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열린 정치
투명사회 열린 정치
  • 뉴스서천
  • 승인 2002.05.23 00:00
  • 호수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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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장 선거열기가 월드컵열기를 압도하고 있다. 언론들은 차기 대통령 후보를 비교하느라 여념이 없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통령 아들의 비리문제로 시끄럽다. 한 때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던 K모씨는 자기를 구치소로 보낸 것에 대해 억울하다면서 식사까지 거절한다고 들린다. 권력과 돈이 제도나 원칙 보다 항상 앞서 왔는데 갑자기 세상이 변했다는 탄성들도 있는 듯하다.
독일에서는 요즘 “유리인간(Glaesere Mensch)”이란 표현이 유행한다. 컴퓨터가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사람의 머릿속까지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개발한 컴퓨터가 인간에게서 비밀이란 것을 다 빼앗아가 몰인간 사회가 되고 있음을 풍자한다. 우리사회도 급변하고 있다. 세무, 회계 등 모든 것이 전자화한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사회가 투명해지고, 우리도 투명인간, 유리인간으로 변한다. 애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벌거벗은 사실을 모른 임금님이 조롱을 받았듯이 주변이 다 투명해진 사실을 모른 것도 죄가 되고 있다.
두어 달 전의 일이다. 당시 진념 경제부총리가 “정치권이 기업에 손을 벌리지 않는다면 법인세의 1% 정도를 정치자금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야당반응도 긍정적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정부 내에서는 논의를 진전시킬 수 없었다. 국민의 아까운 세금을 함부로 쓴다는 따가운 질책도 있었다. 더욱 큰 고민은 세금을 쓰려면 정치권 스스로 어떻게 투명하게 쓰겠다는 약속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런 약속은 없이 돈 쓰는 것만 환영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스스로 모금한 기부금은 용도를 밝히지 않아도 되지만, 세금은 용도가 분명해야 쓸 수 있다.
정치자금에 대한 규제는 통치체제(내각제, 대통령제), 정당정치 역사 등 각국의 정치환경에 따라 다르다. 첫째, 특정 기부자로부터는 정치자금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국과 독일은 제한하지 않으나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은 금액한도 뿐만 아니라 현금기부의 한도를 규제하고, 익명·차명기부를 금지한다. 기업의 정치헌금에 대하여 독일은 금지하지는 않으나 정당에 대한 국고배분과 세제 지원시 차등을 두어 기업헌금을 억제하고 있다. 미국은 법인헌금은 금지하되, 기업내부의 정치행동위원회(PAC)를 통한 기부는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95년부터 법인의 정치헌금을 전면 금지해 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영국과 독일의 중간쯤에 속한다.
둘째, 정치자금의 지출을 제한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선거비용으로 쓸 수 있는 최고한도를 규제하고 있으나, 미국은 선거비용을 헌법상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로 보아 제한하지 않는다. 또한 선거비용의 부담 주체도 나라마다 상이하다. 미국·영국은 후보자 본인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나, 일본·독일·프랑스는 국가와 지자체가 분담하고 있다.
셋째, 예산에서 정치자금 지원시에는 외부감사 등을 통해 지출내역을 철저히 관리한다. 일정기준을 초과하는 정치헌금에 대하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수지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똑같은 돈이지만 세금을 사용할 때에는 투명성 규제가 더욱 엄격해 진다.
글머리의 사례들이 정치헌금 문제인지, 개인 치부사례인지는 판결을 봐야겠지만, 우리 사회가 열린 정치, 투명사회로 가는 단서임에 틀림없다. 정치권의 최근 변화는 정보화의 물결을 타고 네티즌이 연주하는 단막극인지, 불멸의 명화인지 아직 확실치는 않다. 분명한 것은 돈 안 쓰는 선거, 자금과 권력의 집중 대신에 제도와 원칙이 숨쉬는 사회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노대래/ 조달청 물자정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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