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에서 보내는 편지
안면도에서 보내는 편지
  • 뉴스서천
  • 승인 2002.04.18 00:00
  • 호수 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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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 문제가 되면서 인사조치가 되어 서천을 떠난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비인중학교 운영위원회와 서천지역 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의 거부로 나는 서천을 떠나야 했다. 나로서는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고향을 지키기를 원했고 그래서 도시를 마다하고 서천에 정착했던 내가 지역여론에 의해 고향을 등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참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잠시 그렇게 떠난 것이기에 잠시 여기 머물다가 어서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거라고 생각하며 안면도에 왔다.
그러니 내게는 안면도가 서천처럼 그렇게 애착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신선한 일이 생겼다.
여기는 지금 꽃박람회 준비로 정말 정신이 없이 돌아간다. 꽃박람회장과 도로정비 뿐 아니라 민박집 건설과 상가조성에 정신이 없다. 그러나 박람회 준비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정작 그곳에서 살아있는 안면도의 숨결과 문화가 없다는 점이었다. 충청남도에서 직접 치르는 행사인 만큼 성공여부에만 집착했는지 지역주민의 참여공간은 전혀 고려 없이 추진되고 있었다. 그러나 안면도민들은 살아있었다. 그들은 구경만 하고 물건이나 팔려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들의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었다. 안면청년회가 주축이 되었는데 그들은 아주 소박하지만 안면도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시와 그림전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들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오랜 기간의 야외전시가 어떻게 가능할지 문제이고 또 그림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나는 흔쾌히 도움에 응했고 지금 그것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림은 나의 지도와 함께 주민과 학생들이 직접 그렸고, 시도 주민과 학생들이 직접 썼다. 전시대는 같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했다. 다만 돈이 없어 그것이 문제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명나게 일했다. 그들은 지금 여름이나 가을에 좀더 진일보한 행사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기쁘다. 사실 그런 것은 내가 그동안 정작 서천에서 원해왔던 일이었다. 나는 미술가로서 지역문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만큼 좋은 영예가 없다고 생각해오던 차였다. 또한 문화는 더 이상 전문가들의 독점물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주민이 직접 만들고 가꿔야 문화로서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역의 축제에 주민이 바로 그 중심에 서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런 일이 일반화된 일은 아니지만 우리지역에서 그런 일이 가능했으면 했다. 그런데 여기 안면도민은 그것을 과감히 추진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 나의 역할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반갑고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만큼 일할 작정이다. 그러나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내가 그간 서천에서 그런 일을 원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나 스스로 소극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여건이 안돼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정작 우리지역에서 그렇게 살아 숨쉬는 지역문화가 꽃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거기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하고 꿈꾼다. 서천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 말이다.
<김인규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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