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완장
보이지 않는 완장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4.06.07 00:00
  • 호수 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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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쓰기 위해 서천군의 10명 가까운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대로 우선 전화를 하고 해결되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는 수순을 밟기 위해서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단 한사람과도 통화를 못했다. 대개 출장 중이거나 결재를 위해 나갔다거나 하는 게 제 3자의 답변이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지방기자들에 대해 취재를 거부하겠다는 공무원노조의 성명서를 떠올리는 것이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

요즘 유난히 떠오르는 한사람이 있다. 그는 기자가 아주 평범한 촌아낙이었을 때 해당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다. 대개 남편이 관공서 업무를 처리하던 터라 그 직원과는 초면이었는데 민원인 촌아낙에게 ‘뭐요?’라며 퉁명스럽게 시작해서 귀찮은 듯 대하는 처사에 항의하며 언쟁한 기억이 난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며 공무원의 이름을 댔더니 ‘그 녀석 내 후밴데 그럼 안 되는데…’ 했고 이런 일이 있은 며칠 후, 그는 선배 아내인 내게 불손했던 것에 대해 ‘죄송합니다. 형수님 몰랐습니다’고 사과한 일이 있다. 어느 외국인의 “한국인들은 아는 사람끼리는 친절한데 모르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하다”는 평을 증명한 셈이 됐다.

또 언젠가 그 공무원은 우리집을 직접 찾아와 남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농협조합장 선거에서 아무개 씨가 당선되도록 도와달라는 간청을 하고 간 일이 있었다.

바로 그 공무원과 기자는 무슨 인연인지 지난 3월 폭설피해로 인해 언쟁을 벌이고 말았다. 재해특구 지정의 관건인 충남도 폭설피해의 종합상황을 문의했는데 ‘그런 걸 왜 우리가 알아야 하느냐’며 반문해 ‘그게 왜 중요한지 몰라서 그러십니까?’했더니 ‘그렇게 잘났으면 직접 알아보지 왜 따지느냐’는 식이었다. 

그 말에 결국 기자는 노기를 참지 못하고 군청으로 쫓아간 형국이 됐고 그 사람은 나를 언제 봤느냐는 식으로 막말까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형수님’이라 부르던 기자를 막말까지 할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 의문하면서 평소 연을 맺고 있는 공무원노조 서천군지부 측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했으나, 그 사람이 노조 간부라는 사실에 아찔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5월 14일자 본지 기사에 대해 맹공을 가하며 울타리를 치고 있는 공무원노조 서천군지부 중심에 그 공무원이 있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하게 됐다.
또 취재거부와 집권남용은 물론 공무원노조의 태도에 우려의 의견을 제시한 동료 공무원을 몰아세우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또 하나의 권력이 된 공무원노조의 정체성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일련의 일을 접하면서 83년에 초판 한 윤흥길씨의 소설 「완장」을 떠올리는 것이 무리인가.
이 소설은 김제의 백산저수지를 배경으로 도회생활에 실패한 후 낙향해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주인공 임종술이 저수지 관리인이라는 ‘완장’을 차면서 이를 빌미로 권력을 휘두르는 인간의 전횡을 묘사하고 있다.
결국 여주인공 부월이에 의해 자아를 되찾게 되고 권력의 허울인 완장을 벗어 버리고 떠나는 것으로 종결되는 것으로 기억된다.

오래 끌면 상황이 굳어지게 마련이다. 공무원노조 서천군지부도 부월이를 만나야 하는 건 아닌지, 완장을 벗고 기자들이나 전교조, 군 당국의 대화 노력에 응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지 묻고 싶다. 더 이상의 역풍으로 공무원노조의 기간이 흔들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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