책을 써서 공부한 것을 증명한다
  • 송우영
  • 승인 2023.06.01 17:48
  • 호수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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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송우영

공부에는 노력의 고단함과 결과의 경이로움이 공존한다. 어설픈 공부는 늘 눈물을 동반한다. 공부가 부족한 사람은 일생에 한 번은 공부 부족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공부의 앙갚음이라는 말이 나왔다. 쉽게 풀어쓰면 공부의 역습이랄까 아니면 공부의 복수쯤으로 이해되는 말인데, 중국 북위시대 사람 선장善長 역도원酈道元에게서 나온 말이다.

선장善長은 삼국지 유비와 같은 탁현涿縣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크게 공부에 매진한 그런 류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부모가 공부하라고 열 번쯤 말하면 한번 마지못해 공부해주는 정도의 인물이었다 한다. 어지간히도 공부하기를 싫어했던 것임에는 분명했다.

그가 나이 스무 살쯤 되자 일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하여 지방 하급 관리로 사는 게 그나마 업무가 그리 많을 거 같지도 않고 평생 밥걱정 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 지방 하급관리가 되었다.

그는 먹고 놀기를 좋아하고 상사에게 향응을 꽤 잘했던 모양으로 중앙부처의 어사중위御史中尉를 거쳐 아주 이른 나이에 동형주자사東荊州刺史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벼슬이 높은 관리가 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직위해제를 거쳐 파면된 인물이다. 이유는 관리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런 모욕을 국가로부터 당한 그는 견딜 수 없는 분노를 삼켜야 했다.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것은 공부하는 일이었다. 사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들 말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게 맞다. 다만 늦었지만 할 수는 있다는 말일 뿐이다. 이때가 그의 나이 40대 초반이었다. 물론 그의 졸년에 대해서는 많은 이설이 있다. 암살당했다, 병사했다, 등등...

아무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공부했던지 그 결과물로 주석서 한 권을 냈는데 수경주水經注가 그것이다. 이 책의 원본은 동한東漢시대 사람 상흠桑欽137조의 편목으로 천,,, 세 권으로 편찬한 물들의 이야기 책인 수경水經에 선장善長역도원酈道元1252조의 편목으로 40권 분량으로 늘려서 주석注釋을 가한 책이다.<위서魏書 89 역도원전>

원문의 쪽수에 비해 장장 열 배에 육박하는 분량이 넘는 편목으로 주석서를 써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이를 뒤집어 말한다면 남자가 분노하여 뜻을 세워 공부하면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선장 역도원은 이 책 한 권으로 인하여 공직 파면이라는 불명예를 씻어내고 명예회복을 한 것이다.

당나라의 역사가 군경君卿 두우杜佑는 수경주에 대해 역도원은 모두를 자세히 살펴 바로잡은 것은 아니다<酈道元都不詳正>”라고 낮게 평한 바 있다. 그렇다면 물들의 이야기라는 수경을 지은 상흠은 누구인가.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고 한단서목邯鄲書目에 따르면 한인漢人이라 했고 중국 남송南宋의 조공무晁公武에 따르면 성제成帝 때 사람이라 한다. 훗날 이 책은 배송지裴松之의 삼국지주三國志注, 유효표劉孝標의 세설신어주世說新語注와 함께 수경주水經注3주사注史의 불후의 명저가 되게 했다.

남자에게 있어서 늘 세 가지 물음이 따른다. 스승은 누구인가, 무엇을 공부했는가, 책은 얼마나 썼는가이다. 이 말은 남자는 관 뚜껑을 덮기 하루 전까지는 공부해야하고 공부한 것에 대해 반드시 책을 써서 그간의 공부를 증명해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노자출관老子出關이라 하여 노자는 도망가는 와중에 함곡관函谷關을 빠져나가던 도중에 지었다는 책이 5000자로 된 도덕경이다. 양웅揚雄의 촉왕본기蜀王本紀에 따르면 노자가 함곡관 수문장 윤희를 위해 도덕경을 지었다<노자위관윤희저도덕경老子爲關尹喜著道德經>”라고 기록한다. 이때가 노자 나이 대략 80이 조금 넘은 나이라 전한다.

공자께서는 42세부터 책을 짓기 시작하여 죽기 일주일 전까지 춘추책을 지어 자하에게 강론하셨고 주자께서는 죽기 사흘 전까지<이본에 하루 전까지> 대학 책에 주석을 가하고 계셨다. 전한다. 읽고 쓰고 외우고는 어려서 하는 공부이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간의 공부를 책으로 써서 증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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