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전쟁- 타국을 위해 싸우는 나라는 없다
■ 모시장터 / 전쟁- 타국을 위해 싸우는 나라는 없다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23.06.08 05:02
  • 호수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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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용 칼럼위원
정해용 칼럼위원

우연히도 세계 근세사를 돌아보다가 1차 세계대전 발발 시기의 양상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공방전과 상당히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1차 대전 무렵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신성로마제국 1천년의 영욕을 이은 후손의 나라다. 신성로마제국이 1천년의 권위를 잃고 해체된 것은 1806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에 패하면서다. 불과 1백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제국은 지금의 독일과 헝가리 터키까지 포함한 유럽 중앙과 동부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1천년 동안이나 하나의 지배체제 아래 있었던 역사를 배경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제국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신성로마제국의 혈통적 직계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아직도 천년왕국의 부활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는데, 한 때 그들의 속국이었던 세르비아가 고분고분하지 않은 게 눈엣가시였다. 그러다가 오스트리아제국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를 순시하던 중에 총에 맞아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 달 뒤 거대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한 주먹감도 안 되는 세르비아를 응징(!)할 목적으로 침공한 것이 이 전쟁의 직접적인 발단이다. 1914728일이었다.

침공 당사자인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그 동맹국들은 세르비아왕국이 단 한 번의 공격을 받고 주저앉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패권주의 야심을 달갑지 않게 생각해오던 주변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식적인 예상대로라면 세르비아 왕국은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 분명해보였다.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대제국의 주인이었지만 내실은 낡아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전쟁을 쉽게 끝내지 못했다. 수도 빈의 주민들부터가 황태자의 피살에 대하여, 그리고 황제의 패권 야심이나 제국의 부흥 같은 철학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한물간 옛날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르비아에 대하여 범슬라브족 회의를 통해 동질감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가 먼저 움직였다. 전쟁 발발 다음날 러시아군에 부분동원령을, 30일에는 총동원령을 내려 세르비아 지원을 준비했다. 그러자 독일제국이 러시아에 경고를 보내며 군대해산을 요구했고, 러시아가 선뜻 응하지 않자 선전포고를 보냈다. 러시아와 전쟁을 앞두고 독일제국은 그 반대편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에게는 중립유지를 요구하는 통첩을 보냈는데, 이 요구는 프랑스 군부를 자극했다. 독일이 프랑스로 진군하기 위해 두 나라 사이에 있는 벨기에를 침공하자 영국이 국제법 준수를 요구하며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전쟁은 확대되었다. 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 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국제협상이 진행되고 러시아-영국-프랑스 등을 주축으로 협상측 연합군이 결성되었다.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전되며 4년 넘게 지속되었다. 아시아 아프리카로 전선이 확대되고 독일측의 무제한잠수함작전에 미국 배들이 당하면서 결국 미국까지 가담하는 세계전쟁이 되고 말았다.

첫째, 초강대국이 한때 연방의 속국이었던 약소국을 침공한 것. 둘째, 침략국의 지도자는 잃어버린 옛 영화를 되찾고 싶다는 야심을 가진 것. 셋째, 그러나 침략국 내부의 민심은 지도부의 철학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 넷째, 주변 국가들(적성국이거나 우방이거나) 대다수가 약소국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오판한 것. 다섯째, 침략국의 군사력이 생각보다 허약해 단번에 응징을 못하고 전쟁이 길어진 것. 여섯째, 약소국의 우방들이 어쩔 수 없이 지원에 나서며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히기 시작한 것. 그리고 일곱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이제 종전을 모색하는 협상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통점들을 볼 때 과연 쉽사리 끝날 것인가가 아직 미지수다. 전쟁을 종결시키려는 확고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그것을 행사해야 할 미국이나 영국은 단호한 결단력이 부족해 보인다. 이제는 그곳에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아시아의 동맹국들까지 끌고 들어가 어쩌겠다는 것인가.

1백 년 전 1차 대전이 전 문명사회로 확산된 것은 반드시 세르비아를 돕겠다거나 오스트리아를 돕겠다거나 하는 목적보다는 각 나라가 지닌 이해관계와 감정적 앙심의 골이 그만큼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러시아는 독일을 견제하고 싶다는 감정이 더 컸고, 프랑스는 나폴레옹 패전 때 독일에 당한 수모를 되돌려주고 싶었고, 영국은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이 기회에 영국을 도와 독립의 요구를 이루고 싶어 80만 명의 군대를 포함 130만의 인력을 지원했고, 이탈리아는 연합국이 승전하면 그들이 원하는 영토 일부를 할양받는다는 조건으로 옛 동맹인 오스트리아를 배신하고 연합국 편에서 싸웠다. 명분이야 어쨌든 모두 자기 나라를 위해 싸웠던 것이다.

과연 이 전쟁은 여기서 끝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나 중국 일본이 이 전쟁과 연관을 맺는다면, 어떤 유익을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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